기업들 우수인력 확보 위해 교육기관 지원…졸업생 90% 취업하는 곳도 생겨

‘지금은 빅딜(Big Deal)보다 빅에듀케이션(Big Education)이 중요하다.’몇 년 전 이상희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게임교육기관인 LG소프트스쿨을 방문한 자리에서 던진 이 말이 아직까지 업계에 회자되고 있다. 게임이 미래형 산업으로 각광받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전문 프로그래머를 지망하고 있지만 아직도 우수인력을 배출할 질 높은 교육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국내 게임업계의 인력수급 현황은 한마디로 ‘풍요 속의 빈곤’이다. 프로그래머는 많지만 핵심 기술을 보유한 인력은 드물다.특히 게임의 흥행성이나 질을 결정짓는 기획자(게임 프로듀서나 디렉터), 시나리오 작가, 3차원 그래픽 디자이너 등은 우수 인력이 부족해 애를 먹고 있다. 그나마 게임산업은 최근 엔씨소프트, 웹젠, 액토즈소프트 등 소위 ‘잘나가는’ 게임업체들이 등장하면서 우수인재가 몰리기 시작하고 있다.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인식이 낮고 보수가 박한 게임, 애니메이션, 모바일콘텐츠, 온라인콘텐츠 등 디지털콘텐츠 분야의 전문가가 태부족한 현실이다. 더욱 치열해진 국제경쟁 상황 속에서 국내 디지털콘텐츠업체들이 원하는 인력은 고급ㆍ전문인재들이다. 미래 우리나라 디지털콘텐츠산업의 대도약도 결국 고급인력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기획전공자 취업률 높아디지털콘텐츠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았던 초창기 시절만 해도 단순 프로그래머로 충분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디지털콘텐츠를 대표적인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정부가 공언한 마당에 기존의 디지털콘텐츠 인력으로는 결코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디지털콘텐츠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글로벌 마케터와 소비자들의 심리까지 꿰뚫고 있는 기획자 등 다양한 전문인력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세계 경쟁력을 지닌 디지털콘텐츠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의 질은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문화콘텐츠진흥원이 2002년에 발표한 ‘콘텐츠 교육현황’에 따르면 고등학교 13개교 19개학과, 전문대학 88개교 209개학과, 대학교 105개교 195개학과, 대학원 31개교 93개학과가 디지털콘텐츠 관련학과를 운영, 총 237개 교육기관에서 516개학과를 통해 디지털콘텐츠 관련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아직 민간교육기관에 대한 집계를 펼친 곳이 없어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기자가 직접 조사한 결과 게임 관련 20여개, 애니메이션 15여개, 모바일콘텐츠 5여개 기관에서 디지털콘텐츠 관련 교육을 펼치고 있다. 단순 프로그래머 교육과정은 수백개에 이른다.이중 대부분의 교육기관은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을 병행해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민간교육기관은 20여개에 불과하다. 기획자를 양성하는 곳은 정규과정과 비정규과정을 합해 40여개 정도다.대표적인 곳이 정규기관으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 연세대 영상대학원, 중앙대 첨단영상전문대학원, 이화여대 정보과학대학원, 숙명여대 정보통신대학원 등이고 비정규기관으로는 게임아카데미, 매직엔 모바일아카데미, KH정보교육원, 디지틀조선 게임아카데미, K모바일아카데미, 디자인정글아카데미, 나노디지털아카데미, MBC아카데미 디지털교육원, 한빛소프트 디지털캠퍼스 등이다.이중 게임아카데미는 문화관광부, 매직엔 모바일아카데미는 KTF, KH정보교육원은 한국통신하이텔이 지원해 운영하고 있다. 정보통신부도 한국콘텐츠산업연합회를 통해 디지털콘텐츠아카데미를 2년간 운영했지만 별다른 호응이 없어 지난해에 중단했다.최근 각광받고 있는 분야는 모바일콘텐츠 기획자다. 특히 게임 모바일콘텐츠 프로바이더가 시장에서 각광을 받으면서 이 분야 기획자 수요가 크게 확산되고 있다. 졸업자가 배출되기 무섭게 스카우트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높은 연봉을 제공하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최근 각광받는 디지털콘텐츠 기획자 배출을 위해 KTF는 키위소프트와 함께 프로그래밍, 실전, 기반기술, 비즈니스, 경영자 코스로 나눠 단기 과정(2~5일)과 중장기 과정(2~6개월)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다. ‘모바일 실전’ 분야에는 휴대전화 벨소리, 캐릭터 등 인기 있는 모바일 비즈니스에 대한 강좌도 개설하고 있다.KTF 신사업총괄 홍원표 전무는 “최근 모바일 분야로 신규 진출하거나 확장하려는 기업들이 사내 전문가 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단순한 이론교육이 아닌 실무능력 배양에 중점을 둬 바로 실전에 투입될 수 있는 전문가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올해로 출범 4년을 맞은 문화관광부 산하 게임전문 교육기관 게임아카데미는 게임 분야 최고의 인재양성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1기생 21명 모두 엔씨소프트, SD엔터넷, 손노리, 위자드, 미리내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유수의 게임업체로 스카우트됐고 지난해 졸업한 2기생 39명 가운데 현재 35명이 취업돼 90% 이상의 취업률을 자랑하고 있다.지금과 같은 취업 불황기에 대부분 취업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게임아카데미의 화려한 교수진과 교육의 질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전임강사 5명에 외래강사 100여명의 교수진을 거느린 게임아카데미는 국내 최고의 교수진을 갖추고 있다.대학교수들의 이론 강의는 물론 현업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개발자들이 실무 강의를 맡고 있는 것도 다른 민간학원과는 차별화된 특징이다. 이와 함께 게임아카데미는 지난해 5월 아카데미 수강생들에게 최첨단 게임 제작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게임영상제작실을 만들었다. 이 영상제작실은 선형(Linear) 편집시스템과 비선형(Non Linear) 편집시스템, 3D 랜더링 시스템 등을 갖추고 있는 곳으로 게임영상 제작에 필요한 편집, 합성, 특수효과 등의 전 과정을 실습, 제작할 수 있다.교수 수급 부족, 장비 낙후…정부 지원 시급하지만 게임아카데미와 같이 배경이 ‘빵빵한’ 몇몇 기관을 제외하고 대부분 교육기관은 수강생 부족과 강사진 부족, 장비 부족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디지털콘텐츠 분야가 신규시장이다 보니 전문가 부족으로 인해 높은 강사료를 주고 강사를 모셔 와도 수강생이 없어 수지를 맞출 수 없다. 이러다 보니 고가 장비를 갖추는 것은 생각도 할 수가 없다. 이는 교육기관의 취업률 악화로 연결돼 수험생 유치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을 부추기고 있다.모바일광개토의 K모바일아카데미 최수미 실장은 “콘텐츠 기술을 쫓을 수 있는 우수인력 배출을 위해서는 고가의 장비 지원이 시급하다”며 “급속도로 변화하는 모바일시장에서 교육기관이 장비 업그레이드와 높은 강사료를 모두 부담하기에는 벅찬 상황”이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디지털콘텐츠 인력양성을 위해 시급하다고 전했다.우수장비 부족과 강사 부족 현상은 정규교육기관도 마찬가지다. 특히 전문교육기관이 아닌 경우 대부분 공동 실습실을 사용하고 있는데 게임개발을 위한 장비로 사용하는 데 부적절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전문교수인력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전문대협의회의 집계에 따르면 전국 전문대 교수 1인당 학생수는 평균 25명 수준이다. 그러나 디지털콘텐츠학과의 경우 학교마다 편차는 있지만 교수 1명이 담당해야 할 학생이 50명을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등 신설 학과의 경우 정원 160명에 전임교수는 고작 2~3명만 보유한 경우도 있다. 실제 경기도 C전문대학 게임과는 정원이 160명에 달하지만 전임교수는 겨우 3명이다. 그것도 지난해 초 1명을 충원하지 않았다면 교수 1명이 80명의 학생을 감당해야 했다.전공도 문제다. 게임 관련 학과의 경우 교수들의 전공이 대부분 컴퓨터학과 및 전산학 전공자인 것으로 집계됐다. 게임교육을 수행하기 위한 교재 및 학습자료도 외국서적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으며 국내에 게임교육을 파급시킬 수 있을 만한 교육자료도 전무한 실정이다.소프트웨어진흥원의 디지털콘텐츠 부문 관계자는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교수인력 확보가 매우 중요한 만큼 산업계 전문가들이 대학 강사로 적극 나서는 등 대학과 산업계가 밀착하는 인력수급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