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438호 (2004년 04월 26일)

학벌·능력도 속수무책

기사입력 2006.09.04 오후 12:00

토익 985점, 학점 4.3 만점에 3.9, 서울 소재 명문사립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동대학원 졸업예정, 미국 교환학생 1년 연수.

취업전선에 뛰어든 이모씨(여·25)의 프로필이다. ‘설마 저런 손색없는 학생이 취업 걱정을 할까’라는 생각을 한다면 ‘세상 물정 모른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이씨는 현재 취업난으로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오는 8월 졸업을 앞둔 이씨는 지난해 가을부터 취업 ‘수난’을 당해왔다. “지난해 10월부터 지금까지 7달 사이에 50개 이상의 회사 전형에서 탈락했어요. 대기업은 경영이나 경제 전공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서류에서부터 떨어뜨리더군요. 또 3명 미만의 인원, 심지어 1명을 뽑는 회사도 수두룩해서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어요.”

이씨에게 취업난은 마치 보고 싶지 않은 재방송 드라마와도 같다. 지난 2002년 2월 학부를 졸업한 그녀는 졸업하기 직전에도 취업 고민으로 고통을 겪었다.

“지난 2001년에도 ‘올해 취업난 사상 최악’이라는 문구가 연일 뉴스를 장식했어요. 해마다 올해 취업이 최악이라고 하니 이제는 그런 뉴스를 봐도 담담할 뿐입니다. 2001년에는 30여개의 회사에 원서를 냈지만 취업이 안돼 대학원 진학으로 진로를 결정했었죠. 대학원을 졸업할 2년 뒤에는 상황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판단이 틀렸습니다.”

비실용학문인 영문학을 대학원에서 전공해 오히려 기업에서 꺼려하는 조건을 짊어진 채로 나이만 먹은 것이 아닌지 자책하는 이씨. 대학원의 비싼 학비를 대주신 부모님께 송구스러워 몸둘 바를 모른다고 한다. 졸업까지 4개월 남았지만 그전에 직장인이 될 수 있을지 현재 상황으로서는 미지수다. 고학력 청년실업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또다시 놓인 것이다.

외견상 뛰어난 프로필을 갖추고도 좀처럼 취업이 되지 않는 20대는 이씨와 같은 비실용학문 전공자에게 국한돼 있지 않다.

최모씨(27)는 지난 2월 서울 소재 H대를 졸업했다. 전자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취업이 잘된다는 공대 출신이다. 그러나 그는 현재 엄연한 ‘백수’다. 최씨가 졸업한 대학 같은 학과 선배들은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갈 곳 없으면 대기업에 간다’는 말을 남기며 졸업을 하기도 전에 쉽게 취업했다.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 건 지난해부터다.

“대기업 중 S사와 L사에 학과 선배들이 특히 많습니다. 제 동기들에게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할 뿐입니다. 많은 동기들이 대기업 전형에서 줄줄이 낙방한 채로 졸업을 맞이했어요.”

‘이태백’ 대열에 진입한 최씨는 벤처기업에도 문을 두드리려 했다. 그러나 최근 벤처경기도 좋지 않아 채용 자체가 1~2년 전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억울하죠. 공대 공부가 쉽지 않잖아요. 어렵게 공부를 마쳤는데 받아주는 곳이 없으니 암담해요. 의대에 진학하지 않는 게 후회가 들어요.”

서울 소재 사립대학에서 서반아어를 전공한 유모씨(30)는 3년차 청년실업자다. 2001년 2월 졸업을 한 그는 졸업한 지 3년 2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무직 상태다.

대학시절부터 기자가 되고 싶었던 그는 이른바 ‘언론고시’로 불리는 언론사 입사시험을 준비했다. 단과대 학생회장을 역임하는 등 리더십으로 무장된 그는 자신감으로 뭉쳐 있었다. 대학 4학년이 되던 해에 10개 이상의 언론사 공채에 응시했지만 모두 낙방했다. “준비가 부족해서 떨어졌다고 생각했죠. 재수를 결심하고 스터디도 열심히 하고 토익학원, 논술과 상식학원에도 다녔어요. 그런데 재수하던 해인 2001년에 응시한 20여개의 언론사 시험에도 모두 떨어졌죠.”

언론사 입사를 포기한 그는 2002년부터 기업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곧 ‘나이제한’이라는 장벽에 부딪혔다. 재수를 해 대학에 들어간 그는 대학시절 캐나다로 어학연수까지 1년 다녀왔다. 남들보다 졸업이 늦어진 그가 졸업 후 1년간 백수 상태로 있다가 나이 제한에 걸린 것이다. 지난해에는 학원강사로 아르바이트하며 구직활동을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대학졸업 후 1년이라는 시간을 진로 확정을 위해 투자했는데 결국 ‘폐인’이 되는 지름길을 택한 것이더군요. 청년실업자이어도 기죽지 말라고 용돈을 꼬박꼬박 챙겨 주시는 부모님께 고개를 들 수가 없고, 5년 동안 사귀어온 여자친구에게 결혼하자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졸업 전 순간의 선택을 잘못한 제자신을 원망해야 할지, 취업시스템이 비합리적인 이 사회를 원망해야 할지 그것조차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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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