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438호 (2004년 04월 26일)

젊은 숙련공 채용 “이젠 포기했어요”

기사입력 2006.09.04 오후 12:00

4월13일 오전 봄꽃이 만발한 ‘공단길’을 따라 반월 국가산업단지로 들어섰다. 얼굴을 스치는 봄바람은 산뜻한 느낌을 안겨줬고,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았다. 바람에 하늘거리며 날리는 벚꽃은 간혹 시야마저 어지럽혔다. 봄놀이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을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자연의 위대한 힘과는 달리 공단의 공기는 어쩐지 숨쉬기 불편했다.

처음 찾은 곳은 단지 내 서부지역본부 사무실. 공단의 일반 현황을 듣기 위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관계자의 설명이 이어졌고, 떠나기 전 워낙 나쁜(?) 얘기를 듣고 와서인지 상황은 소문보다 좀 양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465만평 크기의 단지에 입주해 있는 중소기업은 총 2,247개사. 가동률은 전년에 비해 오히려 1.2%포인트 증가한 77.6%. 정상 가동률인 80%에 육박하는 수치다. 지난해 휴업 또는 폐업한 곳은 3곳에 불과했고 오히려 입주업체가 293곳 늘어난 상태였다. 외견상 별다른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후에 둘러본 생산현장의 현실은 희망적인 ‘숫자’와 완전히 딴판이었다.

실습생 유치는 하늘의 별따기

반월나염의 조성진 사장은 만나자마자 대뜸 최근 들어 한숨이 부쩍 늘었다고 푸념했다. 대당 10억원을 호가하는 장비가 잠을 자고 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입주 당시 1,000여명에 달했던 나염단지 협동조합의 종업원이 지금은 600명밖에 안됩니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폐업한 업체도 생겼어요. 장비 가동률도 20% 정도 떨어진 상태입니다.”

공단의 평균 가동률이 올랐지만 중소기업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부 상황이 좋은 대기업이 평균을 끌어올렸을 뿐 대부분 중소기업은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조사장은 말했다. 특히 염색, 가구, 도금 등 3D업종의 기업들은 하루하루가 힘겹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무엇보다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모집공고를 내면 지원자가 몰려듭니다. 하지만 실제로 출근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나마 한달을 넘기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이제는 정규직원 채용을 거의 단념했어요.”

정규직원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일용직 근로자, 병역특례, 실습생, 외국인 근로자에게 의지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병역특례를 신청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기업은 한정돼 있고 지원자 역시 많지 않다. 무엇보다 복무기간이 종료되면 백이면 백, 기업을 떠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실업계 고등학교의 실습생 30명을 고용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진학문제 때문이라고 말은 하지만 조건이 좀더 좋은 곳으로 옮기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요.”

그나마 실습생을 유치할 수 있는 기업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몇 년 동안 실습생을 한 명도 받지 못한 기업도 부지기수다. 중장비 차량의 라디에이터를 생산하는 해송엔지니어링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회사의 최태섭 과장은 “매년 10군데의 실업계 고교에 공문을 보내고 있지만 지난 몇 년간 한 명의 실습생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용직 근로자라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용직 근로자를 쓸 수 있는 분야는 단순노무직에 한정돼 있기 때문에 기능직 인력이 필요할 때는 속수무책이다. 특히 대체인력이 여의치 않은 영세기업일수록 어려움이 크다. 도금업을 하는 A사장의 경우가 그렇다.

“한꺼번에 2명의 종업원이 예고 없이 일을 그만둔 일이 있었습니다. 일할 사람이라야 저를 포함해 4명인데 2명이 그만두니 당장 납기일을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기술이 필요한 일이라 일용직을 쓸 수도 없어서 가족들을 모두 불러 철야작업을 한 끝에 겨우 기한을 맞췄습니다.”

비정규직 구직자도 눈에 띄게 줄고 있어 인력파견업체에 신청을 해도 제때 원하는 인원을 받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안산시의 한 인력파견업체 대표는 “일용직 구직자의 대부분은 외국인이고 젊은 내국인은 아예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라며 “더욱이 최근에는 보수가 더 많은 불법채용에 인력이 몰리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업체에서 근무하려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인만 남은 공장

비정규직 근로자를 쓰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생산성이 크게 떨어진다. 숙련도와 책임감이 떨어지는 탓에 생산량은 떨어지고 불량률은 오르고 있는 것이다. 반월나염의 조사장이 겪은 경험을 들어보자.

“구겨진 천을 잘 펴서 기계에 집어넣는 공정이 있습니다. 잘 펴지 않으면 고스란히 불량품이 되기 때문에 어렵지는 않아도 중요한 과정이지요. 그런데 한 외국인 노동자가 구겨진 천을 그대로 기계에 집어넣는 거예요. 화가 난다기보다 어이가 없더군요.”

예고 없이 작업장을 이탈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해송엔지니어링은 일용직 근로자들의 ‘파업’ 때문에 낭패를 당할 뻔한 일이 있었다. 수출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고용한 일용직 23명이 임금이 적다며 작업을 거부했던 것. 회사측의 설득으로 파업은 이틀 만에 끝이 났지만 까먹은 이틀을 보충하기 위해 전 직원이 철야작업을 강행해야 했다.

비정규직 고용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해 업계는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해송엔지니어링은 일용직 고용 대신 외주제작 비율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자체 제작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올해 중장비 차량업계는 지난해에 비해 호황이 예상됩니다. 중국 수요가 대폭 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익성이 악화돼 일만 하고 돈은 못 버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 걱정입니다.”

플라스틱 사출업체인 아성프라텍의 사정도 비슷하다. 이 회사는 예전에 비해 재고물량을 더 많이 준비하고 있다. 종업원이 부족해 납기일을 지키지 못하는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납기일을 넘긴 적은 없지만 관리비용이 부쩍 늘었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비용부담이 있지만 나중에라도 출하가 되면 다행”이라며 “주문이 없어 폐기하는 제품도 상당하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인력난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도 부담스럽다. 사람이 없으니 임금이 치솟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렇지만 기존 종업원들보다 많이 달라는 구직자의 요구를 들어줄 형편이 아니다. 돈을 떠나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웃지 못할 결정을 내린 회사도 있다. 기존 종업원의 임금수준을 대폭 올려 신규직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것. ‘수익성 악화를 각오하더라도 오랫동안 일할 직원을 뽑아야 한다’는 다급한 심정의 결정이었다.

이 회사가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작업장의 노령화’라는 현상이 도사리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떠난 중소기업의 작업장은 급속도로 노령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숙련공은 대부분 40~50대에 몰려 있는 상황이다. 한 직장에서 5년 이상 근무하는 젊은이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현재 중소기업에 가장 필요한 인력은 단순노무직이 아니라 기능직 이상의 숙련공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단순생산직은 병역특례, 실습생, 외국인을 고용해도 되고 정 모자라면 학생 아르바이트를 써도 된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숙련공이 될 수 없다. 모두 3년 이내에 작업장을 떠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5년 후, 10년 후가 걱정입니다. 40~50대 숙련공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울 젊은 종업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입니다. 중국에 맞설 무기라곤 제품의 고급화밖에 없는데 숙련공이 이렇게 부족해서야 어떻게 제품을 고급화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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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