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추억,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다

최근 20대의 취업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수준이다. 웬만한 직장의 입사경쟁률은 수백대1이 기본이다. 수십, 수백통의 입사원서를 써봤다는 젊은이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웃는’ 사람들이 있다. 절박했던 백수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어엿한 직장인으로 변신한 사람들이다. 3명의 백수탈출 성공기를 소개해 본다.서은실 한국자산관리공사 해외사업부 주임‘면접의 달인’으로 거듭나“입사면접에서 계속 떨어지다 보면 노하우를 터득하게 됩니다. 면접실력이 느는 거죠.”지난해 2월 말 한국자산관리공사에 들어간 서은실 해외사업부 주임(26)은 4개월의 백수생활 끝에 ‘면접의 달인’이 됐다.2002년 8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서주임은 자타가 공인하는 재원. 학점은 4.3 만점에 3.61, 토익 935점을 자랑하는 서주임은 대학시절 교환학생으로 1년간 미국에 다녀왔다. 또 미국에 다녀온 뒤 외국어고등학교 시절 전공인 중국어를 더욱 특화시키기 위해 휴학하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베이징 광파대학과 어언대학에서 1년간 중국어를 공부한 끝에 중국어능력시험(HSK) 10급을 따냈다. 학보사 취재부장을 지내 국어 능력도 뛰어났다. 그러나 구직활동을 시작한 서주임은 곧 믿을 수 없는 현실과 맞닥뜨렸다.“자산관리공사에 입사하기 전 30~40장의 원서를 썼어요. 2002년 졸업 후 가을 취업시즌부터 좌절을 겪기 시작했죠.”학과 사무실을 통해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의 추천서가 왔지만 기졸업자는 받지 않았다. 불과 몇 달 전에 졸업한 구직자에게도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 “처음에는 대기업 위주로 원서를 넣었죠. 서류나 적성검사, 면접에서 다양하게 떨어졌어요. 초겨울이 되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직원 10명이 안되는 월급 70만~100만원을 준다는 무역회사에 지원했습니다. 그 회사 사장님께서 영작시험 결과를 보시더니 ‘서은실씨 같은 사람이 왜 취업이 안됐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위로해 주었죠. ‘내가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는 희망이 생겨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어요.”2002년 12월부터는 그동안의 고생에 보답해 주듯 면접 보는 곳마다 속속 합격했다. 현대중공업과 대한항공, LG전자, 한국자산관리공사의 합격통지서를 차례로 받은 서주임은 한국자산관리공사를 선택했다. “면접이 끝난 후 구직자들끼리 면접에 대한 코멘트를 해줬어요. 장단점을 지적해 주며 정보를 나누는 과정에서 도움을 많이 얻었습니다. 구직활동 초창기에 한 면접관으로부터 ‘조선시대 여인 같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면접을 거듭 보게 되자 긴장도 덜 하게 되고 목소리도 커지게 됐어요.”서주임이 제시한 면접 합격법은 ‘평소 성격이 내성적이더라도 면접 순간만은 연기라는 생각이 스스로 들 정도로 당당하게’, ‘표정이 너무 굳어 있거나 고집이 세 보이지 않도록 점검해 호감을 줄 수 있는 표정 관리하기’ 등이다. “면접에서 떨어져도 훗날 더 좋은 기회를 얻기 위한 연습이 됐다고 생각하세요.”김정록 현대아산 총무팀 직원“응시회사 건물 나갈 때까지 행동 조심”“적어도 대학 3학년까지는 취업에 필요한 요소를 다 갖추고 4학년 때부터 도전을 해야죠. 졸업 전에 취직이 안됐다면 눈높이를 낮춰서라도 반드시 졸업한 해에 취직해야 합니다.”2002년 10월부터 현대아산에 출근하는 김정록씨(27)는 구직자들이 놓치기 쉬운 ‘입사 조언’ 몇 가지를 귀띔했다.“흔히 취직이 안되면 1~2년쯤 공부를 더 해서 취직을 하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인사관리자들이 보는 관점에서는 구직자의 공백기간이 길수록 단점이 됩니다. 실업자 생활이 길어질수록 취직은 더 어려워지고 자신의 몸값은 낮아지게 됩니다.”조선대 무역학과 96학번인 그는 2000년 2월 졸업 후 장교로 입대했다. 2002년 6월 전역 후 약 3개월 동안 청년실업자의 고충을 겪은 끝에 취업에 성공했다.“지방대 졸업생에 대한 기업의 편견도 취업을 어렵게 만들었죠. 서류에서부터 떨어진 곳도 많았습니다. 전역 후 한달이 지난 7월이 되니 걷잡을 수 없이 불안해졌어요. 여름에는 아예 뽑는 곳도 없었습니다. 생각을 가다듬고, 2~3년 투자해 평생을 보장받기 위해 면 공무원시험에 승부수를 걸기로 했습니다. 면접의 영향이 적은 직종이 바로 공무원시험이라 생각했습니다.”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중 원서를 냈던 현대아산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면접 당일 편한 마음을 지니고 전남 나주에 있는 집에서 서울로 향했다.“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중이니 면접에 떨어져도 실망하지 않겠다는 자세였어요. 오히려 이런 부담 없는 마음가짐이 긴장하지 않고 면접에 임하게 했습니다. ‘이곳이 아니면 절대로 안돼’라는 조급하고 긴장된 자세보다는 여유를 가져야 오히려 당당한 모습으로 면접에 임할 수 있습니다.”그는 ‘건물 밖으로 나갈 때까지 행동을 조심하라’는 면접법을 제시했다. 신입사원을 뽑는 자리인 만큼 직원들이 구직자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뽑는 일인 만큼 회사 직원이 구직자를 보고 면접관에게 인상 좋다고 말한 한마디가 크게 작용될 수도 있다. 면접장 이외의 공간에서의 행동에도 자기관리가 꼭 필요하다고 김씨는 당부했다.정재훈 하와이관광청 한국사무소 직원해외자원봉사 후 재취업 성공‘지금 나는 12월26일의 크리스마스 장식과 같다.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 아닌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정재훈씨(27)가 지난해 12월 말 일기장에 쓴 구절이다. 하와이관광청 한국사무소의 입사제의를 받기 직전인 지난해 말 정씨의 좌절감은 극에 달했다.지난 99년 2월 경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정씨는 ROTC 장교 출신. 대학졸업 후 입대해 2001년 6월 전역했다. 그당시 다른 장교 출신 친구들이 ROTC 특별전형을 통해 은행과 보험사에 입사할 때 그는 ‘전공과도 상관없고 적성에도 안 맞는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지원하지 않았다. 대신 2001년 7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유럽과 홍콩, 태국, 베트남, 일본 등 17개국을 여행하며 미래를 구상했다.“장교로 복무할 때 번 돈으로 여행을 다녔죠. 국내외를 오가는 틈틈이 정부에서 실시하는 컴퓨터 무상교육을 3개월 받기도 했죠.”여행을 마친 후 그는 경희대 국제교육원에 취업했다. 2002년 3월부터 교직원으로 일하며 웹관리와 전산을 담당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과감히 사표를 냈다. 어릴 때부터 꿈꿔 온 ‘해외 자원봉사’를 떠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3월부터 9월 중순까지 필리핀에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태권도와 수영을 필리핀 원주민에게 가르쳤죠.”지난해 9월 귀국한 그는 심각한 취업난을 몸소 체험하기 시작했다. 정보처리사와 디지털활용능력, 한자능력검정시험 3급, 일본어능력시험(JLPT) 1급 등 각종 자격증을 부지런히 따온 그였지만 다시 직장인이 되기는 녹록지 않았다.그러던 9월 말 우연한 기회에 KBS가 ‘청년실업 해결’이라는 취지로 만든 ‘일요일은 101%’의 한 코너인 ‘꿈의 피라미드’에 참가했다. 자신의 능력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서였다. 70대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꿈의 피라미드 1기’로 선발됐고, 방송을 통해 그의 진면목이 소개됐다. 특히 그는 여러 코너 가운데 영어 테스트에서 1등을 했고, TV를 통해 이를 유심히 지켜본 하와이관광청으로부터 입사제의를 받았다. 결국 올 1월 하와이관광청에 입사했다. “어릴 적 외국에서 생활한 적도 없고 어학연수를 다녀온 경험도 없습니다. 대학시절 알게 된 외국인 친구와 대화하며 영어를 익혀 나갔죠. 경쟁력을 계속 길러나가기 위해 입사 후 중국어도 공부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