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시설로 환자 모셔 … 중소병원들 앞다퉈 전환

경기도 의정부시에 사는 김모씨(62)는 2주일에 한 번씩 시외곽의 D노인전문병원을 방문한다. 지난해 뇌혈관질환으로 쓰러진 시어머니가 이 병원에 입원해 있기 때문이다. 형편상 직접 모실 수 없는데다 재활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의료진의 충고를 받아들였던 것. 노인병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고민도 많았지만 병원을 둘러본 후 안심했다. 김씨는 “건물도 깨끗하고 의료진과 시설이 좋아 마음을 놓았다”며 “집에서 모시는 것보다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대학병원도 노인병센터 설립 붐최근 들어 노인전문병원이 크게 늘고 있다. 병원업계는 전국에 100여개의 노인전문병원이 운영되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강홍조 노인전문병원협의회장(초정노인병원장)은 “협의회가 설립된 99년만 해도 노인전문병원은 10여곳에 불과했다”며 “현재 회원병원만 60여개에 이른다”고 전했다.노인전문병원이 급증하는 이유는 잠재적인 수요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전체 진료비 가운데 노인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20%를 넘어섰다. 액수로 치면 4조3,723억원에 이른다. 노인성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2년 사망원인 가운데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당뇨병 등 노인들에게 자주 발견되는 질환이 암 다음으로 높았다.노인성질환자가 늘면서 해당 약품시장도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의약품 통계업체인 베스트케어가 65세 이상 환자의 지난해 처방건수와 약제비를 분석한 결과 뇌경색, 고혈압, 당뇨병 등 노인성질환이 1~4위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관련 제약업체들은 매년 50% 내외의 성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스트케어의 임주형 조사팀 차장은 “약품의 수와 종류는 거의 차이가 없지만 판매량은 급속히 늘고 있다”며 “최근 들어 국내업체들의 비중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노인들을 치료할 병원은 턱없이 모자란 상황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운영되고 있는 노인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병상수는 1만2,445개이다. 이에 반해 필요한 병상수는 8만7,410개에 달해 7만4,965개가 부족한 실정이다. 병원 경영자 입장에서 보면 막대한 시장이 손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사정과 함께 중소병원의 경영난은 노인전문병원 설립을 부추기고 있다. 노인전문병원이 수익성이 좋을 것으로 판단한 중소병원들이 하나둘 노인전문병원으로 전환, 개원하고 있는 것이다. 또 대형종합병원들도 원내에 노인병센터를 설치하고 전문병원과 경쟁하고 있다. 대학병원치고 노인병클리닉을 운영하지 않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들 가운데는 분당 서울대병원처럼 노인병 치료를 건립목적으로 삼는 곳도 있다.2~3년 전만 해도 노인전문병원에 대한 인식은 대단히 좋지 않았다. 초기의 노인병원이 환자들을 가둬 놓는 ‘격리수용소’에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치료는 고사하고 학대와 고통을 받기 일쑤라는 소문도 적지 않았다. 노인병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때였다. 하지만 최근 설립되는 노인전문병원은 명실상부한 ‘병원’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전문의료진은 물론이고 재활치료실, 진단방사선실, 임상병리실, 응급실 등 첨단의료시설과 욕실, 전용화장실, 휴게실 등 편의시설을 갖춰놓고 있다.치료와 요양을 동시에조항석 연세노블병원장은 “국내에 노인병학회가 설립된 97년 당시만 해도 노인병 전문의는 전무했다”며 “노인병의 특성에 맞는 전문병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아주 최근에야 생긴 현상”이라고 전했다.노인병의 가장 큰 특징은 치료와 요양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라고 전문의들은 지적한다. 노인환자들은 급성질환을 치료한 후 장기간의 재활치료를 해야 정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반병원은 급성기질환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장기요양에는 적당하지 않다. 따라서 장기요양과 전문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전문병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노인전문병원이 반드시 필요하고 잠재수요도 적지 않지만 경영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 참병원의 김상수 원무과장은 “중소병원보다 형편이 나은 편이지만 경기 탓인지 수익이 줄고 있다”며 “노인전문병원에 대한 정부정책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노인전문병원인 초정노인병원도 병상가동률이 20% 정도 떨어진 상태다.병원의 주 수입은 수술 등 급성기 환자의 치료를 통해 얻어진다. 하지만 노인전문병원의 경우 급성기환자보다 장기요양환자가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수입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의 의료비 삭감도 노인전문병원의 주름살을 늘리고 있다. 평가원에 청구한 약값의 40~50%가 삭감돼 도무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불만이다.유한대학의 남상요 의무행정과 교수는 “노인환자용 의약품은 원래 고가인데도 지나치게 비싼 약을 처방했다는 이유로 평가원이 약값을 삭감하고 있다”며 “일반병원과 노인전문병원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환자가족들의 과도한 경제적 부담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장기환자의 경우 월 진료비가 200만원 정도인데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항목은 불과 40%에 불과하고 60%는 온전히 가족들의 몫이다. 관계자들은 전체 진료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간병인 비용만은 복지 차원에서 보험처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이와 관련, 남상요 교수는 “대표적인 노령사회인 일본의 경우 수익성이 가장 좋은 병원은 노인전문병원”이라며 “일본처럼 우리 정부도 노인전문병원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INTERVIEW 조항석 연세노블병원 원장“돈보다 봉사정신 앞세울 터”“2개월 만에 혼자 힘으로 화장실에 가는 할아버지를 보고 오는 길입니다.”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조항석 연세노블병원장이 인사 대신 건넨 말이다. 이 병원은 서울 시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도심형 노인전문병원이다.“노인병원 하면 산속의 요양원을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도심에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응급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고 가족들과 가까이 있어 재활치료에도 도움이 됩니다. 환자가 심리적으로 안정이 돼야 치료도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조원장은 전공인 가정의학의 문제가 노인들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판단, 노인병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노인환자들은 대개 6~7개의 병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전문의 한두 명이 매달린다고 완쾌가 되지 않아요. 환자를 종합적으로 치료하고 재활까지 책임지는 병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개원을 했지요.”소명의식으로 개원을 하기는 했지만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적자를 보지 않고 병원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다. 의욕을 가지고 개원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은 사례를 여러차례 봐왔던 터다.“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봉사정신으로 운영하려고 합니다. 자리를 잡으면 호스피스와 재가요양 서비스도 할 계획입니다. 최선을 다해 도심형 노인전문병원의 성공모델을 만들 각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