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해결되면 시장빅뱅…이동통신 차세대 수익원

지난 5월12일 오전 10시 서울 LG강남타워 20층 LG텔레콤(이하 LGT) 사장실. 남용 사장을 비롯한 LGT 간부 5명과 유영건 한국음악저작권협회장 등 음악저작권단체 대표 6명이 마주앉았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LG전자가 만들어 LGT를 통해 판매하고 있는 MP3폰(모델명 LP3000) 때문이었다. 이 제품은 무료음악파일을 무제한 재생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출시된 지 3개월도 안돼 12만대가 팔린 ‘대박’ 제품이다.이날 음악저작권단체는 MP3폰이 불법음악파일의 유통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무료음악파일의 재생기간을 3일로 제한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LGT는 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맞섰다.음악저작권단체들은 이번 모임을 갖기 전까지 LGT와 생존을 건 다툼을 벌여왔다. 음원공급을 중단했고 LG트윈빌딩 앞에서 연예인들이 참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일부 간부들은 삭발하고 1인 릴레이 시위를 했다. 반면 LGT는 이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무료 MP3파일 재생이 가능한 MP3폰을 판매한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저작권 분쟁 불씨 꺼지지 않아이들이 이처럼 한치의 양보 없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유는 향후 MP3폰이 미칠 파급력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시중에 나와 있는 MP3폰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SK텔레텍이 SK텔레콤을 통해 팔고 있는 MP3폰(모델명 IM-7200P)도 열흘 만에 2만대가 넘는 판매량을 올렸다. 또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할 경우 MP3폰으로 사용할 수 있는 IM-7200은 지난 2월 중순 내놓은 후 지금까지 3개월 동안 25만대 이상 팔렸다. 삼성전자의 MP3폰(SPH-V4200)도 매주 5,000대 이상이 팔리고 있다. 이는 이 회사의 전체 공급물량에 육박하는 수치다.사실 MP3폰이 차세대 휴대전화의 대표주자가 될 것이라는 견해는 이미 1~2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 무선인터넷의 속도한계로 인해 동영상은 아직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음악’은 재미를 추구하는 소비자에게 가장 적합한 아이템이다. 또 MP3로 음악감상을 하는 것은 멀티미디어 인터넷과는 달리 사용자에게 금전적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매력이 있다. 그러나 막상 MP3폰의 출시가 임박해지면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음악저작권단체들이 무료 MP3 음악파일의 재생을 강하게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당초 MP3폰 출시를 준비했던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유료 음악파일을 특정 기기에서 들을 수 있는 DRM(디지털저작권관리)솔루션을 MP3폰에 적용할 계획이었다. 삼성전자는 장기적으로 애니콜랜드(www.anycall.co.kr)를 통해 유료 음악파일을 판매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LGT와 LG전자 역시 음악포털사이트의 운영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무료음악파일을 들을 수 있는 MP3플레이어가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상황에서 MP3폰에 완전한 DRM솔루션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따라서 처음에는 저변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판단, 유ㆍ무료 파일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제품을 내놓으려고 했다.음원제작자협회 등 음악저작권단체의 생각은 달랐다. 남녀노소 3,400만명이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로 무료음악을 듣게 된다면 불법음악파일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MP3플레이어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것. 따라서 이들은 MP3폰으로는 단 한곡의 무료음악파일 재생도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달여 동안 계속됐던 이동통신업계와 음악저작권단체의 대립은 지난 3월 말에 문광부의 중재로 잠정 합의안을 이끌어내면서 일단 해소됐다.합의안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MP3폰에 음악저작권보호를 위한 기술을 채택한다. 둘째, 무료음악파일은 기존의 유료음악파일과는 달리 충분히 낮은 음질로 재생토록 하되 관련기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음질의 수준과 관계없이 72시간만 재생되도록 한다. 셋째, 사용자들이 MP3폰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음악파일의 사용료를 적정한 수준으로 낮추고 이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넷째, MP3플레이어 생산업체와 소비자단체 등 광범위한 이해관계자가 협의체를 구성해 이 합의를 포함한 음악저작권 관련 문제들을 재검토한다는 것이었다.하지만 LGT는 이 합의안을 거부했다. 남용 사장은 “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하면서까지 음악저작권단체의 요구를 수용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협상테이블을 빠져나왔다. 업계에서는 번호이동성제도 등의 도입으로 사활을 걸고 가입자 유치 확보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MP3폰의 음악재생을 제한할 경우 가입자 확보에도 적잖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해석하고 있다. 어쨌든 현 상황은 LGT가 무료음악파일을 무제한 재생할 수 있는 MP3폰으로 시장을 선점하는 데 성공한 형국이다.LG전자의 LP3000이 상대적으로 많이 팔리고 있는 것은 결국 무료음악파일을 무제한 재생할 수 있는 유일한 MP3폰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텔레텍 등은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MP3폰의 무료음악파일 재생을 3일로 제한한다”는 음악저작권단체와의 약속을 깰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어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MP3폰 신제품 러시업계에서는 올해 약 300만대의 MP3폰이 팔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 휴대전화시장의 규모가 1,500만~1,600만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 팔리는 휴대전화의 약 20%가 MP3폰인 셈이다. 최근에는 새로운 MP3폰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100만화소 카메라를 내장한 MP3폰(모델명 SPH-S1000)을 새로 내놓았다. 이 제품은 128MB 메모리를 내장하고 있으며 이중 68MB를 이동식 저장매체(이동식 디스크)로 활용해 MP3파일 등을 저장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MP3파일을 최대 17곡까지 저장해 들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조만간 SK텔레콤을 통해 와이드스크린을 채택한 100만화소 카메라폰(SCH-V500)을 MP3폰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또 6월 중에는 KTF를 통해 선보일 200만화소 카메라폰(SPH-V4400)에도 MP3를 기본기능으로 채택할 계획이다. 처음으로 MP3폰을 출시해 톡톡히 재미를 본 LG전자도 곧 출시되는 200만화소폰에 MP3 기능을 포함시켰다. 또 LP3000의 후속모델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LG전자는 올해 출시하는 기종의 30% 이상을 MP3폰으로 채운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박문화 정보통신사업본부 사장은 지난 1/4분기 실적발표회에서 “고급제품에는 MP3플레이어 기능을 기본으로 탑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LGT도 일본 카시오로부터 부품을 수입해 국내에서 조립생산하고 있는 캔유2(HS6000)에 MP3 기능을 추가해 5월 중에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캔유2 역시 100만화소 카메라를 장착한 고급 기종이다. 아직 MP3폰을 내놓지 않은 팬택앤큐리텔도 야심작으로 준비하고 있는 200만화소 카메라폰부터 MP3플레이어 기능을 채택했다. 이 제품은 5월 말에 SK텔레콤을 통해 판매될 예정이다. 팬택앤큐리텔은 이 제품에 뒤이어 대부분의 고급 제품에 MP3 기능을 채택할 예정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SK텔레텍은 지난 4월에 선보인 MP3폰 IM-7200P의 후속모델은 모두 MP3폰으로 만든다는 원칙을 세웠다. 올해 안에 4~5종의 추가 모델이 MP3폰으로 나올 전망이다. 6월 초에 출시할 100만화소폰에는 이미 MP3 기능을 채택했다. 이처럼 주요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200만화소폰 등 고가 모델에 MP3 기능을 기본으로 채택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앞으로 MP3플레이어가 카메라와 마찬가지로 휴대전화의 필수 기능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더구나 이동통신업계에서는 유료음악서비스를 새 사업으로 계획하고 있어 MP3폰의 보급속도도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삼성전자 관계자는 “MP3폰은 저작권 분쟁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도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다”며 “저작권 분쟁이 해결되면 이동통신사들도 음악파일제공 등 부가서비스에 나설 것으로 보여 MP3폰 판매량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