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석 ING생명보험 FC(37)는 올 1월까지만 해도 회계법인에서 근무하던 공인회계사(KICPA)였다.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지난 2001년 공인회계사시험에 합격했다. 세림회계법인과 신우회계법인을 거쳐 지난 2월 ING생명보험으로 ‘인생 대전환’을 꾀한 그는 과감한 결단을 후회하지 않는다.“IMF 외환위기 이후 회계사라는 전문가집단에는 위기의식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해마다 1,000여명의 회계사가 새로 탄생하고 있지만 정작 처음 입사한 회계법인에 남아 있는 비율은 10% 미만이지요. 그만큼 경쟁이 심하다는 겁니다. 회계사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객을 끌어오는 영업력이 중요해졌습니다. 보험업계로 온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회계사직업의 불투명성에 대해 고민하던 그에게 고교ㆍ대학 선배인 손상진 ING생명 강남부지점장의 조언은 마음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보험설계사가 빠른 속도로 전문화되고 있는데다 남들과 다른 회계사라는 조건이 성공을 앞당겨 줄 수 있다”는 선배의 말에서 강한 매력을 느낀 것이다.보험사로 출근하기로 결정하자 부모님과 가족, 지인들은 의아해 했다. 반면 회계사 동료들은 오히려 그를 새로운 분야의 ‘개척자’로 여기며 지금도 지켜보는 중이다.“보험설계사로 첫발을 내디딘 지난 2월에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회계사 특유의 분석력과 재무관리 능력으로 누구보다 상품설명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보험설계사는 단순히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당신을 진정으로 도와주려 한다’는 신뢰가 바탕이 돼야 고객 마음의 문도 열 수 있더군요.”공인회계사에서 보험세일즈맨이 된 지금 달라진 것은 수없이 많다. 우선 기업의 회계감사로 ‘갑’의 역할을 수행하던 입장에서 서비스 마인드로 무장한 보험세일즈맨으로 입장이 확 바뀌었다. 예전에는 복장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은 신뢰감을 주는 깔끔한 헤어스타일과 넥타이, 양복을 고수한다. 말투도 보수적 성향이 강한 회계사집단에 있을 때와는 달리 고객에게 자신을 한껏 드러내며 교감할 수 있도록 친근하고 부드럽게 바꾸었다.“기본급이 없는 100% 성과급 체제입니다. 공인회계사라는 자격증도 소용없어요. 보험계약을 한 건도 하지 못하면 월급은 0원이고 보험왕으로 거듭나면 20억원 이상입니다. 회계사로 계속 일했다면 당장은 안정된 생활을 유지했을 겁니다. 그러나 미래 발전가능성을 보면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이 한층 매력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실적이 어떠냐”는 질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고 대답한 그는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이겨 보험설계사로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는 이 업계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김의수 TNV금융컨설턴트그룹 FA/미국 워싱턴주립대 MBA2년전 입문 “뒤늦게 찾은 천직”“보험상품 몇 개 소개한 후 ‘계약하면 좋고, 싫음 말고’ 식으로 영업하는 행태에 깜짝 놀랐어요. 고객의 자산형성과 관리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면 재무분석-재무개선-위험관리까지 종합서비스를 해야 합니다. 보험을 판매하는 것은 그 과정의 일부에 불과하지요.”TNV금융컨설턴트그룹에서 파이낸셜 어드바이저(FA)로 일하고 있는 김의수씨(37)는 사내에서 가장 잘나가는 영업맨 중 한 사람이다. ‘자산관리의 함정’을 짚어내고 가장 적합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주는 ‘기본’에 충실한 덕에 한달 평균 30~40건의 계약을 따내고 있다. 월평균 수입만 1,000만원이 넘고 관리 중인 고객수는 300명선에 이른다.“영업이 적성에 맞는지 전혀 몰랐다”는 그는 부산 경성대 법대를 졸업한 후 미국 워싱턴주립대에서 MBA과정을 마쳤다. 귀국 후 현대자동차 기획실에서 일하다 부친이 경영하던 자동차부품회사 이사로 입사, 경영수업을 할 때만 해도 ‘부유한 엘리트’의 전형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지난 98년 IMF 삭풍에 회사가 부도를 맞았고 그후 모든 환경이 변했다. 달랑 2,000만원을 들고 상경, 닥치는 대로 일자리를 찾는 신세가 된 것.“중증뇌성마비 장애아인 큰딸의 치료비만 해도 엄청납니다. 상경한 후 보험업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는 암울한 생활이 이어졌죠. 하지만 2002년 보험영업을 시작해 지난해 TNV에 입사하면서 전화위복이 됐습니다. 지금은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평범한 중산층 서민들이 올바른 자산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만족과 보람을 느낍니다.”실제로 김씨의 영업스타일은 여느 보험설계사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보험상품 설명에는 최소한의 시간만 투자하고, 나머지는 자산현황 점검 및 개선에 할애한다. 그의 조언으로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시 짠 고객들이 주변에 서비스 내용을 소개, 다시 고객 네트워크가 확장되는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지고 있다.“보험사에 소속돼 있었다면 객관적인 시각에서 종합자산관리서비스를 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김씨는 “소소한 사은품 대신 고객이 정말 필요한 서비스를 아낌없이 준다”고 자신했다.심숙희 메트라이프생명보험 FSR/아동심리학 박사1년만에 억대연봉 “학위와 실적은 무관”“보험설계사가 제 인생 마지막 일이라고 믿고 뛰어들었습니다.”심숙희 메트라이프생명보험 FSR(48)는 박사출신의 보험설계사. 지난 96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에서 아동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심리치료ㆍ상담가로 활약해 왔다. 석사학위 취득 전부터 부산지역 전문대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국립부산대남병원에서는 4년 동안 심리치료사로 일했다. 90년에는 부산아동발달연구소를 설립해 99년까지 소장으로 근무하며 청소년 상담전문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전혀 다른 세계인 보험설계사로 변신한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고교 동기 중에 박미희 메트라이프생명 매니저가 있어요. 매사에 자신감 넘치며 적극적으로 일을 하는 성공한 여성이라고 늘 여기고 있었습니다. 박매니저가 제게 보험설계사로 일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지요. 오랫동안 청소년 진로상담을 해 오다 제 자신의 진로까지도 대폭 수정한 셈입니다.”지난해 4월 메트라이프생명 부산본부에 입사한 그녀는 12월까지 8개월 동안 70~80건의 계약실적을 달성했다. 지난 1년간 벌어들인 연봉도 1억원 이상이다. 청소년 상담전문가로 활동하며 받았던 3,500만~4,000만원의 연봉보다 3배 이상 벌고 있다. 세계 보험설계사업계에서 성공의 잣대로 여겨지는 백만달러원탁회의(MDRT)에 보험설계사 입문 첫해부터 회원으로 오르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재학 때부터 심리학 이상으로 역학에도 관심이 있었어요. 인간에 대해 성찰하는 방법이 서양에서는 심리학, 동양에서는 역학이라고 봅니다. 그때부터 독학을 해와 다른 사람의 사주도 봐주곤 했어요. 고객에게 심리상담과 동시에 역학상담 또한 해주고 있습니다. 일종의 영업노하우인데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간혹 “박사학위까지 받고나서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 고객도 있다. 그녀는 “가방끈 긴 사람에게 영업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회풍토가 여전히 남아 있다”며 ‘고정관념 탈피’를 강조했다.“남들보다 공부를 많이 해 박사학위를 땄다고 이 세계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지는 않습니다. 보험설계사는 철저히 영업실적으로 평가받아요. 학위와 실적은 무관합니다. 보험설계사는 제 적성에 꼭 맞아 일할 때마다 재미가 넘칩니다. 젊은 보험설계사에 비해 체력이 약하다는 게 단점일까, 다른 부분은 아무 문제없습니다.”그는 “색다른 영업노하우로 더 좋은 실적을 거두겠다”며 한껏 자신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