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시절 독일 생태계 보고서에 감명 … 생태계보호 전도사로 변신중

나뭇잎이 짙어지는 계절이 오면 유난히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늘푸른나무병원(www.nature114.co.kr)의 강유석 원장(46)은 이들 중 한 사람이다. 각종 나무들을 수시로 돌아보고 상태를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강원장의 직업은 직함에서도 나타나듯 단순 나무 관리자가 아닌 치료사다. 주요 ‘치료고객’은 100세 이상의 고목. 이러다 보니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의뢰받은 지정 보호수들이 주 고객이다. 최근 대우건설의 지원으로 1차로 보호 프로그램을 마무리한 뚝섬역 인근의 느티나무는 350년을 살았다.“예전에는 고목들을 정부가 아닌 마을사람들이 동네 보호수라며 신주 모시듯 관리했습니다. 요즘에는 정부, 지자체, 기업들이 나무사랑에 더욱 적극적이어서 다행입니다.”특히 SK는 80년대 후반부터 울산에 공원조성을 위해 1,000여억원을 투입해 조만간 울산은 공업도시에서 공원도시로 바뀔 것이라고 강원장은 귀띔한다.전국에서 손꼽히는 나무 치료전문가는 20여명 안팎에 불과하다는 게 강원장의 설명. 물론 강원장은 그중의 한 사람이다. 강원장의 병원에서 일을 배워 독립한 이들만 해도 6명에 이른다.일명 나무의사들은 1세대와 2세대가 확연히 구분된다고 한다. 대체로 1세대들은 환갑을 훌쩍 넘겼고 2세대는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에 포진돼 1세대와 2세대의 차이가 약 10년 가까이 난다는 것. 1세대와 2세대의 차이가 길고 그나마 이들의 숫자가 늘지 않은 것은 강인한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힘들 정도로 일이 고되기 때문이다. 나무를 잘 타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10여m 이상의 높이에 매달려 시술해야 하기에 담력도 커야 한다. 4~5년차 치료사의 경우 연봉이 2,400만~2,600만원에 불과한 것도 젊은 사람들을 유인하지 못한 이유다. 하지만 10년차의 전문가 수준에 이르면 수억에서 수십억원의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강원장이 나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 시절. 그는 펜팔 중인 일본인 여학생 미쓰코로부터 독일 생태계 보고서 및 자료사진들을 받아 보고 어린 마음에도 무척 놀랐다고 한다.“평소 생태계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잘 관리되고 있는 독일 생태계 소식을 접하고는 무척 부러워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미쓰코는 펜팔 중인 독일 학생으로부터 자료를 받았다고 하더군요.”강원장은 이때의 영향으로 경희대 조경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가 나무 치료라는 독특한 길을 걷게 된 것은 88년 올림픽공원에 옮겨다 심은 헌수목의 고사 원인 조사를 본격적으로 맡으면서다. 그때 정부는 올림픽공원 조성을 위해 면단위로 고목 2주씩을 올려 보낼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올라온 고목들이 며칠 버티지 못하고 계속 죽어나가자 정부가 대책마련을 위해 강원장을 긴급 투입한 것이다.“당시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을 맡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밤낮으로 수많은 외국서적들을 뒤적이며 나무의 사인을 파헤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치료법을 터득하게 된 것이죠.”이때의 공로를 인정받아 올림픽공원의 식수목을 총괄해 온 강원장은 93년 지금의 늘푸른나무병원을 세웠다. 소위 잘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겠다고 하니 처음에는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나중에 적극 지지해줬다고 한다.강원장은 그동안 정부가 지정한 8,000주의 보호수 중 2,000주를 치료하고 관리해 왔다. 나무 치료는 지상부의 외과수술과 지하부의 뿌리수술로 나뉜다. 외과수술은 길게는 보름 이상 걸리지만 뿌리수술은 아무리 길어야 하루를 넘기지 않는다고 한다. 뿌리가 하루 이상 노출되면 죽기 때문이다. 따라서 뿌리수술은 치료사 및 보조요원들을 많게는 수십명을 동시에 동원해 단시간에 끝낸다. 부산시 사하구 괴정동의 천연기념물 회화나무(500년생)는 뿌리수술 등 대공사로 기사회생해 강원장의 맘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90년대 중반 부산 사하구청의 의뢰를 받고 나무를 찾아가 보니 뿌리 밑에서 우물이 터져나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었다고 단정했습니다. 하지만 나와 동아대 김승환 교수는 대수술과 인근에 공터로 나무를 옮겨 살려냈지요. 지금 그 고목은 잘 자라고 주변은 공원화돼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습니다.”서울, 부산 등 대도시 가로수의 건강상태는 어떨까. 강원장은 극히 불량한 상태라며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인다.“나무도 생명체입니다. 생명체는 자신에게 위기가 닥치면 버티기 위해 안 좋은 기운을 배출합니다. 나무를 심는 이유가 뭡니까. 궁극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좋으라고 심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무에게 최악의 상황을 맞게 하면 나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겠습니까.”1919년 일본인들이 작성한 <조선노거명목>에 등재된 나무들은 1만주였다고 한다. 그러나 84년 산림청 조사에서는 8,000주로 줄었다. 강원장은 이에 대해 “한국전쟁, 화재 등의 원인보다도 평상시 잘못 관리해 죽은 나무가 더 많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정부가 70년대 새마을운동을 벌이면서 나무 주변을 단정하게 하기 위해 시멘트로 둘러치게 했는데 이 같은 ‘무지몽매’한 관리로 시들어 죽은 나무들이 부지기수에 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퀴즈 하나. 땅으로 솟아난 나무의 뿌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흙으로 덮는다고 답하면 ‘땡’이다. 뿌리도 숨을 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솟아난 뿌리는 그대로 둬야 한다는 게 강원장의 퀴즈풀이다.강원장이 안타깝게 여기는 게 하나 더 있다. 구멍난 나무에는 보통 새나 기타 동물들이 둥지를 틀기 마련인데 식수목을 담당하는 관청에서는 이들을 죽여서라도 나무를 살리라고 주문한다는 것이다. 강원장은 “생태계는 동식물이 더불어 사는 삶인데 하나를 살리기 위해 나머지를 죽이면 생태계가 어떻게 되겠느냐”며 “나무 주변에 펜스를 치는 등 쓸데없는 데 낭비할 것이 아니라 생태계의 근본적 치료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강원장은 지난해 강원도 둔내 인근에 자연학교를 세웠다. 폐교된 학교를 생태계 체험장으로 둔갑시켰다. 숙소 및 강의실, 곤충학습장, 전통온실 등 아기자기하게 꾸민 것이다. 전문가로부터 동식물의 삶에 대해 배우고 직접 현장에서 경험해 자연스럽게 생태계를 이해하고 보전해 나가도록 한다는 뜻에서다.강원장의 꿈은 소박하다. 아직도 치료받지 못하고 시들어 가는 나무들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나 지자체, 기업들이 지금보다 좀더 나무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기를 소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