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녀의 첫 만남은 그야말로 악연이다. 여경찰 경진(전지현)이 교사 명우(장혁)를 소매치기로 오인해 체포한다. 모든 운명이 그렇듯이 우연에서 출발한 연인들의 관계는 필연으로 승화한다. 명우의 죽음에 관한 복선이 현실로 나타날 즈음 이야기는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든다, 산 자의 그리움과 갈망이 죽은 자의 환영과 원혼을 끊임없이 불러내는 것이다,사랑과 죽음이 짝을 이룬 곽재용 감독의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이하 여친소)는 얼핏 팬터지멜로 <사랑과 영혼>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사랑과 영혼>의 데미 무어가 슬픔으로부터 도피하고 말았다면 이 영화의 경진은 집착의 고통에서 벗어나 희망을 발견한다.<여친소>는 곽감독의 전작 <엽기적인 그녀>와 <클래식>을 잇는 운명적 사랑에 관한 연애기다. 두 전작이 각각 로맨틱코미디와 멜로란 장르적 속성에 갇힌 데 비해 신작은 로맨틱코미디와 멜로에다 팬터지적 요소까지 아우르고 있다. 두 남녀의 만남과 이별, 재회의 여정은 리얼리즘 관점에서는 허무맹랑하다. 그러나 사랑이 빚어내는 기쁨과 슬픔의 감정은 매끄럽게 조탁됐다. 사랑의 기쁨은 코미디, 슬픔은 멜로, 재결합하고 싶은 그리움의 열망은 팬터지 양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말하자면 사랑의 행위보다 정서에 관한 영화다.경진은 <엽기적인 그녀>의 주인공인 ‘그녀’와 정서적으로 일치하는 인물이다. 연인에게 수갑을 채운 채 범죄자들과 맞대결하고 빗발치는 총탄에도 홍콩 느와르의 액션영웅처럼 태연자약하게 대처한다. 경찰 제복의 ‘익명성’이 강조된 과장되고 엽기적인 캐릭터다. 이 대목은 현실성을 약화시키고 웃음의 강도도 떨어뜨렸다.과장된 겉모습과 달리 경진의 내면에는 순수함이 감춰져 있다. 그녀의 순수함은 쌍둥이 언니와 남자친구 명우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결합해 극단적 고통으로 표출된다. 그렇지만 경진은 잃어버린 연인을 잊으려고 결코 서두르지 않는 ‘과거의 여인’이다. 바람개비와 책, 종이비행기 등 현실 속의 상징물에서 망자의 존재를 끊임없이 떠올리고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현대적 외양과 상반된 전통적 심성은 캐릭터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린다.그녀를 지켜보는 명우는 숨진 다음에도 작중 화자 역을 유지하는 게 이채롭다. 그리움의 환영이 현실세계에 간섭하는 것이다. 명우의 처음과 마지막 내레이션이 동일한 양식을 취한 것은 인연의 순환을 의미한다. 이는 동양적 세계관을 응축한 구성이다. 스페인 출신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작중 화자인 아들이 숨진 뒤 어머니의 이야기로 바뀌는 서양식 직선 구조와는 다르다. 상영 중, 15세 이상.문화산책▶오페라 ‘토스카’6월9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제누스오페라단의 두 번째 정기공연. 토스카 역을 맡은 캐슬린 맥 칼라와 바르바라 코스타를 포함해 미구엘 산체스 모레노, 김동규 등 국내외 정상급 성악가가 출연한다. 창작극과 소극장 오페라 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독특한 연출로 오페라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거장 장수동이 연출을 맡았다. (1588-7890)▶이탈리안 3 테너 내한공연6월15일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난해 서울월드컵 경기장에서 공연한 오페라 ‘투란도트’ 주역들을 초청했다. 테너 니콜라 마르티누치, 테너 알베르토 쿠피도, 테너 다리오 볼론테의 3 테너의 공연으로 시작해 테너 칼라프 역의 니콜라 마르티누치와 투란도트 역의 소프라노 지오반나 카솔라의 듀오콘서트로 진행한다. 지휘는 <투란도트>의 지휘를 맡았던 카를로 팔레스키. (1588-7890)▶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6월20일까지 청담동 유씨어터. 백설공주를 짝사랑한 난장이 ‘반달이’이야기. 어린이 대상 연극으로 2001년 첫선을 보인 작품. 저예산으로 만들어지는 워크숍 수준의 공연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성인극 제작비를 능가하는 적극적인 투자로 완성도를 높였다. 박승걸 연출. (02-3444-0651)▶7080 빅콘서트6월12일 오후 7시30분 상암 월드컵경기장. 지난 4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려 중장년층에게 인기를 끌었던 ‘추억의 7080 빅콘서트’ 앙코르 무대. 샌드페블즈, 건아들, 휘버스, ‘ball’(블랙테트라ㆍ옥슨80ㆍ로커스트ㆍ라이너스 연합팀), 구창모, 이봉환 등 송골매, 5인조 그룹 장남들이 출연한다. 무대설비에만 약 15억원을 투자해 150평의 대형무대로 관객을 압도할 예정이다. (1588-7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