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 가격은 신부에 따라 달라집니다.”강경자 보누루웨딩드레스전문스쿨 원장(48)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정도의 엉뚱한 말로 웨딩드레스업계의 실상을 밝혔다.“같은 웨딩드레스숍에서 똑같은 드레스를 놓고 두 명의 신부가 각각 다른 가격으로 빌려 입을 수도 있는 것이 웨딩드레스입니다. 예를 들어 드레스 대여비용으로 300만원 정도 예상하고 있는 신부가 찾아오면 200만원짜리 드레스도 300만원이라고 해야 관심을 갖거든요. 좀 과장되게 말하면 전문업체 10곳만 다녀 보면 평균가격이 처음의 50%로 내려간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더욱이 그녀가 지금의 웨딩전문스쿨을 만들 당시인 90년대 초만 해도 웨딩드레스업계는 매우 폐쇄적이었다는 설명이다.현재 강원장은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를 배출하는 보누루웨딩드레스전문스쿨을 운영 중이다. “완벽하게 실무중심으로 강의한다”는 강원장의 자랑은 학원 내에 함께 있는 보누루웨딩드레스전시센터를 보면 실감할 수 있다. 드레스전시센터에는 수강생과 졸업생의 작품이 전시돼 있는데 신부에게 실제로 판매하는 ‘상품’이다. 원단가격에 학생들의 공임 정도만 보태 30만~50만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 판다. 또 일종의 소호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보누루웨딩드레스마스터센터 역시 강원장의 명함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전문스쿨 졸업생은 자신의 사업체를 세우기 전에 이곳에서 1년 동안 준비기간을 가질 수 있다. 6명의 디자이너가 함께 활동할 수 있는데, 매월 25만원만 내면 기자재와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마스터센터의 이름을 달아 직접 드레스를 판매할 수도 있다.의상디자인을 전공한 강원장은 패션업체 디자이너를 거쳐 사립학교 가정과목 선생님으로 일했다. 하지만 75학번인 강원장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80년대 초만 해도 사립학교에서는 출산과 동시에 사직서를 제출하는 일이 허다했다. 학교를 그만둔 뒤에는 패션디자인학원의 강사로 변신했다. 그리고 88년에 학원 수강생들과 함께했던 유럽여행으로 그녀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았다.“난생 처음 유럽에 갔는데 볼 것도 많고, 그동안 참 좁은 세상에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너무 조그맣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 싶었죠. 내 사업을 꾸려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습니다.”이후 91년에 강원장은 보누루패션디자인학원을 세웠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가 처음부터 웨딩드레스전문학원을 표방한 것은 아니다. “당시 외국개방의 물결이 일면서 학원개방화에 대한 얘기도 떠돌았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해외의 유명 패션디자인학원이 국내에 소개될 거라는 이야기가 떠돌았습니다. 그래서 학원을 만든 지 1년 만에 웨딩드레스학원으로 특화하게 된 겁니다.”하지만 이렇게 우연한 계기로 방향을 잡은 웨딩드레스전문학원 때문에 강원장은 업계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고.“70~90년대 초반까지 웨딩드레스숍은 드레스를 필리핀에서 들여와 이를 비싼 값에 빌려주는 형식으로 운영됐습니다. 업체에서 하는 일도 신부에게 옷을 입혀주는 그야말로 ‘도우미’ 수준이었죠. 그런데 제가 웨딩드레스전문학원으로 특화하면서 드레스 가격이 일반에게 공개되니까 업계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욕도 엄청나게 많이 먹었어요.”그녀는 “지금은 물론 업계의 수준을 올려놓았다는 평을 듣는다”고 강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국내에서 웨딩드레스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인데다 웨딩드레스 제작은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이 당연시돼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이런 시각은 “그저 추억 속 이야기일 뿐”이라는 게 그녀의 반응이다.사실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는 더 좋은 사례는 학원이름에 관한 것이다. 보누루는 불어의 보뇌르(Bonheurㆍ행운, 행복을 뜻함)에서 따온 말이다. 학원을 연 90년대 초에는 외래어 상호등록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보뇌르의 소리를 따 이를 한자어처럼 만든 보누루가 학원이름이 됐다.패션디자인학원에서 웨딩드레스전문학원으로 분야를 세분화하면서 강원장은 걱정거리가 없어졌다. 미국이나 호주에서 웨딩드레스숍을 갖고 있는 동포들이 수강생을 보내 달라고 연락해 오는가 하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도 학생 제품에 대한 수요가 있을 정도로 국제화 바람을 실감하기 때문이다.더욱이 그녀는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가 넘쳐난다”고 자부한다. 한동안 ‘알뜰신부’ 사이에서 유행했던 ‘드레스 직접 만들기’ 강좌에 대한 아이디어도 강원장에게서 나온 것이다. 한 지상파 방송에서 신부들을 대상으로 한 드레스 제작 강의를 소개한 뒤 문의전화를 600통이나 받은 적도 있다. 요즘은 국내에서도 스포츠댄스가 대중적인 취미활동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댄스드레스에 대한 수요까지 증가하고 있어 도통 고민이 없다는 반응이다.“지방에서는 분원을 내 달라는 요청도 있지만 그것만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어떤 디자인이든 디자인은 문화입니다. 안목을 키우는 게 중요한데 유럽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서울에 와서 배워야죠.”강원장은 해외 분원을 낼 계획은 갖고 있다. 어떤 분야에서든 글로벌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앞서 나갈 수 없는 시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미 중국에서는 1년에 3차례씩 30명 단위의 유학생들이 찾아와 보누루웨딩드레스전문스쿨의 강의를 듣고 있다. 또 이 학원 수강생들이 직접 이탈리아로 연수를 가기도 한다. 올해로 14회째를 맞는 이탈리아 연수과정에는 제휴를 맺고 있는 현지 웨딩드레스업체에서 드레스 제작과정을 견학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폐쇄적이지 않아서 수강생들에게는 제작과정 전체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전문업체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웨딩박람회를 찾아가기도 한다. 강원장은 박람회 주최측에 “수강생들은 반드시 가까운 미래에 전문업체를 설립할 예비사장님들”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학생들은 각자의 집 주소가 적힌 명함을 들고 유럽의 선진디자인을 접하게 된다.정작 강원장 본인은 웨딩드레스업체를 열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전문화시대잖아요. 이제 강의도 백화점식 강의는 안된다고 봅니다. 제 전문영역은 강의죠. 저는 좋은 웨딩드레스업체의 주역이 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프로페셔널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그녀의 목표는 웨딩드레스 전문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수강생들이 좀더 자존심을 갖고 웨딩드레스 제작에 임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웨딩드레스 디자이너는 자질도 중요하지만 근성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처음 수강생을 맞을 때 ‘10년 일할 자신이 없으면 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진로상담시에는 부모님과 함께 오라고 하고요.”실제로 이 학원 수강생 중 60%만이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인터뷰 내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응한 그녀에게 ‘정말 이 사업을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은 없느냐’고 다시 한 번 물었다.“사실 일에 집중하면 아이디어는 언제든 나오기 마련이고 어려움을 겪을 일이 없을 것 같은데요. 운이 좋았던 덕분인지 아직까지 큰 고민은 없어요.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욕할지 모르겠지만.”일을 뺀 나머지 시간에 강원장은 운동과 영어회화에 매달린다. 쇼핑도 즐긴다는 그녀는 “열심히 일한 나에게 보상을 해 준다는 차원”이라고 당당하게 밝혔다.마지막으로 “가정과목 선생님을 계속했다면 지금 어떤 모습이었겠느냐”고 묻자 역시 야심이 묻어나는 대답이 돌아왔다.“글쎄, 별로 생각해보지는 않았는데, 아마 교장선생님 자리는 한번쯤 맡아 보지 않았을까요?”약력 :1956년 서울 출생. 덕성여대 의상학과 졸업. 이화여대 디자인대학원 석사. 이화여대 대학원 박사 연구과정 수료. 보누루웨딩드레스전문스쿨 설립. 목포대 의류학과, 인천대 의생활학과, 중앙문화센터 등 강의 경험 다수, 일부는 현재도 출강 중. 2002년 한국섬유신문사 주최 한국섬유대상 교육학술부문 수상. 저서 : <날마다 웨딩드레스를 입는 여자>(199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