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 공공요금 수납 · 입출금 · 꽃배달 … 안되는게 없는 '리빙스테이션'

의류회사 디자이너 김영은씨(28)는 편의점 마니아다. 수시로 편의점에 들러 생활 주변의 일들을 처리한다.처음에는 김밥, 라면, 음료수 등 간단한 먹거리를 찾아 들르다 수시로 진열되는 새로운 상품들을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자연스럽게 편의점이 제공하는 각종 생활편의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서 편의점은 김씨의 ‘생활 거점’이 됐다. “집, 회사와 함께 편의점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생활 스테이션”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라이프스타일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하루에 적어도 한두 번은 꼭 들른다는 ‘편의점 걸’ 김씨의 하루를 따라가 보자.#오전 8시 출근길에 집 앞 편의점에 들러 전날 사 두었던 부모님 생신선물의 택배를 맡긴다. 부모님도 가끔 이 편의점으로 밑반찬 택배를 보내 퇴근길에 찾아가곤 한다. 아차, 지갑이 비었지. 카운터 옆 ATM에서 예금을 인출해 텅 빈 지갑을 채우고 나니 마음까지 두둑하다. 내친김에 T-머니 교통카드도 빵빵하게 충전한다.#낮 12시30분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회사 앞 편의점에 들러 디지털카메라 인화를 시작한다. 자신은 주말에 친구들과 놀러가 찍었던 사진을, 옆자리 동료는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인화하느라 부산스럽다. 잘 나온 것은 크게, 깜찍하게 나온 것은 작은 스티커 사진으로 출력하고 나니 주말 기분이 다시 살아난다.#오후 3시 아침회의에서 팀장이 읽어보라고 한 책을 인터넷 서점으로 주문한다. 배송지는 물론 집 앞 편의점. 퇴근길에 찾아가면 되니 두 손과 마음, 가격까지 모두 가볍다.#오후 7시 남자친구와 근처 편의점에 들러 휴대전화 배터리를 충전한다. 남자친구는 로또 대박에 도전한다며 숫자 고르기에 여념이 없다. 옆에서는 한 아주머니가 전화요금 수납 신청을 한다. 아, 내일 점심시간에 이달 공공요금을 한꺼번에 처리해 버려야지.#오후 9시 귀갓길에 집 앞 편의점에서 DVD 한편을 빌린다. 극장 개봉 때를 놓쳐 내내 보고 싶었던 영화다. 새로 나온 CD도 여기서 사곤 한다. 오늘은 예쁜 꽃바구니도 배달 신청한다. 지방에 있는 친구에게 축하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늘 웃는 얼굴의 종업원이 “이사, 방역, 침대ㆍ소파 클리닝, 도배 등을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토털홈케어서비스를 시작했다”고 일러준다. 올 가을 신혼집을 구하면 꼭 이용해 보리라.김씨의 일과에서 보듯 편의점에서는 안되는 게 없다. ‘편리한 가게’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리빙 스테이션’으로 개념이 확장됐다. 은행, 우체국, 택배업체, 사진관, 쇼핑몰이 모두 편의점 안에 있다. 편의점업체들은 “생활의 편리함을 위한 서비스라면 무엇이든 개발ㆍ판매한다”는 태세다. 진정한 생활밀착형 점포로 자리잡기 위해 안간힘이다.김씨처럼 편의점 서비스를 애용하는 마니아들은 “편의점 서비스의 진화는 언제까지, 어느 수준까지 될까” 궁금해한다. 그만큼 편의점에서 이뤄지는 각종 생활편의 서비스는 종류와 품질, 규모 면에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생활편의 서비스는 편의점이 보유한 가장 큰 차별성이기도 하다. 현재 편의점이 내놓고 있는 생활편의 서비스는 업체마다 30~40여 가지에 이른다. 지난 97년 2월, LG25가 공공요금 수납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생활편의 서비스의 개념을 제시한 후 수많은 서비스들이 ‘IN-OUT(도입-퇴출)’을 거듭했다. 업체마다 2~3명의 서비스 전담 MD들이 수시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덕분에 생활편의 서비스의 품질과 다양성은 편의점 선진국 일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오히려 ‘낫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휴대전화 배터리 충전이나 온라인 복권 판매는 일본에도 없는 서비스다. 개념의 도입에만 20년 정도 뒤처진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장세가 아닐 수 없다.다른 소매점포와 달리 편의점이 고객의 생활편의를 도모할 수 있는 것은 차별화된 업태에 기반을 두고 있다. 24시간 운영이라는 독보적인 차별성과 방대한 전국 네트워크가 생활편의 서비스 개발 및 확산의 주요 동력이다.예를 들어 ATM이나 택배서비스 등 전문업체가 엄연히 존재하는 서비스가 편의점에서 사랑받는 것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ATM은 은행 업무가 종료되는 야간과 주말에는 오히려 ‘고마운 존재’가 되고 있다.그러나 이들 생활서비스가 매출구성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LG25의 경우 5~10%선에 그치고 있다. 그럼에도 생활편의 서비스 개발에 매달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LG유통 홍보팀 김일진 대리는 “부가 매출 효과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각종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식품, 생활용품 구입 등으로 매출 연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택가, 학원가 등 입지의 특성 등을 다각도로 검토한 후 저마다 차별적으로 서비스를 도입하는 것도 효과적인 매출 연계, 즉 수익성 증대를 위해서다. 물론 편리함을 추구하는 업태 본연의 의무가 서비스 제공의 기본임은 말할 것도 없다.최근의 생활편의 서비스는 정보기술(IT)와 만나 더욱 첨단 자동화되는 추세다. 특히 ATM 하나로 수십가지 서비스가 가능한 시스템이 한창 개발 중이다. 현금인출뿐만 아니라 각종 티켓 발권, 충전, 공공요금 납부, e메일 서비스 등이 가능토록 하는 게 골자다. ‘좁은 공간에서 최대의 효율을 가져오는 서비스 시스템’이 최근 편의점업계의 최대 화두다. 이는 진정한 ‘거리의 정보ㆍ생활기지’로 거듭나겠다는 편의점의 의지이기도 하다.공공요금 수납97년 LG25가 처음으로 도입한 후 현재 훼미리마트, 세븐일레븐 등 3개사에서 실시하고 있다. 전기ㆍ전화요금 수납이 가능하며 휴대전화 요금 납부도 가능하다.전기ㆍ전화요금 수납 서비스는 편의점업체가 한국전력, 한국통신과 제휴해 POS시스템을 이용한 ‘바코드 온라인(Bar code on-line)방식’을 이용한다. 데이터가 각 업체 시스템과 한국전력, 한국통신의 전산 호스트에 곧바로 전송돼 요금납부가 이뤄지는 구조다.보험료 납부도 가능하다. LG25가 지난 2001년 11월부터 동부화재, LG화재의 자동차보험료 수납 서비스를 도입한 이래 2002년에는 훼미리마트, 바이더웨이가 동부화재와 손을 잡았다. 지난 6월25일부터는 세븐일레븐이 보험료 수납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택배서비스편의점 대표 서비스 가운데 선두라 할 수 있다. 특히 훼미리마트, LG25, 바이더웨이 3사는 2000년 5월 공동출자를 통해 ‘e-CVS 넷’이라는 전문업체를 설립하고 대한통운에 의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3사 연합을 통해 약 5,000개 점포에 이르는 전국 점포망과 물류망을 확보하고 있다. 세븐일레븐, 미니스톱은 각각 현대택배를 통해 독자적으로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당일 오후 3시 전까지 택배물을 맡기면 전국 어느 곳이든 다음날 도착이 가능하다.택배서비스는 현재 C to D(CVS to Door) 방식에서 C to C(CVS to CVSㆍ편의점에서 편의점으로의 배송) 방식으로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ATM서비스다기능 ATM, CD기는 최소 공간에서 최대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는 ‘마술상자’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현금인출, 계좌이체, 무통장입금,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등 다양한 금융서비스에 항공권과 승차권 발매서비스, 보험 및 증권업무도 가능한 원스톱 서비스로 업그레이드될 전망이다. LG25의 경우 1,800개의 점포 중 약 1,000개의 점포에 ATM이 설치돼 있으며, 점포당 월 1,000건 이상 이용되고 있다.휴대전화 충전일본에도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서비스다. 일본의 경우 휴대전화 기종이 다양해 표준충전기 개발이 어려워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휴대전화 사용이 크게 늘어나면서 대부분의 편의점에 도입돼 대표적인 편의점 서비스로 자리잡았다.화면상으로 자신의 휴대전화 기종에 맞는 번호를 선택한 뒤 동전과 함께 부스에 배터리를 넣고 문을 닫으면 20분 만에 충전이 된다. 국내에 출시된 전 휴대전화 모델을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요금은 1,000원이다. 2001년 처음 선보인 이후 계속 충전 시간이 단축되고 있으며 새로운 휴대전화 기종 출시와 더불어 충전기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인터넷쇼핑몰 픽업온라인쇼핑몰에서 상품을 주문한 후 언제든지 가까운 편의점에서 물건을 찾을 수 있는 서비스다. 낮에 집을 비우는 맞벌이 가정이나 귀가가 늦은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하다.훼미리마트, LG25, 바이더웨이 3개사의 편의점 중 이용하려는 곳을 선택하면 2~3일 만에 해당 편의점으로 도착된다.배송조회는 3사 합자회사인 e-CVS넷(www.e-cvsnet.co.kr)을 통해 가능하고, 주문상품이 편의점에 도착하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또는 e메일로 안내해 준다. 모닝365, 알라딘, 예스24, 인터파크, 핫트랙 등의 쇼핑몰에서 이용할 수 있다.우체국 대행 서비스8월부터는 우체국 서비스도 시행된다. LG25는 지난 6월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와 ‘우체국 내 편의점(가칭 포스털숍(Postal Shop)’입점을 위한 업무제휴 조인식을 가졌다.포스털숍은 우체국이 영업하지 않는 시간에도 우편물을 발송, 금융상품 수납 등 우체국 관련 일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서비스다. 우체국과 편의점이 제휴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일본으로 이어 두 번째다. LG25는 올해 서울 경기지역 2~3곳에 ‘포스털LG25’를 시험운영하고, 2005년부터 2006년까지 단계적으로 출점해 성과가 좋을 경우 전국 우체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디지털카메라ㆍ디지털카메라폰 인화LG25, 바이더웨이, 훼미리마트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부 점포를 대상으로 실행하고 있다. 장비가 워낙 고가여서 현재 비용 대비 수익성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다. 디지털카메라 및 디지털카메라폰으로 입력된 이미지를 즉석에서 인화할 수 있는 셀프 인화서비스를 말한다.토털홈케어세븐일레븐은 이비즈통인과의 제휴를 통해 업계 최초로 토털홈케어 서비스 ‘통인홈마스터’를 내놓았다. 포장이사 전문업체로 잘 알려진 노하우를 기반으로 7월부터 이사를 비롯, 하우스 클리닝, 광촉매, 가사도우미, 베이비케어, 침대ㆍ소파 클리닝, 방충 방역, 도배 바닥, 스팀광 세차 등을 원스톱으로 제공하고 있다. 한번의 신청만으로 모든 서비스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선진국형 서비스다.상품권ㆍ패키지상품 판매각종 상품권과 여행ㆍ영화 등의 패키지상품도 편의점에서 살 수 있다. 미니스톱은 주5일 근무제에 맞춰 레저상품권 취급을 강화하는 한편 제화상품권, 외식상품권, 문화상품권 등 다양한 상품권을 할인, 취급하고 있다.바이더웨이는 영화 패키지 상품을 출시했다. 영화 <투모로우> 예매 티켓 2장과 먹거리를 나들이용 포장박스에 넣어 1만1,000원(시중가 1만7,000원)에 판매했다. 앞으로도 ‘먹는 즐거움에서 보는 즐거움까지’ 동시에 구현하기 위한 공연, 음악회, 뮤지컬 등의 패키지 상품 판매를 확대할 계획이다.INTERVIEW 김경환 LG25 비식품팀장“고객이 편리함 느낄지 먼저 따지죠”LG25 김경환 비식품팀장 책상에는 언제나 스크랩한 신문, 잡지와 메모지가 쌓여 있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하고 어떤 매체를 보든 편의점과의 연계를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생활편의 서비스의 첫째 조건은 실효성입니다. 많은 고객이 편리함을 느낄 수 있는지를 먼저 따져봅니다. 때로는 서비스 상품 개발에 1년이 넘게 소요되기도 하지만, 유효한 서비스라고 판단되면 반드시 실현시키지요.”LG25는 지난 97년 공공요금 수납 서비스를 선보이기 위해 1년 동안 공을 들였다. 은행권에 고정돼 있던 전기ㆍ전화요금 수납을 편의점 다점포망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한국통신과 한국전력을 설득하는 데만 6개월이 소요됐다고. 요즘은 ATM 하나로 금융뿐만 아니라 수백가지 서비스가 가능토록 시스템을 통합하는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또 인터넷쇼핑몰과 마일리지를 공유, 온ㆍ오프라인 비즈니스가 윈윈하는 모델을 개발 중이다.LG25의 생활편의서비스 개발 담당 MD는 김팀장을 포함해 3명. 일주일에 한번씩 아이디어회의를 열어 새로운 서비스 개발을 논의한다. 시행 후에도 수시로 이용률을 살펴 문제가 발견되면 수정ㆍ보완을 거친다. 개중에는 흔적 없이 사라진 서비스도 적잖다.“유통구조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라 생명력이 다하는 서비스 상품들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간혹 잘못 기획된 서비스도 나오곤 하지요. 하지만 서비스의 도입-퇴출이 계속되면서 생활편의서비스의 품질도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습니다. 이미 편의점은 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진화가 계속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