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양승득 편집장‘조하리 창’(Johari’s window)이라는 게 있다.주창한 학자들의 이름을 딴 이론으로 인간의 의사소통 심리구조를 네 가지 영역으로 구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자신도 알고 상대도 알고 있는 열린 창’, ‘자신은 알지만 상대에게는 숨겨지는 숨겨진 창’, ‘정작 자신은 모르지만 상대는 쉽게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창’, ‘상대나 나나 모두 알지 못하는 암흑의 창’. 이렇게 네 가지 영역이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인간관계가 설립된다는 이야기다.이 조하리의 창을 우리나라 경기상황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나도 알고 남도 아는 것은 불경기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는 모르지만 관찰자인 남에게 보이는 면은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가 밝다는 사실이다. 많은 외국인투자가들은 전 국민의 우려와 달리 국내 경기에 대해 낙관적인 코멘트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제임스 루니 마켓포스 사장(50) 역시 한국의 경제상황은 걱정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대다수의 선진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불경기가 계속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의 경제성장 속도는 오히려 평균치를 웃돈다는 것이다.대개 외국인투자가들의 의견은 우리나라의 잠재적인 성장 가능성만을 강조해 막상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루니 사장은 한국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바탕으로 한국경제의 장단점을 족집게처럼 파악하고 있었다.그는 “다만 경제 성장속도가 기대 수준에는 못미친다”면서 “불확실성으로 인한 심리적 위기(Emotional crisis)가 재정적 위기(Financial crisis)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한국경제의 생명력을 어떻게 보십니까.현재 경제상황은 괜찮은 편이지만 한국인들의 잠재력이 제대로 발현되고 있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는 99년 이후 외국인 투자보다 국내 소비에 의해 움직여 왔습니다. 다만 지금은 소비자들의 자신감이 부족합니다. 한국경제는 새로운 정부를 맞이하면서 총선과 탄핵 등 정치적 혼란을 겪었습니다. 이 가운데 많은 소비자들이 신용불량자 문제 등으로 자신감을 상실해 내수침체 현상을 빚고 있습니다. 더욱이 기업들은 외국계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기업들마저도 중국 등 다른 아시아지역에 투자하려고 하는 분위기입니다. 사실상 한국의 위기는 바로 이런 심리적 위기(Emotional crisis)입니다. 한국인들 사이에 긍정적인 감정이 사라지고 있습니다.그렇다면 감정적인 혼란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요.지도력의 부재가 이런 결과를 낳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경제 성장기인 만큼 하향식(Top-down) 리더십이 통했습니다. 하지만 평등과 재분배를 강조하는 현시점에서는 상향식(Bottom-up) 리더십이 정착돼야 합니다(그는 직접 피라미드를 그려가며 리더십의 의미가 민주주의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경제는 세계적인 상황을 볼 때 괜찮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 아닙니까(그는 수차례 한국을 ‘우리’라고 표현했다). 환상적인 성장을 해야 그게 한국입니다.정치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외국인의 대한국 투자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시는지요.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외국인의 70% 정도는 투자를 기피할 겁니다. 사실 그동안 겪은 대선과 총선, 탄핵으로 인해 생긴 혼란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문제는 최근에 우리가 겪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 친일논쟁을 꼭 벌여야 합니까.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원이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그들의 아버지들이 아닙니다(그는 이 부분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는 세상과 타협해서 살아가야 했던 상황인 걸로 압니다. 불필요한 소모전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경제는 10~20년 내에 연평균 7~8%의 경제 성장세를 보이리라 확신하지만 이는 지금의 정치적 혼란을 극복했을 때에라야 가능한 일입니다.고구려를 둘러싼 한·중 간 논쟁은 어떻습니까.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으로 논쟁을 벌일 게 아니라 중국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발레리나인 한국이 코끼리인 중국의 등에 타서 운전을 해야지 지금은 코끼리 뒤에서 끌려다니는 꼴입니다 (그는 자주 한국을 발레리나로, 중국을 코끼리로 비유해 한·중 관계를 묘사한다). 발레리나가 코끼리 등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해 묘기를 보이는 데 실패하면 한국경제가 스타덤에 오를 기회는 무너질 것입니다.소비와 설비투자 모두 부진을 면치 못하는 게 요즘 한국의 현실입니다.그동안 소비가 부진한 것은 소비자들의 걱정이 많아서 입니다. 빚이 많으니 쓸 수가 없는 겁니다. 설비투자는 그동안 과잉 투자된 부분이 많았습니다. 설비투자는 국내총생산(GDP)의 20~30% 정도면 적당한 수준입니다. 다만 경제성장에 초점을 뒀던 한국인들이 설비투자의 비중이 떨어지는 것에 익숙지 않아서 걱정하는 것뿐입니다. 이는 오히려 선진국처럼 서비스 분야를 키우는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로 들립니다.하지만 소비와 설비투자의 부진을 이유로 다국적 기업과 국내기업이 모두 다른 지역을 찾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철저하고 전략적 기획 없이는 이 판도를 바꿀 수 없습니다. 이는 각자 부채를 줄이는 것에서부터 해결이 가능합니다. 각 가정에서 빚을 줄여 위험요소를 줄이면 자연히 설비투자도 늘 것입니다.규제완화, 노동정책, 세제조치 등의 관점에서 본 한국의 기업환경에 몇 점을 주시겠습니까.몇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우선 노동정책입니다. 최근 한국정부가 고용촉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지만 단순히 임시직만 늘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조세행정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글로벌 스탠더드에 못미치는 부분이 세금에 관한 것입니다. 세금이 개인적인 보복의 수단으로 쓰여서는 안됩니다. 한국의 세금제도는 예측하기 어려운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한국이 외국자본을 유치하는 데 있어 걸림돌은 무엇입니까.노사문제와 세금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경제 전망에 대한 정치적 리더십의 불확실성이 문제입니다. 또 점점 좌익세력의 지지 기반이 넓어지는 것도 걱정입니다. 예컨대 칠레처럼 좌익정권을 겪은 나라의 비즈니스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언어문제는 중국은 한국과 상황이 비슷하지만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강점이 있습니다. 또 중국에 진출하면 10억명의 소비자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따라서 투자가들에게 ‘한국에 오면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게 중요합니다.한국경제, IMF극복처럼 극적인 변화가 올 수 있을까요.물론입니다. 한국이 눈부신 성장을 일궈낼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면 저는 벌써 미국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1960~90년대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끌어 온 게 ‘빨리빨리’ 아닙니까. 이를 되살려 경제성장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온 국민이 함께 뛰어야 할 것입니다.96년부터 한국에 머물고 있는 루니 사장은 한국경제와 금융부문에서 정확한 분석과 조언을 내놓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산업자원부 외국인 투자자문위원, 서울시 외국인 투자자문위원 등 정부기관의 자문역으로 활동해 왔다. 지난 98년에는 한국의 경제회복을 위한 주요 정책에 초점을 맞춘 ‘백만 일자리 보고서’(the One Million Jobs)를 내놓기도 했다.약력: 1954년 영국 스코틀랜드 출생. 75년 영국 런던 임페리얼 컬리지 도시공학(Civil Engineering) 전공. 83년 미국 하버드 MBA. 82년 베인앤컴퍼니 전략컨설턴트. 96년 한국 템플턴투신 초대CEOㆍCIO. 99년 미국 상공회의소 이사. 2001년 서울파이낸셜포럼 부의장(현). 2001년 제임스루니주식회사(현 마켓포스) 설립. △감명 깊게 읽은 책: <징기스칸> △주량: 폭탄주 35잔 마신 경험 있으나 평상시 안 마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