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업은 경기에 민감한 업종이다. 윤달로 지난봄 결혼식을 미뤄뒀던 커플들이 많은 까닭에 올 가을은 최고의 웨딩시즌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가구업계의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최악의 건설경기로 인해 가구업계 역시 몇몇 업체는 고사위기에 몰린 상황이다.이 와중에도 사상 최고의 실적을 보이며 ‘나홀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가구업체가 있다. 바로 사무용 가구업체인 ‘퍼시스’다. 일반주택용 가구시장과 정확하게 궤를 같이할 수는 없지만 경기침체 속에서 고가의 브랜드 가구가 실적 호조세를 보인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퍼시스는 1983년 설립된 후 사무용 가구 국내 선두업체로 자리를 잡았다. 사무용가구 퍼시스 이외에도 생활가구를 취급하는 일룸 등 가구 브랜드 회사와 목제품 전문제조업체인 수림, 특수목과 스테인리스 스틸가구를 만드는 한스, 물류업체인 바로물류 등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96년 거래소에 상장된 퍼시스는 지난해 매출 1,505억원을 기록했다.대개 가구시장은 브랜드가구와 사제로 나뉜다. 흔히 비브랜드 가구를 사제라고 부른다. 시장점유율을 따질 때는 보통 브랜드 가구 사이의 경쟁을 가린다. 퍼시스는 1조원에 이르는 사무용 가구시장에서 50%가 넘는 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리바트, 한국OA, 보르네오가 그 뒤를 잇고 있다.특히 올 상반기 퍼시스는 매출 841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16.6% 매출 증가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127억원으로 44.1% 늘었고 경상이익도 166억원으로 49.1% 올랐다. 창사 이래 최고의 영업실적이라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그렇다면 극심한 불경기 속에서 퍼시스가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높은 브랜드 가치를 이유로 들 수 있다. 가구는 얼핏 옷 등 다른 소비재처럼 브랜드 가치에 대한 느낌이 직접적으로 와닿는 제품은 아니다. 워낙 사제 가구의 비중이 큰데다 디자인 등 외양을 보고 브랜드를 구별할 수 없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부유층에서 과소비가 일어나는 전형적인 품목으로 소개되는 것이 가구인 만큼 브랜드 가치에 따라 천차만별의 가격이 나올 수 있는 제품 카테고리이기도 하다.디자인 중시 … 브랜드 가치 높여특히 퍼시스측이 브랜드 가치를 만드는 주요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은 디자인이다. 사무용 가구는 미적 아름다움과 더불어 인체공학적 설계가 중요하다. 퍼시스는 89년 가구연구소를 설립했다. 외형적인 디자인뿐만 아니라 최적의 소재로 최고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 가구를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소비자에게 최고의 효용을 제공하겠다는 각오로 운영 중인 디자인 기구에 소속된 연구인원은 40여명이며, 지원인력까지 하면 75명이다. 전체 관리직원 중 연구인력이 11.6%에 이르는 셈이다.지난해 말에 내놓은 신제품 퍼즐플러스가 올 상반기 실적향상에 크게 기여했는데 이 제품은 올해 굿디자인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게 됐다. 연구인력은 단순히 산업디자인 전공자들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인체공학적인 설계를 위해 기계나 건축 관련 전공 출신들로도 구성돼 있는 게 특징이다.따라서 회사측은 “제품과 서비스 경쟁력을 통해 기초체력을 확보하고 있어 호황뿐만 아니라 불황기에도 성장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이 회사의 유통망도 칭찬할 만한 부분이다. 퍼시스는 157개 대리점(퍼시스 130개, 팀스 27개)을 갖추고 있다. 특히 타사와 구분되는 것은 물류인프라가 강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에는 서울, 경인지역에 집중돼 있는 매출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성남, 안성에 이어 부산과 대구지역에 대형 쇼룸을 오픈했다. 이 같은 노력은 기존 전국 유통조직과 시너지를 발휘해 지방 시장의 높은 성장을 불러왔다. 상반기 실적을 토대로 볼 때 서울ㆍ경인 지역을 제외한 지방시장의 매출은 지난해 대비 약 32% 이상 성장했다. 뿐만 아니라 행정수도 이전과 주요 관공서의 지방이전이 구체화되면 지방시장의 유통과 서비스 조직이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게 회사측의 분석이다.특히 퍼시스는 대리점주들의 충성도가 높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리점주를 뽑는 과정 자체가 퍼시스 제품을 잘 알고 영업력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신중한 작업인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매출창구를 대리점으로 일원화한 점이 특징적이다.본사와 대리점으로 매출창구가 이원화될 경우 갈등의 요소가 있어 매출은 100% 대리점을 통해 발생하게 하고 그 대신 본사에서는 물류인프라와 배송, 시공, AS 등을 책임지고 있다. 올해 대리점수는 퍼시스의 경우 지난해보다 20여개 정도 늘어난 상태다.특히 내수유통망을 더욱 확장하기 위해 퍼시스측은 영업직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앞으로는 지식축적이 중요한 시대가 올 것으로 보고 직원들에 대한 교육수준을 꾸준히 높여가고 있다. 교육과정에 참여한 직원과 참여하지 않은 직원 사이에는 경력관리와 보상 차원에서 차이가 있게 된다.퍼시스는 신규시장 개척에 대한 계획이 이미 조금씩 효과를 거두고 있어 앞으로도 ‘불황에 강한 기업’이라는 닉네임이 계속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회사측이 새로 설정한 개척시장은 교육용 가구 시장이다. 출범 2년째를 맞이하는 팀스는 올해 상반기까지 약 2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미 지난해 매출 23억원을 넘어섰고 연말까지 80억~90억원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회사측은 기대하고 있다. 불황기를 맞아 사무가구시장 규모가 정체되고 있지만 팀스와 같은 새로운 시장의 성공적인 개척으로 퍼시스의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평가된다.교육시장을 신규시장으로 잡은 이유는 아직까지 구조화되지 못한 시장이기 때문이라는 게 회사측의 얘기다. 브랜드 제품이 미미한 체계화되지 않은 시장이기 때문에 사무용 가구를 통해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교육용 가구의 전반적인 업그레이드와 교육환경 개선효과까지 거둘 수 있으리라는 심산이다.이밖에도 퍼시스는 브랜드 강화를 위해 기업의 건전성과 재무안정성, 사회공헌 등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각 자회사별로 사회봉사클럽을 두고 한달에 두 차례씩 어린이집, 양로원 등을 방문하는 한편 장학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퍼시스의 투명한 경영은 이미 예전부터 입증돼 왔다. 무차입 경영을 실천해 기본이 탄탄하다는 게 회사측의 얘기다.이밖에도 분업이 잘돼 있는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각각 퍼시스의 한 부서였던 일룸, 수림, 한스 등은 지난 96년 각각 자회사로 분리됐다.이 같은 퍼시스의 불황 속 선전은 주식시장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한동안 뜸하던 외국인들이 6월 초부터 퍼시스 주식을 조금씩 사들이고 있다. 지난 4월에 13%대로 떨어졌던 외국인 지분율은 지난 8월 기준으로 14.8%를 기록한 상황이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서는 ‘우량 옐로칩에 대한 매수’라는 평가와 함께 ‘약세장의 대안주’로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윤지용 우리증권 애널리스트는 “3분기 들어 실적이 다소 주춤한 상황이긴 하지만 이미 확보된 대형 프로젝트 수주물량이 충분한데다 관공서 등을 위주로 매출증가가 기대돼 하반기에도 실적 상승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