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욕망이 동일한 대상을 향할 수 있다면 이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해당되는 것이다.”남성들은 여성에 비해 육욕만을 위해 거짓사랑을 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알랭 밀레가 갈파한 이 명제는 권종관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에스 다이어리>의 화두가 된다. 여주인공은 진심이 깃든 관계를 원하지만 남성의 관심사는 섹스뿐이다. 그렇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여성의 시각이다. 남성들도 성공적인 연애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실패한 사랑이라는 이유로 거짓된 사랑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그리고 좌절한 연애도 추억의 창고에서 보물이 된다.이 작품의 메시지는 그러나 효율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여주인공이 화두를 깨치는 과정에 집중하지 못하고 웃음코드에 한눈을 파는 까닭이다. 이야기의 주제는 여주인공의 깨침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감독의 성급한 결론으로 제시된다. 이 작품은 한 여성이 10년 동안 세 남자와 갖는 연애담을 유머러스하게 그렸다. 제목의 ‘에스’가 섹스를 의미하듯 이성교제의 주요 관심사는 섹스다. 여주인공 나지니(김선아)가 자신에게 맞는 파트너를 찾아가는 과정을 내세우면서 사랑과 섹스에 관한 남녀의 가치관 차이를 탐색하고 있다.나지니의 상대역은 성당에서 만난 오빠(이현우), 대학선배(김수로), 연하남(공유) 등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성파트너 유형이다. 남성들에게 차인 나지니가 복수에 나서는 심리의 밑바탕에는 실패한 관계에는 여성이 피해자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한 여자와 세 남자의 성적방황이라는 구도는 지난 77년 한국영화 사상 최대 관객을 동원했던 <겨울여자>와 사실상 동일하다. 37년간 세월의 간격에서는 사랑의 실패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발견된다. <겨울여자>에서 이화는 첫사랑을 잃은 뒤 성적방황을 했으며 남은 삶도 쓸쓸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 작품의 나지니는 세 차례 모두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했고, 실패를 교훈으로 삼을 것이라는 게 강력하게 암시된다. 특히 딸의 초경을 기념해 연애일기장을 선물하고 성장통을 묵묵히 지켜보는 어머니의 존재는 시대적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반영한 대목이다.그러나 드라마에는 곳곳에서 취약점들이 발견된다. 나지니가 과거의 남자들에 대한 복수를 시도하는 동기나 남성들에 대한 편견을 바꾸는 계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남성들의 진심이 NG 모음을 보여주듯 일방적으로 제시될 뿐이다. 나지니가 각성하는 전기를 맞는 에피소드들이 추가됐더라면 보다 강력한 드라마를 구축했을 것이다. 장면전환에서도 현대영화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암전기법을 남발하는데 이는 이야기의 속도를 더디게 만들었다.자칫 우울해 졌을 법한 스토리가 코믹하게 전달되는 데 만족해야 할 듯싶다. 나지니가 남자의 어머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거품 욕조 속에 숨거나 성직자가 된 첫사랑 남자에게 비아그라를 먹이는 모습 등은 관객의 허리를 꺾어놓는다. 10월22일 개봉, 15세 이상.개봉영화▶20 30 4020대부터 40대까지 세 여성의 애정관을 담담하게 그린 홍콩 로맨스 드라마. 여성들의 고민과 욕망이 여성감독의 시선으로 포착됐다. 감독 장애가, 주연 장애가, 이심결▶강호<무간도>와 사촌간인 홍콩 느와르. 삼합회의 보스가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알 즈음 측근이 그를 대신해 조직청소에 나선다. 보스는 잔혹하게 부하들을 제거하는 측근을 의심하게 되는데….감독 황정보, 주연 유덕화, 장학우, 증지위▶썸할리우드 형사 미스터리물을 벤치마킹한 국산영화. 100억원대의 마약이 호송 도중 실종된 후 주인공 형사가 수사에 나선다. 목격자가 데자뷔를 통해 주인공의 죽음을 예견하면서 이야기는 ‘마약행방찾기’와 ‘주인공의 예고된 죽음’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감독 장윤현, 주연 고수, 송지효, 이동규▶우리형바람 잘날 없는 연년생 형제가 경쟁과 화해하는 과정을 때로 경쾌하게 때로 뭉클하게 그려낸 감성드라마. 언청이로 태어난 형이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자 동생은 질투와 시기로 도전장을 내민다. 감독 안권태, 주연 신하균, 원빈, 김해숙, 이보영▶비포선셋하룻밤 사랑을 즐기고 헤어진 두 남녀가 9년 만에 재회해 갖는 데이트. 남녀가 서로에게 섬세하게 조율하는 과정이 흥미를 배가시킨다.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주연 에단 호크, 줄리 델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