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 침투 가속력 붙어…산업자본과 금융자본 융합 고려해야

금융재편의 움직임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금융그룹 사이의 경쟁이 본격화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경쟁구도와 각 금융사의 파워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기도 한다. 금융전문 애널리스트, 경제연구소 금융담당 연구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금융권 경쟁구도와 흐름을 짚어본다.먼저 조병문 LG투자증권 연구위원(40)은 “전쟁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전면전이 아닌 제한된 시장 내에서의 국지전이 될 것이다”며 “PB(Private Banking) 등 소비자금융이 그 국지전의 범위”라고 말했다. 또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37)은 “은행의 대형화가 자본시장의 위축을 초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다만 은행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확대될 경우 금융시장이 은행의 논리와 이해에 종속돼 다양한 금융기능들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조병문 LG투자증권 연구위원토종과 외국계의 전쟁이 시작됐다는데.한미를 인수해 한국씨티를 세운 씨티은행은 분명 미국에서 제일 큰 은행입니다. 브랜드 파워 또한 막강합니다. 은행 역사를 볼 때 ‘통장’을 가장 먼저 만든 은행이고, 현금인출기(ATM) 또한 최초로 선보였습니다. 최근 국내에서 봇물을 이룬 ‘주가지수연계예금’도 그 누구보다 먼저 설계해 소개한 은행도 씨티입니다. 은행산업의 발전을 주도하며 전문화된 은행이지요. 반면 한국에서의 한계는 분명 존재합니다. 이런 이유로 토종과 외국계 은행과의 전쟁을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이라고 얘기하는 겁니다.씨티의 한계를 지적한다면.씨티는 순이자마진(NIMㆍNet Interest Margin)이 2.1~2.2%로 국내은행의 평균인 2.8% 보다 낮습니다. 국민은행은 3.4%, 우리금융은 3.0%이니 토종 리딩은행들의 NIM에 훨씬 못미치는 수치입니다. 순이자마진이 중요한 이유는 이 지표가 바로 은행의 이자이익을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NIM이 높을수록 은행 고객 중 부자고객, 즉 자산가가 많다고 보면 됩니다. 거부는 금리 몇% 차이로 은행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VIP로 대접해 온 은행, 이용하기 편리한 은행을 택합니다. 국내 자산가들은 보통 50대 이상이 많습니다. 이들은 국민과 우리금융의 전신인 주택, 상업, 한일은행을 이용해 왔습니다. 자산가들이 수십년 동안 거래해 온 이들 은행을 떠나 외국계 은행으로 쉽게 이동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부자고객들은 1년 이율이 3.5% 정도인 정기예금보다 0.1~0.5%의 금리여도 보통예금이나 저축예금을 많이 이용합니다. 정기예금은 필수로 생각하며 이율 차이에 민감한 젊은 샐러리맨과는 다르죠. 금리가 낮은 보통예금과 저축예금을 이용하는 사람이 증가할수록 은행은 더 많은 이자이익을 냅니다. 씨티로서는 50대 이상의 자산가 공략에 난관을 겪을 것으로 보입니다.씨티의 강점 중 하나가 PB인데요.씨티는 일본과 중국, 홍콩에서 모두 기대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아시아 특유의 ‘오리엔탈리즘’이 그 이유입니다. 아시아의 고객들은 현금선호 현상이 강하고, 자신의 자산내역 공개를 싫어합니다. PB는 프로그램에 고객의 자산현황을 넣어 최적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 아닙니까. 자산공개 자체를 꺼리는 아시아 고객을 공략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현재 6%의 시장점유율을 보이는 씨티는 2008년까지 10%를 차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달성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NIM(순이자마진)이 가장 높은 국민의 단점은.NIM이 가장 높다는 강점을 가진 국민도 분명 단점을 지닙니다. 조직문화가 젊지 않다는 겁니다. 주택과 국민을 합병했을 때 인력 구조조정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뱃살이 쌓여 이제는 운동으로 뺄 수 없는 상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운동이 아닌 구조조정이라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그렇다면 ‘젊은’ 은행은 어디입니까.하나를 젊은 은행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93년 단자사인 한국투자금융에서 은행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이후 98년 충청은행, 2000년 보람은행, 2002년 서울은행과 차례로 합병했습니다. 역사도 짧고 구조조정도 수시로 한, 김승유 행장의 몸매만큼이나 군살 없는 은행이죠. 물론 하나은행도 약점이 존재합니다. ‘돈 되는 것은 다 한다’는 하나은행은 역으로 보면 확실한 색깔이 없다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삼성과 교보 등 비은행 쪽은 어떤가요.사실 은행업과 보험업의 태생적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업무의 연관성이 크지 않습니다, 삼성과 교보는 보험, 특히 생명보험에 집중하는 게 효율적입니다. 산업자본의 금융자본진출이 법률로 막혀 있는 한 삼성은 기업의 금융산업 전략을 삼성생명 중심으로 가져가야 합니다. 차라리 산업자본은 해외에 은행을 세워 외국에서 은행 노하우를 쌓은 후 산업자본 금융진출 규제가 풀리면 은행을 역수입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행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습니다.IMF 외환위기 이후 은행의 평균자산 규모가 타 금융권에 비해 크게 증가했습니다.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등 일반은행의 경우 99년 33조1,000억원의 평균자산이 2004년 6월 57조8,000억원으로 증가했습니다. 반면 은행 대비 증권사와 보험사의 상대적 규모를 총자산 기준으로 보면 99년 증권사 3.7%, 보험사 10.9%에서 올 6월 2.2%, 7.8%로 감소했습니다.은행의 대형화는 증권업, 보험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발한 구조조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99년 17개의 은행은 올 6월 말 14개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기간에 보험사는 38개에서 51개로 늘었고, 증권사는 43개에서 42개로 비슷한 수준을 보입니다. 은행이 구조조정을 거치며 건전성이 높아지자 안정성을 선호하는 자금이 은행으로 들어왔습니다. 금융기관 총수신 중 은행의 비중은 외환위기 전에는 31~32%였지만 2002년 이후에는 50%를 초과했습니다.은행의 겸업화로 은행은 더욱 강세를 보입니다.1단계 방카슈랑스가 시행된 2003년 9월부터 올 6월까지 개인 저축성 보험 계약건수 중 은행이 98.6%를 차지했습니다. 수입보험료 또한 은행이 96.3%를 차지해 증권사와 저축은행을 압도했습니다.증권업계에 구조조정 압력이 고조되는데요.증권업계의 위탁매매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주식시장의 거래대금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증권거래소 월평균 주식거래 대금은 2002년 61조8,000억원에서 2003년 45조6,000억원, 올 1~9월 46조7,000억원으로 감소 추세입니다. 자본시장이 위축되면서 증권사들이 수익성 악화로 고전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또 온라인 거래 비중이 올 3분기 기준으로 거래소 46.7%, 코스닥 74.1%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증권사 위탁매매의 수익성마저 악화되고 있죠. 특히 소형증권사의 생존 기반이 약화돼 업계의 구조조정 압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증권사들의 사업영역은 동질적입니다. 인수ㆍ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려워 자발적인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상황입니다.방카슈랑스 이후 중소형 보험사의 생존전략은.방카슈랑스가 시작된 뒤 보험시장 자체는 확대됐습니다. 방카슈랑스 시행 후 10개월간의 초회보험료는 6조2,000억원으로 시행 이전 10개월 동안의 4조3,000억원에 비해 45.2% 늘었습니다. 방카슈랑스에 참여한 보험사의 초회보험료 수입은 53.4% 증가했지만 참여하지 않은 보험사는 31.5% 감소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참여하지 ‘못한’ 보험사라고 해야 합니다. 방카슈랑스 미참여 9개 보험사 중 7개는 제휴의사를 밝혔지만 경쟁력과 지명도 열세로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미참여 보험사에 구조조정 압력이 커지는 모습입니다.은행집중화로 우려되는 부분도 있을 텐데요.은행의 기본기능은 ‘금융중개기능’입니다. 기업에 대한 전문적 심사와 관리능력을 기초로 금융중개기능을 맡으며 기업에 자금을 공급해야 합니다. 하지만 은행의 대형화가 금융중개기능 활성화로 직결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은행의 금융상품 위탁판매수수료 수입이 높아지면 예대업무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질 수 있습니다. 은행 고유의 금융중개기능이 오히려 약화될 수도 있는 겁니다. 은행의 대형화, 겸업화가 자본시장을 직접적으로 위축시키지는 않겠지만 은행의 위상이 높아지면 은행이 제2금융권에 미치는 영향력도 막대해집니다. 은행의 논리위주로 시장이 재편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제2금융권의 경쟁력을 높이려면.증권사, 보험사 모두 시장규모에 비해 기관수가 너무 많습니다. 경쟁심화로 수익성 저하가 심각합니다. 은행은 외환위기 직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겪었기에, 고통 끝에 현재 호황을 맞이한 겁니다. 이번에는 시련을 겪지 않은 제2금융권이 구조조정을 치를 차례입니다. 증권사의 경우 IB(투자은행)업무 등을 강화해 특화전략을 짜라고들 하지만 투자와 노하우 없이는 쉽지 않은 얘기입니다. 개별증권사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국가정책과 금융감독 당국의 노력이 병행돼야 제2금융권의 생존방안과 강점을 찾아나갈 수 있게 됩니다. 보험사는 이제 판매망 개발보다 자산운용능력을 기르고 보험상품 개발에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조병문 LG투자증권 연구위원약력 : 1964년생. 87년 연세대 이과대학 졸업. 94년 연세대 경제학과 석사. 93년 대신증권. 97년 교보증권. 99년 현대증권. 2003년 LG투자증권 금융담당 애널리스트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약력 : 1967년생. 89년 서울대 경영학과 학사. 93년 동대학원 석사. 2003년 동대학원 박사. 93~98년 한국장기신용은행. 2002~2003년 LKFS 선임연구원. 2003년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실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