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북이 베스트셀러가 아니다. 출판계에 회자되는 이 통설은 영화에도 종종 적용된다. 뛰어난 리얼리즘을 구현한 작품일지라도 관객의 관심사가 아닐 때, 영화적 논리가 관객의 기대치를 배반할 때 작품은 폄하되거나 외면받게 된다. 브라이언 드팔마 감독의 섹스스릴러 <팜므 파탈> 역시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지탄을 받을 수 있다. 장르의 문법을 마스터하고 볼거리도 충분하지만 관객 심리와 동일한 궤적을 밟지 않는다. 때문에 이 작품은 스릴러 장르의 규칙을 익힌 다음 관람할 때 흥미를 가질 수 있다.스릴러는 일반적으로 희생자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범죄영화다. ‘팜므 파탈’은 스릴러물에서 남자를 파멸에 빠뜨리는 요부를 일컫지만 그녀 자신도 희생자로서 쫓기는 과정을 겪게 된다.여주인공 로라(레베카 로민 스타모스)는 칸영화제 행사장에서 수천만달러 상당의 보석옷을 입은 여성모델을 유혹해 화장실에서 동성애를 즐기면서 보석옷을 눈속임으로 바꿔치기 한다. 그녀는 다음 순간 공범들마저 따돌리고 그들로부터 추적을 받게 된다. 이야기는 그녀의 도주행각과 그녀가 신변안전을 위해 유혹한 두 남자와의 관계를 씨줄과 날줄로 교직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지켜보는 사람과 보여지는 대상들이 명확히 구분돼 있다. 등장인물들은 한 사람을 쫓으면 다른 이들로부터 쫓기는 이중적인 입장에 놓여 있다.공범으로부터 쫓기던 로라가 자신과 닮은 릴리를 지켜보는 대목은 이 영화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릴리는 로라의 분신이며 로라가 바라보는 다른 인생이다. 두 여인이 선택하는 남자 파파라치(안토니오 반데라스)와 주프랑스 미국대사도 욕망과 현실의 충돌처럼 다를 수밖에 없다. 파파라치는 로라를 쫓는 인물이며 미국대사는 로라의 분신인 릴리가 선망하는 대상이다. 로라는 릴리를 지켜보지만 파파라치는 로라를 감시한다. 또 미국대사의 경호원은 파파라치를, 로라의 공범들은 경호원을 각각 지켜본다. 양자의 거리가 좁혀질 때 싸움 또는 화해가 일어나고 긴장이 파생된다.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장면들은 탁월한 형식(스타일)으로 포장돼 있다. 도입부 호텔 방에서 로라가 TV로 보고 있는 영화는 <이중배상>이다. 여주인공은 남자를 유혹, 살인을 사주해 파멸시키는 요부이다. 롱테이크(길게 찍기)로 표현된 이 장면은 <이중배상>의 요부 캐릭터가 로라에게 전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파파라치가 로라의 모습을 찍는 장면은 절반씩 분할돼 파파라치는 크게, 로라는 작게 표현돼 있다. 능동적으로 감시하는 자가 수동적인 피사체에 비해 우월적인 지위를 갖고 있음을 강조했다.그러나 영악한 로라가 인생의 아이러니를 피하기 위해 두 가지 선택을 하는 종반부에는 문제가 있다. 안전한 듯싶던 릴리의 인생을 가로챘을 때 로라는 파멸을 맞지만 로라가 용기 있게 위험을 무릅쓸 때 해피엔딩이 찾아온다. 동일인이지만 로라와 릴리라는 두 인물로 설정된 만큼 로라의 두 가지 선택은 영화적 논리에는 맞다. 그러나 관객은 장시간 등장하는 로라와 동일시한 결과 그녀의 정반대 선택을 선뜻 수용하기 어렵다. 성공작이 되려면 관객의 심리를 완벽히 장악해야만 한다. 히치콕 감독의 추종자인 드팔마 감독이 영화적 스승을 뛰어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1월19일 개봉, 18세 이상.▶여선생 VS 여제자초등학교 여선생과 어린 여제자간의 미남선생 쟁탈전. 어린 여학생과 여선생의 세계를 충돌시켜 웃음을 이끌어낸다. 노처녀 선생 역의 염정아의 연기가 볼 만하다. 감독 장규성, 주연 이세영, 이지훈▶나비효과할리우드의 신성 애시튼 커처가 주연한 스릴러. 어린 시절 참담한 경험을 겪었던 네 젊은이의 삶이 그려진다. 주인공은 과거로 가서 실수를 바로 잡지만 이로 인해 현재의 운명은 달라진다. 감독 에릭 브레스, J 매키 그루버, 주연 에이미 스마트▶영원과 하루그리스의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죽음을 앞둔 노시인이 삶을 정리하기 위해 하루 동안 여행을 떠난다. 아내와의 지냈던 아름다운 추억과 지난날의 회한을 통해 노시인은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11월19일, 시네큐브 개봉▶내 머리 속의 지우개톱스타 정우성과 손예진이 주연한 최루성 멜로. 치매에 걸린 아내와 이를 지켜보는 남편의 안타까운 사랑을 다뤘다. 잠시 제정신을 차린 손예진이 눈물로 쓴 애정편지가 추억의 소중함을 환기시킨다. 감독 이재한▶하나와 앨리스<러브레터>의 이와이 순지 감독의 청춘멜로. 두 단짝 여학생이 한 남자를 두고 야릇한 삼각관계에 빠진다. 파스텔조의 화면이 순정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포착하지만 강력한 드라마를 구축하지는 못했다. 주연 스즈키 안, 아오이 유우, 히로스에 료코연극 - 서주희의 <버자이너 모놀로그>모든 고백엔 아름다움과 감동이<버자이너 모놀로그>라는 영문제목을 우리말로 옮기면 ‘여성의 성에 관한 독백’이 된다. “성을 부끄러워하는 게 우리나라의 풍토”라고 운을 뗀 배우 서주희는 “말하지 못하면 비밀이 되고 비밀은 부끄러운 것이 된다”며 “이것이 잘못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공연 기획의도를 밝혔다.한 편의 토크쇼를 진행하듯 이 같은 소개인사로 시작하는 이 연극은 극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이브 엔슬러의 원작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여성의 성기에 대한 솔직하고 대담한 이야기를 다양한 계층 여성의 사실적인 인터뷰 형식으로 보여준다. 모노드라마의 구성을 취하고 있는 이 공연은 이렇게 성을 과감하게 다룸으로써 이것이 더 이상 개인의 은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자연스러운 담론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오프브로드웨이에서 출발해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고 있는 이 작품은 국내에서는 2001년에 초연됐다. 5번째인 이번 공연은 특히 이전 공연에 비해 표현이 더 직접적이고 대담하게 ‘업그레이드’됐다는 게 제작사측의 말이다. 실제로 출연배우가 공연 중에 여성의 성기를 칭하는 말을 직접 입에 올리는가 하면 관객에게 따라해 볼 것을 종용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성에 대한 인식이 빠른 속도로 달라지고 있음을 반영한 덕분이다.이 작품의 강점은 ‘유쾌함’이다. 성을 이야기하는데다 표현이 과격해졌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심각하게 성문제를 고민하기보다는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으로 지켜볼 수 있게 한 게 이 연극의 특징이다.이렇게 즐거운 연극을 만드는 것은 바로 배우 서주희의 힘이다. 그녀는 5세 여아부터 72세 노인까지를 넘나들며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였다. 분장이 아닌 목소리와 행동만으로 변화를 준 그녀의 연기는 각기 다른 사람을 보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여성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전하기 위해 맨얼굴에 맨발로 무대에 선 이 배우는 진지함과 가벼움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포스터의 (화장한) 제 모습과 지금 제 모습이 그렇게 다르냐”는 유머로 연극을 여는가 하면 극 중반부에 다다라서는 맨발로 객석을 뛰어다니며 오랜만에 만난 여고동창생의 모습을 능청스럽게 연출해내기도 한다. 자칫 민망할 수 있는 신음소리를 흉내내는 장면에서는 ‘타고난 배우’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과감한 연기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예술은 하나의 고백이며 그 모든 고백은 아름다움과 감동이 내재돼 있다”는 배우의 말처럼 웃음 속에 생각할 거리를 남겨두는 것이 매력이다.결국 이 연극은 피아노 한 대와 노메이크업의 여배우 한 사람이 2시간을 이끌어가는 셈이다. 이처럼 단출한 무대에 관객이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터부시돼 온 것에 대한 호기심과 이를 깨뜨리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을 소개하는 글을 쓰면서도 직접적으로 ‘버자이너’에 해당하는 우리말을 지칭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를 설명해주는 것이 아닐까.12월31일까지/우림청담씨어터/02-516-1501공연&전시▶뮌헨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뮌헨에는 4개의 정상급 메이저 오케스트라가 활동하고 있다.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암스테르담 로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와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그리고 이번에 내한공연을 하는 뮌헨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그들이다. 첼리스트 양성원,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 등 세계 정상의 솔리스트들이 함께할 예정.12월1~2일/예술의전당 콘서트홀/02-599-5743▶<2004 아듀 7080 빅콘서트>4월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시작으로 수원, 부산, 인천 등 전국 각지에서 매진행진을 계속해 온 7080콘서트의 서울 앙코르 공연. ‘아쉬운 이별 파티’라는 부제로 7080세대들이 낭만을 좇아 ‘젊은 날의 추억’에 흠뻑 취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김수철과 작은거인, 이명훈과 휘버스, 건아들, 샌드페블즈. 옥슨80 등이 출연한다.12월3~4일/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02-542-5252▶노틀담의 꼽추<레미제라블>로 친숙한 빅토르 위고의 1831년작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를 원작으로 한다. 성당의 종치기로 숨어 살아가는 꼽추 콰지모도의 집시여인 에스메랄다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디즈니는 자사의 34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노트르담의 꼽추>를 기본으로 이 작품을 뮤지컬로 재구성했다. 한국공연은 신시뮤지컬컴퍼니가 제작을 맡았다.12월23일~2005년 1월23일/국립극장 해오름극장/02-577-1987지킬앤하이드 앙코르공연기립박수는 계속된다‘조승우신드롬’을 일으키며 연일 매진사례를 기록했던 <지킬앤하이드> 앙코르 공연이 크리스마스이브를 시작으로 2005년 2월까지 계속된다. 지난 7월24일 시작해 8월21일까지 국내 초연된 <지킬앤하이드>는 객석점유율이 평균 98%에 달했다. 매회 기립박수가 쏟아진 것은 물론 인터넷상에 암표가 등장했다는 소문이 들릴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로버트 스티븐슨의 원작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인간의 이중성을 그린 동시에 지킬과 엠마, 하이드와 루시의 사랑을 묘사해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스릴러’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으로 2004년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조승우가 다시 한 번 무대에 서는 한편 민영기, 서범석이 트리플캐스트로 나섰다. 12월24일~2005년 2월14일/코엑스오디토리움/02-556-8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