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전문기업 변신 이끌어…감성경영으로 체질개선 성공

김순택 사장(55)은 ‘삼성전관’이라는 옛 사명이 더 친숙한 브라운관 기업 삼성SDI에 취임한 직후부터 디지털ㆍ모바일 기업으로 변신시키는 일에 착수했다. 그가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제품으로 PDP,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2차전지를 선정하고 집중적인 투자를 시작했을 때 업계에 “삼성SDI가 제2의 삼성자동차가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30년간 브라운관을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매출액 대부분을 브라운관에서 거둬들였던 상황에서 생소한 제품에 매년 수백, 수천억원의 투자비를 투입하는 것에 대한 외부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것.하지만 그가 취임한 지 4년이 지난 지금 삼성SDI는 ‘디스플레이 전문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비브라운관 제품이 지난해 전체 매출액의 42%를 차지했다. 올해는 55%까지 대폭 높아질 전망이어서 신ㆍ구 디스플레이가 조화를 이룬 완전한 체질변신에 성공한 셈이다.김사장은 평소 “도전이 없는 조직은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며 “고지를 오르기 위해 땀 흘리다 보면 모든 임직원의 사고방식과 일하는 자세가 바뀔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삼성SDI의 PDP는 지난해 2라인 준공으로 현재 1, 2라인에 월 13만대 생산규모를 갖춰 세계 1위 업체로 도약했다. 월 최대 생산능력 12만대의 3라인도 마무리 공사 중이다. OLED는 2002년 8월 세계 최초로 풀컬러(256컬러) 제품 양산에 성공했다. 현재 월 250만개 규모의 수동형 OLED 생산능력을 갖춘 상태다. 또 17인치 능동형 OLED 개발에도 성공했다.김사장 부임 이후 2년 연속 1위를 차지한 휴대전화 LCD는 보급형 STN-LCD부터 중급형 UFB-LCD, 최고급 UFS-LCD까지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2차전지도 현재 월 1,700만셀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확보했다. 2005년 초에는 월 2,200만셀까지 생산능력을 높일 예정이다.김사장은 브라운관사업도 ‘사양산업’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확 바꿔 놓았다. 특히 최근에는 기존 브라운관 두께를 절반으로 줄인 디지털TV용 ‘빅슬림’(Vixlim) 브라운관으로 세계 디스플레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른 업체들이 경쟁력과 수익성 확보에 실패해 브라운관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하거나 생산 축소, 인수ㆍ합병 등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것과는 대조를 보인다.그는 또 지난해부터는 ‘브라운관 신성장론’을 제시하며 디지털방송시대의 도래로 대형ㆍ평면 TV용 브라운관의 부흥기가 올 것이라고 전망해 왔다. 이는 올해 초 수요가 폭발해 주요 브라운관업체가 브라운관 가격을 인상함으로써 증명되기도 했다.김사장은 삼성SDI의 이 같은 외형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기업문화를 바꿔놓은 인물이기도 하다.감사팀을 거치면서 ‘검객’이라는 별명을 얻은 김사장이 삼성SDI에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부임해 왔을 때 많은 직원이 두려워했다. 그는 감사팀장 시절 거래처에서 와이셔츠 티켓 하나를 받았다는 이유로 직원을 내보낼 정도로 엄격했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그 검객이 아니었다.신입사원이 들어오면 그 부모에게 일일이 편지를 쓸 정도로 그는 감성경영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자녀들을 인재로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는 저와 회사가 키우겠습니다.”그가 감성경영을 실천하는 증거는 여기저기서 발견된다.지난 4월에는 신임부장 23명과 한 불가마 찜질방에서 ‘신임부장-CEO간담회’ 행사를 가졌다. 회사의 비전과 사업전망, 지도자가 갖춰야 할 리더십과 책임감, 경영철학에 대해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각 부장급 관리자는 후배들이 마음껏 꿈과 열정을 펼칠 수 있게 앞장서서 지원, 조직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또 5월에는 ‘성년의 날’을 맞아 각 사업장별로 올해 만 20세가 된 직원들에게 김사장 명의의 축하선물과 ‘말하는 곰인형’을 전달했다. 곰인형에는 “미래 주역 여러분의 성년의 날을 축하며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진정한 SDI의 희망이 돼주길 바란다”고 직접 녹음을 하기도 했다.매월 초 전 임직원에게 보내는 사내메일을 통해서는 직원들이 회사의 경영환경에 대해 CEO로부터 직접 설명을 들을 수 있게 했다.2003년 <한국경제신문>과 엘테크경영연구소과 주관한 ‘훌륭한일터상’을 수상한 것이나 올해 <동아일보>와 한국IBM BCS가 공동발표한 ‘존경받는 30대 한국기업’에서 종합순위 1위를 차지한 배경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김사장은 ‘프로는 실패가 없다’는 생활원칙을 갖고 있다.그는 현장을 직접 챙기는 CEO로도 유명하다. 2002년에는 120일을, 지난해와 올해는 각각 110일을 현장에서 보낸 사람이 김사장이다. 현장방문에서 들은 이야기나 아이디어를 경영활동에 반영하는가 하면 PDP, LCD, 2차전지 등 제품별 영업담당자와 함께 해외 메이저 거래선을 찾아가 직접 제품을 설명하기도 한다. 지난 11월부터는 한달 중 20여일을 해외출장과 지방공장 방문에 할애하고 있다.그가 올해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을 거리로 환산하면 27만km다. 중국과 말레이시아, 독일, 헝가리, 멕시코와 브라질 등 6개국 10개 공장을 직접 순회하며 생산과 판매를 독려했다.김사장은 이미 비서실에 근무하던 젊은 시절부터 출장과 야근을 밥 먹듯 했다. 딸이 태어났을 때도 지방출장 때문에 한달 동안 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1년 365일 중 183일을 집에 들어가지 못한 해도 있었다. 그래서 부인이 옆집 할머니로부터 ‘첩살이’를 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이처럼 프로로 살고 악바리처럼 일한 김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돌이켜보면 젊은 나이에 좁은 안목으로 판단한 때가 없지 않다”며 아쉬움을 나타낸 적이 있다. 요즘 같으면 대범하게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야박하게 처리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그래서인지 그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는 것이 사회공헌사업이다.지난해부터 본격 추진 중인 도우미견(보청견ㆍ치료견) 사회공헌활동을 2005년에는 더욱 강화해 무료개안사업, 매칭그랜트와 함께 봉사활동의 3대 축으로 구성할 계획이다. 디스플레이 제품 생산업의 특성에 맞게 영상을 보는 ‘빛’과 관련된 무료개안사업, 음향을 듣는 ‘소리’와 관련된 보청견 사업을 동시에 운영한다는 이야기다.그는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등 영세민 대상의 무료개안수술을 95년부터 10년 동안 실시해 최근 수술 수혜자가 2,600명, 진료 수혜자가 9만1,000명을 돌파했다. 지원금만 23억5,000만원이다.또 지난 2000년부터 펼쳐온 매칭그랜트 봉사기금 모금활동은 12월 초까지 7억4,000만원을 모아 각종 영세한 사회복지단체 등에 기증하는 등 사회공헌의 큰 중심축이 돼 왔다. 매칭그랜트는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사회봉사 후원금을 기부할 경우 회사도 이 같은 금액을 일대일로 ‘매칭’해서 후원금을 출연하는 제도다.김사장은 이 같은 사회공헌활동에 꾸준히 힘쏟을 생각이어서 올 연말까지 개안사업과 매칭그랜트, 도우미견사업을 통틀어 17억9,000만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2005년에는 총 25억원을 사회공헌 비용으로 쓸 계획이다.김순택 삼성SDI 사장약력 : 1949년 대구 출생. 69년 경북고 졸업. 73년 경북대 경제학과 졸업. 72년 삼성그룹 입사(제일합섬). 86년 그룹 회장비서실 운영팀 이사. 91년 그룹 비서실 비서팀장. 92년 비서실 경영관리팀장(전무이사). 93년 삼성전관 기획관리본부장. 97년 그룹 미주본사 대표이사. 99년 삼성SDI 대표이사 부사장. 2001년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