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474호 (2005년 01월 03일)

성장 빨랐던 만큼 뜨고 진 기업 많아

기사입력 2006.09.04 오후 12:01

‘재벌이 만든 집에서 자고 재벌이 만든 음식을 먹고 재벌이 만든 옷을 입는다.’

재벌판도는 바뀌었어도 한국경제에서 재벌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실제로 10대 재벌의 매출액이 국민총생산(GN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대 들어 80%를 넘어섰다. 30대 재벌 전체의 자산규모도 87년 56조6,000억원에 불과했다가 97년에는 6배에 달하는 348조3,000억원으로, 2004년(4월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는 502조원으로 불어났다.

재벌들이 본격적으로 한국경제에 등장한 시점은 50년대 중반이다. 이후 50년간 반도체, 조선, 철강처럼 세계시장에서 1~2위를 다투는 품목을 만들어낼 정도로 급성장했다.

빠르게 성장한 만큼 부침도 심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64년 국내 100대 기업 중 99년까지 살아남은 곳은 13개이다. 범위를 좁혀 10대 그룹만 보더라도 64년 10대 그룹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곳은 삼성과 LG에 불과하다.

50년대는 유력 재벌들이 기반을 다진 시기로 특정기업이 압도적인 우위를 갖지는 못했다. 대다수 기업들이 미국의 원조물자를 받아 가공산업으로 사세를 키웠다. 자본금 기준(55년)으로는 삼양사(1위), 대한석탄공사(2위), 한국산업은행(3위), 한국낙희공업사(4위), 금성방직(5위) 등이 선두권을 형성했다.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신흥재벌들이 자리를 잡아가는데 태창, 삼성, 삼호, 개풍, 대한산업, 동양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이승만 정권의 비호 아래 성장한 것으로 알려진 태창은 태창방직 태창공업, 매일직물, 대한문화선전사, 조선기계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한때 국내 최대의 기업집단을 형성했다. 개풍그룹은 개성출신의 자영업자 이정림이 창업한 그룹으로 6ㆍ25전쟁이 끝난 뒤 서울에서 호양산업을 설립, 주한미군에 얼음을 납품하면서 부를 축적했다.

50년대가 제당, 섬유, 시멘트 등이 재벌성장의 축이었다면 60년대에는 건설, 자동차, 전자, 화학 등으로 이전됐다. 또 외자도입과 베트남전쟁 등으로 몸집이 점점 비대해지며 공룡기업화된다.

64년 10대 그룹을 보면 삼성, 삼호, 삼양, 개풍, 동아, 락희, 대한, 동양, 화신, 한국글라스 등의 순(삼성경제연구소 자료 참조)이다. 삼성과 락희그룹(현 LG)이 재계의 주도권을 쥐며 사세확장의 고삐를 바짝 당긴 시기다. 삼성은 60년대 들어 동양방송, 중앙일보, 동방생명, 전주제지, 삼성전자, 삼성산요전기 등의 기업을 설립하거나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렸다. 5위로 뛰어오른 락희도 70~80년대 국내 가전시장을 장악한 금성사를 설립하며 도약기를 맞이한다.

반면 개풍(이정림), 삼호(정재호), 화신(박흥식) 등은 회사문을 닫았다. 이들은 일제 시대의 부를 바탕으로 재벌이 된 대표기업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70년대는 한국재벌의 전성기였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릴 정도의 유례없는 고속성장으로 수많은 재벌이 생겨났다. 10대 재벌의 계열사수가 72년 7.5개에서 79년 17.6개로 두 배 이상 늘어난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낙희가 삼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고 정주영의 현대가 삼성의 뒤를 이어 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또 60년대 10대 그룹 중 삼양, 개풍, 동아, 동양, 화신, 한국글라스가 10위권에서 밀려나고 현대, 한국화약, 동국, 효성, 신동아, 선경, 한일합섬 등이 새 자리(74년)를 꿰찼다.

특히 70년대 중반부터 정부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은 중화학공업의 약진은 재계판도를 크게 흔들어놓았다. 삼성은 코리아엔지니어링, 대성중공업, 우진조선, 통일건설, 한국반도체 등을 인수해 그룹의 중심을 경공업에서 중화학부문으로 전환시켰다. 대우도 한국기계, 옥포조선, 새한자동차 등을 인수해 그룹의 주력을 중화학공업으로 탈바꿈시켰다.

80년대 들어서는 동국, 대한, 신동아, 한일합섬이 밀려나고 대우, 쌍용, 한진, 대림, 한국화약 등이 새로 진입했다. 80년대 초 신군부가 주도했던 중화학 투자조정과정에서 성장한계에 부딪힌 기업들은 철저히 몰락한 반면, 첨단산업에 눈길을 돌려 사업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꾼 기업들이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울러 삼성, 현대, LG, 대우, SK 등으로 이어지는 5강체제가 견고한 지위를 갖춘 시절이었다.

반면 국제그룹, 명성그룹 등은 그룹이 해체되는 수난을 겪었다. 국제그룹은 재계 랭킹 7위까지 오르며 모기업인 국제상사 산하에 연합철강, 국제방직, 동서증권 등 20여개의 계열기업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85년 문을 닫았다. 창업주 양정모 회장이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라는 설이 나돌았다. 명성그룹은 현대중건, 남태평양산업, 명성관광, 명성콘도미니엄, 남태평양레저타운 등 국내 최초로 관광ㆍ레저 전문그룹으로 성장했으나 불법으로 사채자금을 끌어 쓰다가 구속되면서 막을 내렸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30대 그룹은 순위만 오르내렸을 뿐 큰 변동이 없었다. 70~80년 중반을 거치면서 재벌들의 경제력집중 폐해가 두드러지자 공정거래위원회가 30대 기업집단을 지정해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들어 재계판도는 급물살에 휩싸인다. 건설경기 침체가 본격화되면서 20~30위권인 우성, 극동, 벽산 등 중견건설사들이 줄줄이 부도의 칼날에 쓰러지고 말았다. 게다가 외환위기는 재계판도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전년도에 30대 그룹에 속했던 대우, 기아, 한라 등 9개 기업이 무더기로 탈락했다. 99년 삼성을 제치고 재계랭킹 3위에 올랐던 대우의 몰락은 재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봉고신화’를 등에 업고 10대 그룹에 진입했던 기아도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부도 태풍’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보철강, 한라, 삼미, 진로, 대농, 뉴코아, 해태, 쌍방울, 수산, 극동, 청구, 나산, 동아, 거평그룹 등이 줄줄이 무너지며 재계는 대혼란에 빠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현대그룹의 공중분해가 단연 재계의 ‘톱뉴스’였다. 90년대 이후 줄곧 1위 자리를 지키던 현대그룹이 이른바 ‘왕자의 난’을 겪으며 삼성에 1위 자리를 내준 것이다. 현대가가 뿔뿔이 흩어지면서 삼성의 독주시대가 막을 올렸다. 2004년 4월 기준으로 삼성의 총자산은 91조9,000억원. LG(61조6,000억원)와 현대자동차(52조3,000억원)를 멀찌감치 따돌린 것이다. 10여년의 연구 끝에 <한국재벌사>(대명출판)를 펴낸 이한구 수원대 교수(경제·금융학과)는 “투명경영이나 수익중시경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 됐다”며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하는 재벌은 더욱 성장할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철저하게 도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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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