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화두는 경제회복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경제에 올인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힐 정도다. 그만큼 경제가 어렵고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옹색해진 것이다. 일각에서는 자칫 일본형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한다.하지만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선결과제가 적잖다. 말로만 아무리 떠들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실행에 옮기는 추진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위기감만 가진 채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05년 한국경제 부활을 위한 조건을 5개의 한자 키워드를 통해 살펴본다.1. 不 - 불황, 불신지금 우리 경제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불황 극복이다. 이미 국민 사이에서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며 “희망이라도 보이면 버티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막막하다”는 장탄식이 터져나오고 있다.각종 수치를 봐도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4년 11월 소비자 전망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기대지수가 86.6을 기록해 2000년 12월 이후 4년 만에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2월의 86.7보다도 낮은 수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상위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2005년도 기업 체감경기 조사’에서도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78.8로 나타나 기준치인 100을 크게 밑돌았다.경기침체가 계속돼 불황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소비심리를 회복시키고 투자를 활성화하는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불황의 골은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부동산시장마저 얼어붙어 개인들의 투자심리마저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조치가 뒤따라야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경제주체들이 불신부터 버리라고 조언한다. 쓴소리 잘하기로 유명한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우리 모두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박회장은 “정부가 특혜시비나 부작용을 우려해 기업투자를 막는 규제를 남겨놓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라고 주장한다.2. 失 - 실업, 실패의식실업문제는 2004년에 이어 2005년에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1년 사이에 전혀 해결된 것이 없는 까닭이다. 아니 오히려 청년실업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 ‘대학졸업=실업’이라는 등식이 이제는 고착화되는 느낌마저 든다.실업률이 전년도 수준을 유지하려면 경제성장률이 5%를 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2005년에 5%를 넘기는 극히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 공통된 분석이다. 조사기관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3~4%대를 오르내릴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그렇다면 2005년의 실업률은 4% 안팎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04년의 3.5% 수준보다 증가한 수치다.일각에서는 우리나라 실업률이 다른 OECD 국가들보다 낮다고 강조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안전망의 미비와 취약한 경제구조 때문에 구직자들의 상당수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금재호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일자리의 질이나 삶의 수준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며 “2005년에는 실업률의 증가와 더불어 빈곤층의 증가가 우려된다”고 강조한다.실업자들 사이에 형성되는 패배의식도 큰 문제다. 실업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취업을 아예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는 경제활동 참가율이 최근 들어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는 점이 입증한다. 특히 9%를 넘나드는 청년실업자들의 패배의식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사회적으로 젊은층을 중심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광범위하게 펴져나가고 있다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3. 極 - 양극화, 극단적 사고경제의 양극화가 심각하다. 한국경제를 멍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부자와 빈자의 사회적 위상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해외에 나가 돈을 펑펑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만 간다. 경제적 부의 쏠림현상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예전부터 20/80법칙이 존재했다. 상위 20%의 사람이 80%의 몫을 담당한다는 것으로 대개 유통업체들이 즐겨 활용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상황이 급변했다. 10/90으로 바뀐 것이다. 일부 백화점 조사결과를 보면 상위 10% 고객이 전체 매출액의 90%를 올려준다고 한다. 지나친 양극화의 한 단면이다.일부 대기업이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수조원의 돈을 쌓아놓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중국 등지로 진출하며 탈출구를 찾아보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다. 더욱이 금융기관들마저 중소기업을 외면, 설자리를 점점 잃고 있다는 분석이다.양극화는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치명적이다. 중산층이 폭넓게 형성돼 사회를 지탱하는 지렛대 역할을 해야 하지만 사정은 어려워 보인다. 또 중소기업 역시 대기업의 파트너로서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산업구조의 불균형만 심화되고 있는 꼴이다.금융기관만 해도 은행은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리며 콧노래를 부르지만 증권사들은 ‘죽을맛’이라고 하소연한다. 당장 금융산업의 왜곡문제가 터져나오고,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다가 외국계에 다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양극화는 사람들에게 극단적인 사고를 하게 만든다. 일을 합리적으로 풀기보다 억지를 쓰고 편법을 동원하도록 한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 불합리한 경제시스템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물 흐르듯 순리대로 흘러가고, 양극화를 완화시킬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4. 換 - 환율, 환위험환율은 어디로 가는가. 요즘 기업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대목이다. 원/달러 환율이 1,000원 근처까지 하락하면서 위기감은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 특히 기업 입장에서 환율의 움직임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환율이 상승하면 그만큼 수익이 늘어나지만 반대로 내려가면 줄어들게 된다. 환율 수준에 따라 적자를 내기도 하고 또 흑자로 돌려놓을 수도 있다.2005년 환율문제에서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무역불균형이 심한 아시아 국가의 통화를 대상으로 평가절상 압력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약자인 우리로서는 대응방법이 마땅치 않고 어디까지 갈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상황이다.우리나라와 관련이 깊은 일본 엔화 가치는 미 달러화 가치에 대해 강세가 예상되나 그 폭은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달러 약세-엔 강세’가 여전히 두 나라의 국익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에게 유리한 환경은 찾아보기 힘들다.그렇다고 팔짱만 끼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환테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국내기업들은 환율의 움직임에 대한 다각적인 시나리오를 짠 다음 이를 바탕으로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환위험 관리가 필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투기적 성격의 외자가 마구잡이로 이동하면서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환위험을 잘 관리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원화 환율수준보다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환위험 관리를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할 정도다.5. 投 - 투자설비투자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국민계정 기준으로 볼 때 최근의 설비투자는 2003년 2분기부터 4분기 연속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의 설비투자가 부진해 2003년의 경우 전년에 비해 23% 줄어든 데 이어 2004년에도 감소세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2005년에도 설비투자의 수준은 신통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은행이 지난해 하반기 15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2005년에 설비투자 규모를 2004년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늘리겠다고 응답한 기업이 66%, 줄이거나 불확실하다는 기업은 34%에 이르렀다.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고용이 늘지 않고 이는 실업률 증가로 이어지며 경기회복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악순환의 연속인 셈이다. 지금의 경기불황과 실업난 해소를 위해서는 기업들의 투자가 필수적인데 기업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김석균 한국산업은행 산업통계팀장은 “내수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민간소비의 회복이 불투명해 내수에 민감한 기업들의 설비투자 역시 크게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며 “정부가 규제완화 등 기업들이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