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제 474호 (2005년 01월 03일)

고객이탈 막아라… 짝짓기마케팅 비상

기사입력 2006.09.04 오후 12:01

‘읽을 책은 많아지지만 독자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미국 출판업계의 현 상황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표현이다. 틈만 나면 존 그리샴의 추리소설을 뒤적이던 미국 독자들은 이제는 인터넷 서핑과 비디오게임, DVD 영화감상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출판산업의 새 트렌드’라는 특집기사에서 “신문, 잡지, 도서 등 출판업 종사자들은 점점 줄어드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출판업계의 전반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틈새시장을 공략해 성공을 거둔 기업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 것도 최근의 출판업계 트렌드”라고 보도했다.

출판사들의 살아남기 몸부림은 이들이 구사하는 특이한 마케팅 전략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고객을 유치하는 이른바 텔레마케팅이 미국 내 법률 규제로 사실상 불법이 됐고, 길거리 곳곳에 배치된 신문ㆍ잡지 가판대 판매도 큰 수익을 가져다주지 못하자 미국 출판사들은 경제적이면서도 효과적인 판매전략을 새로이 고안해내고 있다.

월마트 등 대형할인점과의 이른바 ‘짝짓기 판매’가 그것이다. 종합미디어회사인 타임워너는 올 여름 새로운 잡지를 발간하면서 일반서점이 아닌 월마트와 독점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월마트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고객들을 신규독자로 유치하기 위해서다.

출판사와 할인점의 짝짓기는 예상외의 성공을 거뒀다. 타임워너는 미국 내 800여개의 월마트 매장을 새로운 판매통로로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광고비까지 줄일 수 있는 길을 마련한 것이다. 월마트는 수익금의 일정액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이익을 챙기고 있다. 이처럼 출판사와 할인점간의 ‘협동작업’이 성공을 거두자 머더스워크 등 다른 출판기업들도 대형할인점들과 제휴관계를 맺기 위해 다각적인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미국 출판업계의 또 다른 화두는 ‘여성’과 ‘어린이’로 꼽힌다. 그동안 출판사들은 ‘남성의 시각’에서 본 신문, 잡지, 도서 등을 주로 제작ㆍ판매해 왔으나 요즘 여성이나 어린이 전문서적을 주로 취급하는 게 업계의 유행처럼 돼 버렸다. 이들 분야야말로 아직 개척이 덜 된 신흥시장이기 때문이다.

뉴욕투자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내 여성잡지시장은 전년보다 9%나 증가한 16억달러 규모로 급성장했다. 특히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가 발행하는 여성전문 잡지 와 어드밴스 퍼블리케이션의 <럭키>,미국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는 타임워너사의 <리얼심플> 등은 불황을 겪고 있는 미국 잡지시장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잡지는 도시에서 일하는 전문직 여성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아 톡톡한 재미를 보았다. 여성이라는 특정 계층만을 상대로 고급스럽고 차별화된 정보를 제공, 큰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신문 제작은 미래 독자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도되고 있다. 좀더 어릴 적부터 신문기사에 노출되면 성인이 된 후에도 신문이나 잡지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계산에서 나온 판매전략이다.

미국 내 주요 일간지들은 이러한 방법을 신규독자 개발의 한 전술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주요 일간지들은 <레드아이>(시카고 트리뷴 발간), <레드스트리크>(시카고 선타임스), <퀵>(댈러스 모닝포스트) 등 독특한 이름의 어린이용 신문을 판매하고 있으며 실제로 상당한 독자를 유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출판업계 전문 애널리스트인 존 모튼은 “어린이신문이 인기를 끌면서 일부 일간지들은 여성 전문신문을 창간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며 “인터넷이나 TV 등에 빼앗긴 독자를 다시 불러모으려면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정치 관련 서적의 인기는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어 주목된다. 2004년 11월2일 미국 대통령선거를 전후해 정치 비평가들이 쓴 논픽션 서적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았으나 최근에는 구매자가 크게 줄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시각적 효과가 뛰어난 요리책들이 최근 들어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이나 비디오게임에 익숙한 소비자들은 사진이 풍부하게 게재된 요리책을 즐겨찾고 있다. 웰빙 바람을 타고 주요 지상파 TV방송은 물론 케이블TV에서도 요리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요리책 발행부수도 덩달아 늘어난 것이다.

요리책들은 ‘스페인 요리’, ‘이탈리아 요리’ 등 점점 전문화돼 가고 있으며, 미국인의 입맛에 맞는 수백가지의 요리를 백과사전 형식으로 소개하는 책들도 시중에 나왔다.

기사와 광고의 영역이 모호해지고 있는 점도 미국 출판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지적된다. 비디오게임이나 TV 토크쇼, 영화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광고를 내보내고 있는 광고주들은 신문이나 잡지에 대해서도 좀더 ‘유연성’을 보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른바 ‘광고 형식의 기사’ 혹은 ‘기사 형식의 광고’를 광고주들은 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신문 및 잡지들은 이 같은 광고주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고 있다. 미국 내 대표적 고급잡지로 통하는 <배너티 페어(Vanity Fair)>는 명품 만년필회사인 몽블랑의 집요한 요청에 따라 지난 여름호에서 수필 공모전을 실시했다. 수필 수상작들은 앞으로 출간될 <배너티 페어>에 수시로 게재될 예정이다. 쇼핑 전문잡지들은 기사를 내보내면서 해당업체의 전화번호는 물론 상품정보를 광고보다 더 상세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출판업협회에서는 이처럼 기사와 광고가 지나치게 비슷해지자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세우자는 자성섞인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뉴스위크>의 마크 휘태커 편집장은 “출판사들이 기업 광고로부터 이익을 얻는 것은 사실이지만 편집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광고주로부터 영향력을 덜 받는 신문ㆍ잡지야말로 장기적으로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황을 타고 있는 대표적인 업종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미국의 출판업은 여전히 강인한 생명력을 지켜가고 있다. 인터넷이나 비디오게임이 풍기는 ‘차가움’보다는 종이가 갖고 있는 ‘따뜻함’을 사람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출판업계의 분발을 확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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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