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기획·제작사, 해외홍보원, 지자체 한몸… ‘한류’ 견인차 자리매김

오늘의 한류 열풍이 몇몇 대중스타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다. 스타가 한류를 이끌어가는 ‘얼굴’이라면 문화 콘텐츠 기획, 제작, 마케팅 종사자와 공공ㆍ민간부문의 지원자는 ‘브레인’이자 ‘손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이 사실상 한류 열풍을 일으킨 숨은 주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드라마 한편만 하더라도 연출자와 작가, 제작사, 촬영 스텝, 수출 및 홍보요원 등 스타 뒤에 숨어 있는 수많은 일꾼들이 한류 붐을 만들어내고 있다.특히 연예기획ㆍ제작사들은 스타와 문화 콘텐츠를 빚어내는 생산자인 까닭에 한류의 대표적 주역으로 꼽힌다. ‘원조’나 다름없는 SM엔터테인먼트의 경우 90년대 후반부터 아시아시장을 겨냥한 스타시스템을 도입했다. HOT, 보아, 동방신기 등은 처음부터 ‘아시아용’으로 만들어져 SM의 타임스케줄에 따라 활동영역을 해외로 넓혔다. 10대 우상으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동방신기도 지난해 말까지는 국내 활동에 주력했지만 올 1월부터는 일본에 진출, 바람몰이를 한다는 사전계획 아래 움직이고 있다. 최근 데뷔한 4인조 록그룹 더 트랙스(THE TRAX) 역시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활동하는 ‘멀티용’으로 기획됐다.SM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앞으로 나올 여성 4인조 그룹 천상지희 등도 아시아시장 전체를 목표로 맹훈련 중”이라며 “이수만 프로듀서가 신인의 앨범 컨셉부터 노래, 춤 훈련에 직접 관여하는 등 70여명의 임직원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글로벌 스타를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SM엔터테인먼트의 이 같은 해외전략은 어느새 한류를 겨냥하는 업계의 공통 아젠다가 됐다. 신인가수 발굴시 노래와 춤 실력 못지않게 영어, 일본어 등 외국어 구사 능력을 중요한 조건으로 보는 것이나 수출 대상 국가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해 앨범, 드라마 등의 기획을 하는 움직임이 그것이다.드라마 <겨울연가> 제작사로 높은 지명도를 누리고 있는 팬엔터테인먼트의 경우 문화 콘텐츠 전반에 ‘아시아 코드’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겨울연가>가 성공했다고 해서 비슷한 스토리, 인물 캐릭터, 영상 컨셉 등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아시아 시청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새로운 컨셉의 작품 만들기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충분한 기획 기간을 두고 각국의 시장상황까지 고려해 작품을 준비ㆍ제작하고 있다.김희열 방송영상사업본부장은 “<겨울연가>를 통해 잘 만든 작품 하나가 얼마나 큰 부가가치를 낳는지 절감했다”면서 “국내에서 호평을 받은 드라마는 해외에서도 통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차별화된 드라마, 그러면서도 아시아 공통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드라마 만들기에 역량을 쏟는 중”이라고 밝혔다.이 회사는 그동안 <겨울연가> 한편으로 국내외에서 28억원 정도의 드라마 판매고를 올렸고 OST로 112억원, DVD로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가장 많은 외화를 획득한 문화콘텐츠라는 점에서 지난 2002년과 2004년 2회에 걸쳐 대한민국 문화콘텐츠 수출대상을 받기도 했다. 앞으로도 KBS, BOF(배용준 소속사), 싸이더스HQ(최지우 소속사) 등과 라이선스 사업을 펼쳐 부가가치를 더욱 높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가을동화>,<겨울연가>를 연출한 윤석호 윤스칼라 대표와 함께 ‘봄’을 주제로 한 신작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다.이밖에도 배우 안재욱이 소속된 미르엔터테인먼트, 그룹 NRG로 중국을 강타했던 뮤직팩토리, 여성 댄스그룹 베이비복스를 중국에 진출시킨 DR뮤직 등도 한류 열풍을 견인한 대표적인 연예기획ㆍ제작사로 손꼽힌다.최근 한류 열풍이 무르익자 관련산업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한류 조력자를 자처하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한국관광포털(www.tour2korea.com)을 통해 한류 홍보에 한몫 하고 있는 e비즈니스 공급기업 이모션은 최근 일본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과 MBC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슬픈연가>의 국내외 사업권을 확보하고 한류 콘텐츠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는 우선 관광포털을 활용해 한국을 찾는 관광객 20만명을 대상으로 <아름다운 날들> DVD 판매 및 콘텐츠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정주형 대표는 “그동안 쌓은 인터넷 서비스 역량과 일본 사업 추진 경험을 활용해 해외관광객의 길잡이에서 한류 전파 주역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고 밝혔다.‘공공의 힘’ 중동뚫기 성공시켜한편 엔터테인먼트산업에서 촉발된 한류가 공공ㆍ민간부문과 유기적으로 결합하면서 폭발력을 키운 만큼,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나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 강원도청 관광마케팅부 등의 기여도도 지대하다는 평이다. 세계를 겨냥한 다각도 홍보와 관광객 유치 지원 등으로 한류를 발전시키는 데 적잖은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유창한 외국어 실력으로 무장한 전문인력이 포진하고 있는 강원도청 관광마케팅부는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해외관광객 유치에 직접 나서 ‘아름다운 관광한국을 만드는 사람들’에 선정된 바 있다. 스키여행상품, 수학여행단 유치 등 각종 한류상품을 개발해 연간 160억원에 이르는 관광 특수를 누리게 한 원동력이 됐다는 평이다.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경우 해외시장에 국산 문화 콘텐츠를 소개하고 확산시키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프랑스 칸에서 열린 미뎀국제음악박람회에 전시관을 마련하고 해외 음악 바이어와 국내 음반 유통ㆍ기획사를 연결해주는 창구 역할을 맡기도 했다.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 역시 한류의 든든한 서포터다. 중국, 일본, 태국 등 아시아 각국에 설치된 문화ㆍ홍보관을 통해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을 소개하고 관련기업의 현지 진출을 돕는 등 음양으로 활동 중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아랍시장에 한류를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해 한류 시장을 중동으로까지 확대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해외홍보원이 판권을 구입, 지난해 이집트 국영TV에서 방영한 <가을동화>의 경우 종영 후 현지 대사관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시청자 전화가 몰리는 호응을 얻었다. 송정칠 해외홍보원 해외과장은 “1월부터 방송 중인 <겨울연가>도 반응이 좋다”고 밝히고 “의외로 아랍권과 정서, 문화가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중동에도 한류 열풍이 큰 부가가치를 낳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해외홍보원은 아랍전문가 등의 의견을 참고해 후속 방영작을 선정하는 등 한류의 지속ㆍ심화하는 방안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또 아시아 각국과의 문화예술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서 한류 열풍 이면의 부정적 인식을 제거하는 데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민간부문에선 한국드라마를 아시아 각국 언어로 옮기는 전문번역가, 한류를 타고 한국을 찾은 관광객을 인솔하는 관광통역원 등을 숨은 주역으로 빼놓을 수 없다. 외국인 카지노 전문업체 파라다이스는 지난 1월20일 관광가이드 440명을 초청, 한류 확산과 관광객 유치의 공을 이들에게 돌리기도 했다.INTERVIEW 유지후 세린여행사 관광가이드관광객 증대 한몫 “우리도 한류 주역”“한류 붐 덕분에 한국을 찾는 아시아 관광객이 크게 늘어났음을 피부로 느낍니다. 숫자가 늘어난 것은 물론 한국에 대한 관심과 매력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어요. 관광가이드 생활을 통틀어 요즘처럼 바쁘면서 신나는 때는 처음입니다.”17년째 중화권 관광객 전문가이드로 활동하고 있는 유지후씨(47ㆍ세린여행사)는 최근 2~3년 동안 관광객을 인솔하면서 깜짝 놀라는 경험을 몇 번이나 했다. 한국드라마에 대해 자신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는 관광객을 보면서 한류의 위력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까닭이다. 유씨는 “한국 관련 정보로 중무장한 관광객에게서 ‘감동’을 받을 정도”라며 “한류 붐 이후 선호하는 관광지, 관광객 태도 등이 확 달라졌다”고 말했다.유씨가 요즘 관광객을 인솔해 꼭 들르는 곳은 강원도 용평, 춘천, 남이섬, 서울 워커힐호텔 카지노 등이다. 모두 <겨울연가>나 <호텔리어> 같은 인기 드라마의 촬영지다. 특히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눈을 구경하기 힘든 곳에서 온 관광객에게 강원도는 천국이나 다름없는 인상으로 다가간다고. 유씨는 중화권 관광객의 니즈를 재빨리 파악하고 정성을 다한 서비스를 펼친 덕분에 지난 1월20일 ‘파라다이스 관광통역원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류에 반해 한국을 찾았다가 유씨의 서비스에 또 한번 반한 고객들이 새로운 관광객을 창출하는 선순환이 인정을 받은 것이다.“한국드라마나 음반이 히트할수록 한국을 찾는 관광객 숫자도 늘어날 겁니다. 지난해부터 대만 직항운행이 재개된 것도 고무적이에요. 일부에서는 한류 열풍이 금방 사그라질 것이라고 하지만 관광현장에서는 변함없는 한류 열풍을 느낄 수 있어요. 지속, 확산시킬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