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한류 찬사 급감… 양국교류 확대가 변수

1월17일부터 19일까지 일본의 중서부지역인 고베시 일원을 다녀왔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한신대지진의 피해복구 현황을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었다. 한신대지진으로 4,500여명의 사망자를 낸 고베시에서 예상치 않게 ‘한류 열풍’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산과 바다에 둘러싸인 고베시는 자연풍경이 아름다워 일본에서 젊은 부부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 중 하나다. 고베시 북부에는 1800년대 중반부터 외교관과 외국상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던 ‘이진칸’이 관광단지로 꾸며져 있다.시간을 내 방문한 이진칸 거리 곳곳의 기념품점에는 <겨울연가>(일본명 후유노소나타)의 주인공인 배용준과 최지우의 캐릭터상품이 즐비했다. 상점주인들은 관광 온 중년여성들을 향해 ‘욘사마’(배용준의 존칭) 목걸이라고 흔들면서 구매를 권유하고 있었다.올 들어 조금 식기는 했지만 일본 내 한류 열풍은 여전히 불고 있다. 지난해 일본의 각 신문과 방송들은 앞다퉈 최고 히트상품으로 ‘한류’를 꼽았다. ‘2004년 유행어’에도 한류는 상위권을 휩쓸었다.드라마에서 시작된 ‘한류’ 덕택에 한글, 한국식품, 한국역사 등 다양한 분야로 일본인의 관심이 확산됐다. 한국을 제대로 몰랐던 많은 일본인이 한국을 새로 보는 계기가 됐다.한글교실만 봐도 한류 열풍을 실감할 수 있다. 외국인이 그 나라 말을 배운다는 것은 그만큼 애정이 깊다는 증거다.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운영하는 도쿄나 오사카의 한국어교실에는 요즘 일본인이 넘쳐난다. 도쿄의 경우 한국어강좌를 들으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한다.가정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은 더 많다. NHK 교육방송에서 방영하는 한국어 교재 판매량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지난 98년만 해도 월평균 한글교재 판매량은 8만권 수준이었다. 영어 122만권, 중국어 15만권, 프랑스 14만권에 비해 4개국 중 가장 적었다. 2003년까지만 해도 한글교재 판매량은 10만권을 못넘어 꼴찌였다.그러던 것이 지난해 사정이 급변했다. 연초부터 수요가 급증하면서 12월의 경우 18만부를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중국어(15만권), 프랑스어(11만권)를 제쳤다. 영어는 88만권으로 1위를 지켰지만 6년 전과 비교해 크게 줄어들었다.한국인 호감도 크게 개선한류 열풍으로 양국간 교류가 늘어나면서 상호 방문객수도 지난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65년 국교정상화 당시 연간 2만2,000명에 불과했던 방문객은 지난해 500만명을 넘어섰다. ‘한ㆍ일 우정의 해’인 올해는 6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일본 정부측은 예상하고 있다.드라마 <겨울연가>로 시작된 한류 열풍은 양국관계 개선에도 커다란 기여를 했다.지난해 말 일본 내각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에 대해 ‘친밀감을 느낀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60%에 달해 사상 최고수준을 나타냈다. 96년 첫 조사에서는 35%에 그쳤다. 반면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답변은 같은 기간 중 60%에서 40%로 떨어져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감정이 크게 좋아진 것으로 확인됐다.경제적으로도 양국 모두에 엄청난 상승효과를 가져왔다. 일본과 한국의 각종 연구기관에 따르면 한류는 직간접인 효과를 포함해 약 2,500억엔에서 3,000억엔 가량의 경제효과를 유발한 것으로 추정된다.한국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성장에 0.1% 가량 기여했다는 분석도 나와있다. 특히 2004년 일본 신문에 게재된 386건의 한류 관련기사를 광고가치로 환산하면 약 90억엔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 주일 한국대사관측의 계산이다.한류 붐으로 인해 한국식당, 한국 슈퍼마켓, 한국 비디오가게 등에 일본인이 몰려 재일동포들의 돈벌이가 좋아진 것도 간접적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식당업을 하는 동포들 중에는 지난해 이후 많은 돈을 벌어 시내에 분점을 내는 등 상당한 성공을 거둔 사례도 많다.그렇다면 한류 붐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올 들어 일본 방송이나 신문에 등장하는 한류 관련보도는 지난해에 비해 크게 줄었다. 특히 선정적인 잡지들은 최근 한류의 주인공인 한국 영화배우나 탤런트들에 관해 좋지 않은 루머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등 시각이 매우 비판적이다.최근 한 신문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0% 이상이 올해 안에 한류 붐이 끝날 것이라고 답변했다. ‘한류’ 역시 일본인의 일과성 흥미의 대상이지 문화적 현상으로 뿌리내리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열기만큼 비판도 늘어일본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으로 2003년 위성채널과 2004년 지상파를 통해 <겨울연가>를 집중 방영, 한류 붐을 일으켰던 NHK에 대한 인본인들의 비판도 증가해 한류 붐에 대한 청소년 등 일부 계층의 거부감이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한류 열풍이 계속될지 여부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일본의 주간지 <아에라>의 한 기자는 “한류가 한국어 열기로까지 확산된 만큼 당분간 한국문화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지속될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그는 이어 “예전에 일본인들이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에게 완전히 정신이 빠진 적이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스페인어 학습 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영화평론가 다시로 오야세씨는 “지금까지 한국문화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중년여성층이 한국문화에 눈을 뜨고 진지하게 접근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한국에 대해 다방면으로 관심이 확산돼 상당기간 열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실제로 도쿄대 조사에 따르면 <겨울연가> 팬의 평균연령은 47세이고, 93%가 여성으로 집계됐다. 가정생활에 충실하면서도 유행에 민감한 여성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한류 붐이 상당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반면 부정적인 견해도 많다. ‘한류’는 한국 매스컴이 조작해낸 민족적인 용어로 일본에 실제로 ‘한류’는 없다는 지적이다.연예기획사 IMX사의 미즈사키 도모코씨는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일본인의 ‘쏠림현상’은 연령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착하는 마니아적 성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도쿄신문>의 한 연예부 기자는 “최근 한류 현상은 특정 배우에 대한 일시적인 붐이지, 일반적 현상으로 보기는 어려워 상당기간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이처럼 낙관론과 비관론이 있지만 올 들어 일본에서 ‘한류 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강해진 것은 사실이다.전문가들 사이에는 특정 배우나 유행에 의존한 ‘한류 붐’은 조기에 끝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한류 붐을 뿌리내리게 하려면 한국문화의 일방적인 전파가 아니라 양국 상호주의에 입각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에서도 ‘일본’과 ‘일본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하고 일본문화에 대해 보다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의견이다.세상일에 ‘공짜’는 없다. 선진국이 일본에서 마냥 한국의 대중문화 인기가 지속될 것으로 기대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한ㆍ일국교 40주년을 맞아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야 일본 내 한류의 생명력도 길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