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이 돌아왔다.’주가지수 1000 돌파로 장모님이 ‘컴백’했다. 4~5년 전 코스닥 붐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일선 객장에 출현한 장모님 숫자는 일일이 세기조차 어렵다. 고객 중 얼추 30~40%는 장모님들이다. 장모님이란 증권가에서 부르는 ‘아줌마부대’의 별칭이다. 50대 이상으로 꽤나 보수적인 투자그룹을 일컫는다. 증권가에서는 이들 장모님이 수익을 내면 피크(고점)라는 투자격언이 있다. 증권가의 장모님 등장 소식은 연초 이후 부쩍 잦아졌다. 처음에는 아줌마 특유의 신중함 때문에 관망에 그쳤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가벼운 호재에도 ‘들썩들썩’이는 장모님이 수두룩하다. 쌈짓돈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아줌마들 표정이 그날의 종합주가지수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3월15일 점심 무렵 서울 명동 S증권 객장. 말 그대로 ‘인산인해’다. 오후 1시를 넘기면서 객장은 발 디딜 틈조차 없어졌다. 들어오는 사람은 많은데, 나가는 이가 없으니 시간이 갈수록 더 붐비는 모양새다. 이렇다 할 용무가 있음직한 방문객은 별로 없다. 삼삼오오 투자정보ㆍ경험담을 나누거나 홀로 고민스러운 장고에 빠진 투자자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시선만은 예외 없이 한곳에 집중된다. 한쪽 벽면에 설치된 전광판이 인기스타 못지않게 눈길을 끌어당긴다. 덩달아 전광판 앞은 명당자리로 손색이 없다. 자리바꿈도 거의 없다. 장모님그룹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투자자는 “자리를 뺐길까 봐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웠다”며 “증권사들이 왜 전광판을 없애는지 알 수 없다”며 불평했다. 사실 전광판은 HTS(홈트레이딩시스템)에 밀린 지 오래다. 각 증권사들도 전광판을 없애는 추세다. 전광판이 설치된 몇몇 객장에 사람들이 몰리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투자자 면면은 다양하다. 다만 주력은 장모님군단을 비롯한 5060세대다. 앞서 말한 것처럼 HTS가 일반화된 결과 젊은층은 온라인으로 거래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일부지만 환갑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 투자자들도 있다. 벙거지와 돋보기로 무장한 이들 중장년 이상 투자자그룹은 객장의 단골손님이다. 지점장 생활을 오래한 김대중 교보증권 자산관리영업부장은 “장이 깨졌을 때도 이들 할아버지는 자리를 지켰다”며 “HTS에 미숙한데다 영업직원들과도 안면이 있어 여러모로 객장이 편할 것”이라고 전했다. 점심시간을 전후해서는 넥타이부대도 간혹 목격된다. 신규계좌를 틀기 위한 방문이라는 게 객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증권계좌수는 2월 말 현재 1,891만7,753개로 3개월 전보다 21만개 가까이 늘어났다.객장이 붐비는 건 명동만이 아니다. 고객접점이 좋은 곳에 위치했다면 어느 객장이든 상황은 비슷하다. 강남ㆍ압구정ㆍ청량리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명동만큼 크게 늘지는 않았지만 최근 몇 달 사이에 증가세가 꾸준하다. 전통적으로 주식투자에 우호적인 분당ㆍ일산 등 신도시의 현장감각도 마찬가지다. 이제 ‘직원이 손님보다 더 많다’던 우스갯소리는 옛말이 돼버렸다. 다만 객장 손님이 실제투자로 연결되는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D증권 K팀장 얘기를 들어보자. “장이 좋아 방문객이 조금 늘긴 했겠지만, 그래도 미미한 수준이다. 객장은 이미 양로원 아니냐. 10년 전 봤던 할아버지가 아직까지 보인다. 투자보다 소일거리로 찾는다는 게 더 맞다. 이걸 갖고 주식투자 붐이니 하는 건 생각해볼 문제다.”그도 그럴게 몇몇 거점점포를 빼면 객장 분위기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후문이다. 조금 늘긴 했지만 의미부여에는 신중하자는 얘기다. 증권가의 상징으로 꼽히는 여의도 본점 영업부가 비교적 잠잠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HTS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오프라인은 아랫목 온기와 윗목 한기가 공존하는 반면, 온라인의 경우 주식투자 열기로 문전성시다. 과거의 참패 기억과 함께 묻어둔 장롱 ID를 부활시키는가 하면 ‘새 피 수혈’로 대변되는 신규투자자까지 적잖이 늘어났다. 기폭제는 단연 주가지수 1000돌파다. 대화 주제로 주식이 첫손가락에 꼽힐 만큼 대중적인 이슈로 거듭났다. 투자경력 8년째의 C씨는 “최근 계좌를 다시 열어 보유종목과 잔고를 확인했다”며 “금액이 적어 관심을 놓고 있었는데, 여기에 1,000만원을 더 넣어 한번 더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개인투자자 H씨는 “얼마 전 동창회에 나갔는데, 친구들 중 주식계좌 없는 사람이 없었다”며 “단서는 달았지만 결론은 주식투자 당위론 쪽으로 모아졌다”고 전했다. 코스닥 버블붕괴 때의 아픈 기억 때문에 차일피일 타이밍을 미뤘던 H씨로서는 조바심까지 났다고 덧붙였다.개미군단의 주식투자 확대는 다른 곳에서도 확인된다. 후광효과를 입은 대표적인 곳이 증권사다. 1000 돌파는 증권사에 둘도 없는 호재로 작용했다. 당장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업계에 따르면 D증권은 하루 약정수수료만 20억원 넘게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기록적인 수치다. 불과 몇 달 전보다 적게는 20~30%에서 많게는 100% 이상 수입이 늘어난 곳까지 있다. 증권정보 사이트도 ‘봄날’이다. 사이버 애널리스트의 투자정보를 주로 제공하는 이들 업체의 실적은 급격히 개선되는 추세다. 김영규 씽크풀 마케팅팀장은 “1월부터 매출이 매달 20~30%씩 늘고 있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사이트 방문객ㆍ클릭수도 증가 추세”라고 밝혔다. 실제로 씽크풀 토론광장에는 주제글 밑에 리플이 꼬리에 꼬리를 물 듯 달려 있다. 개미군단의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주제도 다양하다. 초보부터 전문가까지 참가한 갖가지 난상토론이 벌어진다.이른바 ‘선수들’의 등장도 화젯거리다. 선수란 개미군단 중 상위 3~4%에 속하는 거물급 전업투자자를 일컫는다. 개중에는 투자원금만 200억~300억원대에 달하는 슈퍼개미도 있다. 월 3~4회만 돌려도 가볍게 1,000억원 안팎을 주무르는 셈이다. 흔히 선수라면 ‘다마 1개(1억원)’ 이상에 투자내공과 네트워크를 갖춘 전문가를 의미한다. 출신은 각양각색이다. 전직 증권사 임직원부터 제조업ㆍ자영업자까지 십인십색이다. 주로 여의도와 강남 일대 오피스텔에 개인사무실을 차려놓고 매매한다. 소개로 어렵게 통화된 모 선수는 “4년 전에 손을 털었다가 지난해 가을에 다시 매매하기 시작했다”며 “감을 잡기 위해 1~2개월 지켜본 것을 제외하면 매달 짭짤한 투자수익을 거뒀다”고 전했다. 지인에 의하면 그의 투자원금 10억원은 현재 300~400%의 수익률을 거두며 몇 배로 늘어났다. 전직 애널리스트 출신인 P씨는 “8,000만원으로 가볍게 투자하고 있다”며 “현재 더블 이상 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3~4개월 사이에 2~3배 차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진 사례는 이밖에도 수두룩하다.선수들의 입질은 열에 아홉이 아마추어보다 빨랐다. 뒤늦게 뛰어든 선수조차 지난 1월이 막차였던 걸로 알려졌다. 압구정동 근처에서 전업투자자로 활동 중인 L씨는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여의도에서 돈냄새가 났다”며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퉁명스레 내뱉는다. 장이 좋았을 때 한몫 잡은 뒤 이민을 떠났던 전직 선수의 복귀설까지 나돈다. 덩달아 요즘에는 작전세력까지 준동 중이다. 이들의 움직임에 밝은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마디로 ‘난리’도 아니다. S증권 H부장은 “차트만 훑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며 “과거 코스닥 버블 때처럼 작전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된다”고 분석했다. 작전 시나리오는 한층 교묘해졌다. 금융당국의 감시와 함께 눈치 빠른 개인투자자가 많아진 결과다. 끌어들이고 털어낼 때까지 기간은 며칠 사이에 끝난다. 작전세력에 정통한 개인투자자 J씨는 “눈먼 돈(개인투자자)을 유인하자면 치고 빠지기가 불가피하다”며 “이 바닥에서는 3일 천하란 말로 통용된다”고 밝혔다. 길어야 3일이면 상황종료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