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양승득 편집장대성그룹의 변신에 가속도가 붙었다. 지난 3월 뉴질랜드의 세계적인 영화 포스트 프로덕션 기업인 파크로드포스사와 제휴, 조인트벤처를 설립한 것이다.“50년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52)은 아리송한 ‘회고’로 문화산업 진출의 배경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때 연탄 하나로 재계 10위에 올랐을 정도로 주위의 부러움을 샀지만 당시 비슷한 규모였던 삼성그룹이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데 비해 대성은 제자리걸음을 했다는 것이다. 굳이 삼성을 예로 든 데도 이유가 있었다.“대성이 연탄으로 엄청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한 재미동포 과학자가 반도체산업 진출을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경영진은 이를 거절했죠. 반면 삼성전자는 과감하게 반도체산업에 진출했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만회해야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과감하게 도전해야 합니다.”문화산업 진출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최근 들어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모바일게임, 케이블방송, 영화투자 등 다양한 사업에 진출했다. 이 가운데 케이블방송사업은 철수했지만 게임과 영화투자 부문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투자 대비 수익률이 25%로 업계 평균인 10%를 훌쩍 뛰어넘고 있는 것. 에너지 전문기업이란 ‘알’을 깨고 새로운 도전에 마주선 김회장의 출사표를 들어봤다.뉴질랜드의 파크로드포스트사와 조인트벤처를 설립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사업을 펼칠 계획인가요.3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한국과 뉴질랜드에서 제작되는 영화, TV시리즈, 게임 등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특히 영화의 경우에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집중 투자할 생각입니다. <반지의 제왕>, <캐스트 어웨이>, <버티칼 리미트> 등 세계적인 대작의 후반부 작업을 진행해 오고 있는 파크로드포스트사의 기술력과 인지도를 이용하면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합니다.국내 영화산업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최근 한국영화는 국제영화제를 휩쓸 정도로 기획력과 독창성에서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지만 영화편집, 컴퓨터그래픽, 사운드믹싱, 네거티브 현상 등 영화제작의 후반부 작업에서는 열세를 보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 제휴를 기점으로 한국영화의 후반부 작업도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게 됐습니다. 파크로드포스트사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기술이전과 기술연수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약속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조인트벤처의 운영은 자본을 지원하는 대성그룹이 주도할 예정입니다. 그룹의 계열사인 바이넥스트창업투자가 그 역할을 할 것입니다.문화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선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문화산업은 엄청난 고부가가치 산업입니다. 온라인게임 ‘리니지’를 서비스하고 있는 엔씨소프트를 예로 들어 보죠.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2,500억원인데 놀라운 사실은 이익률이 31%가 넘는다는 겁니다. 이는 제조업 평균인 2%보다 16배나 높은 수치입니다.산업규모도 엄청납니다. 올해 세계 문화산업 시장규모는 1조4,000억달러에 달해 IT, 하드웨어 시장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게임산업 하나만 봐도 2001년에 이미 반도체시장을 앞질렀고 내년에는 2.7배나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따라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문화산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문화산업 강국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5000년의 역사와 문화유산, 높은 교육수준, 다양한 역사적 경험, 감성이 풍부한 국민성 등 토양이 비옥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천혜의 환경을 활용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인 문화산업 기업이 탄생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성그룹이 문화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선정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영화, 디지털콘텐츠, 게임 등 다양한 문화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계획입니다.가시적 성과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대성닷컴을 통해 모바일게임 유통시장에 진출했고 경기케이블TV를 인수하기도 했지만 가시적 성과는 영화 부문에서 두드러집니다. 계열사인 바이넥스트창업투자를 통해 <올드 보이>, <범죄의 재구성>, <늑대의 유혹>, <주홍글씨> 등의 한국영화에 투자를 했습니다. 특히 <올드 보이>의 경우 52억원을 투자해 130억원을 벌어들여 150%의 수익률을 기록했죠. 최근에는 <말아톤>이 흥행에 성공하고 있어 큰 기대가 됩니다. 지금까지 대성은 영화 한편당 총제작비의 15% 정도만 투자했는데 이 영화에는 20%를 투자했습니다. 필요한 투자자를 다 구하지 못해 대성이 관례보다 많은 투자를 했죠.국내 문화산업의 환경은 어떻습니까. 세계적인 수준으로 진입하는 데 문제는 없습니까.영화의 경우 국제영화제에서 잇달아 수상을 하는 등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고 봅니다. 미국에는 다소 미치지 못해도 중국이나 일본은 압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배우, 촬영기술, 시나리오의 독창성 등 우수한 인적 인프라를 갖고 있죠. 반면 물적 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문화산업은 대형 자본 없이 성공하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 산업 특성상 성장 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나기 어려운데다 초기 개발과 마케팅에 거액의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 문화산업의 현실은 매우 열악합니다. 개인사업자가 전체의 35.6%에 달하고 연매출이 5,000만원도 안되는 업체가 33%나 됩니다. 게다가 전문인력도 턱없이 부족하고 경영도 투명하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정부도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장기 발전 전략을 세우고 2007년까지 세계 문화 콘텐츠 시장점유율 5%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정부 정책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문화계 종사자, 재계, 투자자 등 다양한 경제주체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전경련의 문화산업특별위원회장을 맡고 계신데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대기업이 문화산업에 진입할 수 있는 모델 발굴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우수한 시나리오가 영화로 완성될 때까지 지원을 보장하는 ‘완성보증보험제도’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그동안 위험부담 때문에 투자를 꺼리던 대기업들의 문화산업 투자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기업이 문화산업을 독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대기업은 투자와 유통을 담당하고 중소기업은 제작을 담당하는 윈윈(Win-Win) 모델을 찾아야죠.또 문화산업 투자자에 대한 세제지원 등 문화산업 활성화를 위한 제도와 시스템 정비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향후 위원회 산하에 분야별 전문 워킹그룹을 구성해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할 계획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동북아 지역문화 발전을 위한 회담 등 재계와 정부가 공동으로 추진할 가치가 있는 사업도 적극적으로 펼쳐나갈 방침입니다.대성은 에너지 전문기업입니다. 에너지와 문화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대성은 태양광, 풍력, 수소연료전지 등 대체에너지 개발에 대한 투자를 높이고 있습니다. 에너지와 환경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대성그룹은 환경을 보호하고 책임지는 기업이 될 겁니다. 문화산업도 일종의 환경산업으로 생각합니다. 사회를 깨끗하게 하는 역할을 하니까요. 그래서 그룹의 모토도 ‘몸을 따뜻하게, 마음을 따뜻하게’로 정했죠.‘아워큐’라는 브랜드로 의류사업에도 진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정된 신규사업이 또 있는지요.세계적으로 도시가스업체들은 매우 다양한 사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 말고 안하는 게 뭐냐고 물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일례로 일본의 오사카 도시가스사는 계열사가 무려 200여개에 달합니다. 가정, 상가, 기업 등 다양한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므로 관련분야가 많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대성그룹 역시 다양한 신사업에 진출할 방침입니다. 에너지ㆍ금융ㆍ통신을 3대 핵심사업으로, 환경ㆍ마케팅ㆍ건설을 3대 주력사업으로, 영화ㆍ교육ㆍ미디어를 3대 전략사업으로 삼고 2010년에는 매출 10조원, 순이익 10억달러를 달성한다는 각오입니다. 사재를 털어서라도 과감한 투자를 할 생각입니다.약력 : 1952년 대구 출생. 71년 경기고 졸업. 75년 서울대 법대 졸업. 81년 미시간대 법학 석사. 경영학 석사. 87년 하버드대 신학 석사. 95~97년 대성그룹 기획조정실장 부사장. 97~2000년 대성산업 대표이사 사장. 2000년 대구도시가스, 경북도시가스 대표이사 회장(현). 2001년 대성그룹 회장(현). 2002년 한국도시가스협회 회장(현). 2004년 전경련 문화산업특별위원회 위원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