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488호 (2005년 04월 11일)

튈 자신 없으면 죽어버려라!

기사입력 2006.09.04 오후 12:01

미국의 유명한 마케팅전문가 세스 고딘은 자신의 저서 <퍼플카우(Purple Cow)>에서 ‘리마커블’(Remarkableㆍ깜짝 놀랄 정도로 인상적인)한 제품과 마케팅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기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폴크스바겐 뉴비틀 자동차를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다. 동그랗고 귀여운 모양의 뉴비틀은 도로 위에 주행 중인 모습만으로도 네모반듯한 다른 자동차 사이에서 뛰어난 마케팅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그는 “안전한 것은 위험하다”(Safety is Risky)고 덧붙인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은 미국에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2003년 출간된 그의 책은 그해 인터넷 서점 아마존 독자가 뽑은 베스트 100위권에 들었으며 경제ㆍ경영서 중에서는 단연 선두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적용할 수 있게 됐다. 독특함을 무기로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단순한 입소문 마케팅에서 업그레이드된 ‘퍼플카우 마케팅’이다.

상식을 깨부숴라!

지난 2월 초 국내에 첫선을 보인 주방용품업체 타파웨어의 ‘고플렉스’(Go-Flex)는 판매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한달 예상 판매량이 동이 났다. 고플렉스는 기존 밀폐용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접을 수 있는 제품’이다. 이 제품의 아이디어는 저장용기가 실제로는 주방에서보다 외부에서 사용되는 시간이 더 많다는 데서 나왔다. 외출시에는 최대 950ml까지 음식을 담을 수 있지만 음식을 다 먹고 난 뒤에는 2cm까지 납작하게 줄일 수 있는 제품이라는 것이다. 이미 이 제품의 국내 공장 생산량은 4배 이상 늘어났다.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을 통틀어 120만여개가 팔렸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이러한 예는 최근 세계적 와인업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한국 와인시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와인시장이 해를 거듭할수록 급격히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소비자가 와인을 어려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와인은 종류가 다양한데다 라벨을 읽는 법이 어려워 따로 공부를 해야 하는 탓이다.

96년 한국에 소개된 이탈리아 와인 빌라 M 모스카텔은 이 같은 상식을 깨뜨림으로써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국내에 소개돼 있는 4,000여종의 와인 중 유일하게 ‘라벨이 없는 와인’인 이 제품은 일명 ‘누드와인’으로도 불린다. 따라서 길고 생소한 와인이름을 외우는데 익숙지 않은 와인 초보자들도 쉽게 재구매를 할 수 있는 제품이다. 이 제품은 이탈리아산 와인 중 판매율 1위라는 게 회사측의 말이다. 특히 병 표면에 새겨진 가면 모양의 도장에는 “이 와인과 함께 인간에게 씌워진 가식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사랑과 우정과 희망을 이야기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고. 이 제품의 유통업체인 아영주산의 김영심 마케팅실장은 “기존 와인과 달리 라벨이 없는 독특한 디자인 때문에 소비자들이 기억하기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3,300원의 신화’로 불리는 화장품업체 미샤와 더페이스샵 역시 이 경우에 해당된다. ‘비싼 화장품이 품질도 좋다’는 고정관념을 깬 이 두 업체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설립 초기 주변 우려와 달리 현재는 국내 상위권 화장품업체로 당당히 자리를 잡았다.

‘오타쿠’를 잡아라!

‘어떤 한 분야에 몰두해 그것 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는 이제 일본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특히 IT기술이 발달된 우리나라에서 한국형 오타쿠인 ‘폐인’들을 자극하는 일은 마케팅 효과로 직결된다. 1인 미디어로 불리는 블로그가 세대를 불문하고 퍼지면서 자칭 ‘폐인’들이 퍼뜨리는 정보는 빠른 속도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마니아 소비자인 이들은 각종 브랜드에서 한정 발매되는 제품에 대한 정보를 국내외 인터넷 등을 통해 입수했다가 이들 희귀 제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 이들은 특히 구전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로 주로 관련 제품의 ‘마니아’, ‘홀릭’ 사이트에서 정보를 얻는다.

이들은 한정판매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 점포 앞에서 밤을 새우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나이키의 경우 지난 3월 말 미 프로농구 NBA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르브론 제임스를 위한 에어포스1의 한정판 ‘LBJ 에어포스1’을 판매했다. 이 제품이 판매되기 전날 서울 청담동 나이키 F2숍에는 수많은 스니커즈 마니아들이 모여들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이들 마니아 덕분에 이 제품은 판매 1시간 30분 만에 완전히 매진됐다. 나이키의 한 관계자는 “사실 이런 한정판 제품은 마진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자신만의 제품을 갖고 싶어 하는 마니아의 기호에 맞춰 소량 한정생산ㆍ판매된다”면서 “어찌 보면 일부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이런 마니아층의 뜨거운 관심과 열정이 바로 나이키라는 브랜드의 가치가 유지되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먹는샘물 브랜드 에비앙에서도 지난 2000년부터 새 천년을 기념하는 밀레니엄 보틀을 만들었다. 매년 독특한 모양의 병에 담긴 한정판으로 내놓는 이 제품은 역시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화젯거리를 만들어라!

국내 대표적인 MP3플레이어업체 레인콤의 양덕준 사장은 ‘퍼플카우 전도사’를 자청한다. 양사장은 지난해 한 대학 강의에서 “좋은 제품을 만들기보다는 사람들에게 화제가 될 수 있는 제품을 만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아이리버 MP3플레이어가 시장에 등장했던 당시에는 주종을 이뤘던 플래시 MP3플레이어가 그다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품목이 아니었다. 따라서 양사장은 초기 ‘업그레이드만 해주면 아이리버 MP3플레이어는 새 제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펌웨어 업그레이드’와 관련된 화제를 만드는 식으로 마케팅 활동을 펼쳤다는 이야기다.

화젯거리를 만드는 마케팅 방식은 특히 트렌드 변화가 빠른 패션업종에서 인기다. 패션진 브랜드 게스에서는 최근 ‘패리스 힐튼 되기’ 이벤트를 벌였다. 게스 매장에서 제품을 구입한 고객이나 온라인을 통해 응모한 소비자 중 한 사람을 뽑아 힐튼가의 상속녀 패리스 힐튼의 삶을 경험할 수 있게 한 행사다. 이 행사를 통해 선발된 김혜미양(18)은 지난 3월28일 W서울워커힐호텔에서 숙박은 물론 보디ㆍ페이스 마사지 서비스와 헤어ㆍ메이크업 변신을 경험했다. 또한 최고급 보석과 드레스로 패리스 힐튼과 같은 상속녀의 이미지를 연출하는 체험을 했다. 이 이벤트는 주요 타깃인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소비자 사이에서 화젯거리로 떠올라 김혜미양은 무려 1,0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면접까지 거쳐 선발됐다.

최근 롯데백화점 소공점 지하에 2호점을 연 크리스피 크림 도넛의 경우 미국 현지에서는 단연 퍼플카우의 사례로 꼽히는 브랜드다. 도넛의 전설로 불리는 크리스피 크림은 탁월한 맛과 대형매장,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1937년 설립 이후 70년 가까이 인기를 끌고 있는 장수 브랜드다. 지난해 말 아시아 1호점으로 문을 연 신촌점은 오픈 초부터 1일 손님 수가 1,500명에 달해 퍼플카우의 위력이 세계적으로 통함을 보여주고 있다. 신촌점의 경우 피크타임에 도넛을 사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거의 30분에 가깝다. 소공점은 15분 정도가 소요된다. 이 도넛은 “크리스피 크림을 먹기 위해 미국 유학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학생과 미국 거주 경험이 있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화제가 됐다. 이들의 입소문을 타고 성공적인 런칭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말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중국 레스토랑 난시앙 역시 처음부터 화젯거리를 낳았던 곳이다. 난시앙은 지난해 10월 말 오픈한 이후 3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에 도달했다. “당초 6개월 정도로 예상했던 점을 감안하면 단시간에 자리잡았다”는 게 난시앙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에는 3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룸을 하나 더 확장해 비즈니스 모임 예약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 레스토랑은 상하이의 육즙만두 ‘소롱포’ 전문점 난시앙의 3호점이다. 상하이 난시앙이 9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까닭에 이 레스토랑을 찾는 많은 고객들이 주문 전에 난시앙의 역사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맛도 맛이지만 레스토랑 자체가 갖고 있는 화젯거리가 마케팅 효과를 발휘한 사례인 셈이다.

INTERVIEW ‘퍼플카우’ 전도사 - 이주형 콜레오마케팅그룹 실장

‘입소문 마케팅, 내 손안에 있소이다’

“이제 4대 매체에 광고하는 것만으로 마케팅 활동을 마쳤다고 생각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입소문 마케팅 에이전시’를 표방하는 콜레오마케팅그룹의 이주형 전략기획실장(34)은 “해외에서는 보편화돼 있는 입소문 마케팅이 우리나라에서도 대표적인 마케팅 방식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스 고딘의 <퍼플카우(Purple Cow)>의 한글판 <보랏빛 소가 온다>의 번역자이기도 한 이실장은 “퍼플카우가 인생을 바꿔 놓았다”며 ‘퍼플카우 예찬론’을 폈다.

“흔히 마케팅 예산이 부족할 때 차선책으로 ‘입소문’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제품의 본질이 탁월하다면 입소문처럼 강력한 마케팅 방법은 없습니다.”

그는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퍼플카우 마케팅에 감명을 받아 캐나다에서 IT컨설턴트로 일하던 동갑내기 친구 이존기씨와 함께 전문 컨설팅업체를 새로 차렸다. 그의 역할은 고객사의 입소문 마케팅을 대행하거나 관련 컨설팅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입소문을 잘 내줄 ‘전파자’를 선정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그가 생각하는 입소문이란 소비자가 체험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제품에 대해 소문을 내는 일이다. 퍼플카우 이론에 따르면 이들 소비자가 바로 ‘스니저’(Sneezerㆍ재채기하는 사람, 아이디어 핵심 유포자)다.

“미국의 경우 전통적인 마케팅 방식만 고수하던 대표적인 소비재기업 P&G조차 입소문 마케팅 전담 자회사를 두고 있을 정도로 기업들이 입소문 마케팅의 효과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13~19세 청소년 대상 입소문 마케팅 에이전시로 2001년에 설립된 P&G의 자회사 트레머(Tremor)는 지난해에는 성공적인 마케팅 케이스로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에 커버스토리로 실리기도 했다. 사업 초기인 2002년 말 이미 미국 전역에 걸쳐 20만명에 달하는 10대 회원을 확보한 트레머는 지난해 2월에는 회원수가 28만명에 달했다. 이에 고무된 P&G는 지난해 메인 타깃인 주부를 대상으로 한 트레머(moms.tremor.com)를 신설하기도 했다.

이실장 역시 이를 벤치마킹한 한국형 스니저그룹을 결성했다. 에이전트캠프(www.agentcamp.com)는 현재 고객사인 LG생활건강, 한국스마트카드 등과 입소문 마케팅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2주 전에 사무실을 확장했다”는 이실장은 “한동안 고객사가 적어 과연 한국에서도 입소문 마케팅이 성공할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최근에는 ‘콜레오마케팅그룹’ 자체가 입소문을 타 고객사가 늘고 있다”고 퍼플카우 전도사로서 자신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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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