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488호 (2005년 04월 11일)

‘인간성 살아있는 애니메이션 만들터’

기사입력 2006.09.04 오후 12:01

박세종 감독(39)의 애니메이션은 이미 지난해 프랑스 앙시(Annecy)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신인감독상 수상으로 그 화려한 명성이 입증됐다. 또 국제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시그라프’(SIGGRAPH) 애니메이션 컨퍼런스에서 베스트 애니메이션으로 선정된 것은 그에게 의미가 컸다. 기술적 측면이 강한 이 행사에서 그의 작품 <버스데이보이(Birthday Boy)>가 영화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정작 같은 국적을 가진 한국사회에서 관심을 보인 것은 사실상 올해 초 열린 ‘77회 아카데미영화제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라는 떠들썩한 유명세를 치르면서다. 그리고 (기자를 포함해) 이제 막 그의 천재성을 말하기 시작한 한국관객에게 그는 그저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며 “이제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고 담담히 말할 뿐이다.

“앙시나 시그라프 수상 직후 갑자기 쏟아진 관심에 사실 어리둥절했습니다. ‘이 분야 사람들이 내 작품을 좋아해주는구나’ 하는 생각에 관객의 호응도가 느껴져 기쁘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답변에도 여전히 우리는 ‘한국인 최초의 오스카 본상 진출자’라는 타이틀로 그를 기억한다. 비록 아까운 점수차로 상은 놓쳤지만 ‘오스카’가 갖는 그 화려함의 무게덕분에 그가 같은 국적이라는 사실에 뿌듯해하는 것이다. 사실 그는 오스카 이전에 이미 37개의 상을 탔고 최근 이란에서 폐막된 제4회 테헤란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도 국제경쟁부문 최우수작품상의 영예를 안았다.

9분30초라는 러닝타임을 생각하면 ‘그는 행운아’라는 느낌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10분이 채 안되는 이 작품에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꽉 채운 그의 2년이 들어 있다 ‘부산사나이’인 박감독은 “내 입장에서는 ‘죽어라 고생한’ 제작과정에 주목해줬으면 좋겠다”는 한마디로 그 시절을 회고했다.

<버스데이 보이>는 이런 내용이다. 한자로 ‘축생일’이라고 쓰인 배지를 단 예닐곱살 가량의 소년 만욱이가 주인공이다. 전쟁 통에 생일을 맞은 소년은 전쟁 잔해를 장난감 삼아 혼자 놀고 있다. 집에 돌아온 만욱이 앞에 놓인 커다란 상자는 생일선물인가 싶지만 그것은 전쟁으로 죽은 아버지의 유품상자다. 이를 모르는 아이는 군번줄과 철모 등 아버지의 물건을 놀이도구로 삼는다. 관객은 알지만 정작 주인공 만욱은 모르는 ‘아버지의 죽음’이 전쟁의 슬픔을 더 증폭시킨다. 이 같은 짤막하지만 인상적인 휴먼스토리로 그는 단숨에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됐다.

<버스데이 보이>는 공식적으로는 호주작품이다. 제작비용을 호주영화학교에서 부담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호주에서 그는 유명인사가 됐다. “호주에서도 인터뷰는 될 수 있는 한 삼가려고 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내 이어지는 “내가 곧 <버스데이 보이>”라는 그의 한마디가 “화려한 기술보다 서정적 감동이 돋보이는 <버스데이 보이>처럼 화려한 외양보다 내실을 갖춘 사람이고 싶다”는 그의 속내를 잘 나타낸다.

박감독은 “이걸 고집이라고 표현해도 좋다”면서 “나는 발빠르게 움직이는 성격이 못된다”고 자신의 캐릭터를 설명했다. “일이 끝날 때까지 놓지 않는 편”이라는 그의 말은 지금의 영광이 우연이 아님을 설명해준다.

대학졸업 후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한국에서 활동하던 박감독은 대학교 때 배낭여행에서 만난 호주 여대생과의 인연으로 호주에 살게 됐다. 유아교육을 전공하던 여대생 르네 레고가 바로 지금의 그의 아내다. 7년 전 결혼한 박감독이 결혼과 동시에 호주로 이주했다는 이야기는 그의 작품이 알려지면서 함께 유명해진 스토리다.

그가 호주에 살고 있다는 건 알려져 있지만 호주에 처음 갔을 때의 이야기는 생소하다. 그는 무작정 전화번호부를 뒤졌다고 했다. 미리 약속을 해야 미팅이 가능한 게 서양문화라지만 호주에서 아무런 경력 없이 애니메이션 관련 업체와 약속을 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무조건 주소를 보고 찾아간 것도 수차례다. 결국 그는 호주 시사주간지 <불러틴(Bulletin)>의 일러스트 작가가 됐다. “50군데쯤 방문했던 것 같다”는 그의 말에 기자가 짐짓 놀라는 듯하자 “새로운 세상에서 그 정도도 안하고 어떻게 일을 하겠다고 할 수 있겠느냐”며 오히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생계를 위해 시작했던 일러스트레이터였는데 다행히 일감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생활고 위협이 느껴지더라도 빨리 애니메이션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아이에게 ‘아버지가 평생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용기 있게 도전했다’는 교훈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잘 먹고 잘 사는 일보다 내가 행복한 것이야말로 영혼까지 행복한 것”이라고 말하는 박감독의 눈에는 ‘꿈을 좇는 순수’가 살아 있다.

그는 인간정서(Spirit)가 들어 있지 않은 애니메이션은 감동을 줄 수 없다고 믿는다. <버스데이 보이>의 아이디어도 여기서 나왔다.

“호주에서 살다 보니 ‘미역국과 초콜릿’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서양에서는 생일이 되면 아이들이 초콜릿 등 많은 선물을 받습니다. ‘어머니의 고통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로 미역국을 먹는 한국식 사고와는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동서양의 문화차이를 느끼면서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는 박감독은 만욱이라는 소년을 주인공으로 해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놀이문화에 대한 정서, 그리고 동양색채에 대한 신비와 전쟁에 대한 반감 등을 엮어 스토리를 구성했다. 이 작품에서 전쟁은 반드시 6ㆍ25를 표현한 것만은 아니다. 전쟁이라는 소재는 우리네 과거사라기보다 이야기를 글로벌하게 만들어주는 도구일 뿐이다.

<버스데이 보이>는 공식적으로 박감독의 데뷔작이다. 그는 이 작품과 달리 이전 습작은 ‘죽음’ 등 매우 어두운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현실에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작품에 대한 시각을 바꾼 것은 일본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접하면서부터다. 그는 “‘애니메이션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면서 “공주나 동물처럼 환상을 표현한 기존 애니메이션과 차별화되는 인간적인 작품이었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인 내용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세계와 통한다는 이야기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게 애니메이션인 만큼 그 자체에 환상이 끼어 있기 마련입니다. 없는 이야기를 믿도록 만드는 게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러니 진실이 없는 환상만 다뤄서는 남는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하나하나에 신중하게 대답한 박감독은 작품관에 대해서도 “다작도 좋지만 반드시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다”고 말해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한국 콘텐츠산업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콘텐츠는 산업으로서 개발한다고 발전하는 게 아니다”고 운을 뗀 박감독은 “기술과시보다는 ‘애니메이션은 영화, 나는 작가’라는 가치체계 정립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철학”이라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는 최근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치와 콘텐츠 육성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자는 취지로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버스데이 보이> 상영회에 참석, 한국 애니메이션업계에도 풍성한 인적자원과 기획력이 있어 희망이 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1,000년이 지나도 인간성이 살아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게 내가 애니메이션 영화에 두는 첫째 가치”라고 ‘애니메이션관’을 밝힌 박감독이 바로 그 희망의 선봉장이 되길 기대해 본다.

약력: 1966년 부산 출생. 96년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졸업. 2004년 앙시(Annecy)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신인상. 2004년 시그라프(SIGGRAPH) 단편부문 대상. 2004년 부천 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 대상. 2005년 아카데미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노미네이트(Birthday 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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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