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488호 (2005년 04월 11일)

따뜻한 디지털과 기업경쟁력

기사입력 2006.09.04 오후 12:01

약력 : 1954년생. 81년 성균관대 경상대 졸업. 95년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수료. 96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보통신정책과정 졸업. 2002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 졸업. 80~2001년 한국IBM 시스템본부장ㆍ지사장. 2002년 한국정보통신수출진흥센터 원장

요즘 ‘따뜻한 디지털 세상’이 화두다. 전통산업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지역간 균형발전, 동북아 IT허브 구축, 정보화 역기능과 정보격차 해소를 통한 따뜻한 디지털 세상 조성은 정보통신부의 올해 비전이기도 하다.

‘따뜻한 디지털 세상 만들기’와 시장논리는 배치되는 듯하나 실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따뜻한 디지털 세상’에는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엄청난 시장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도가(道家)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진정한 선(善)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디지털의 혜택도 물처럼 필요한 곳에 모두 흘러들어가야 하며 물처럼 다양한 형태의 그릇에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의 혜택을 지역과 성별, 나이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 물이 흘러야 할 ‘수로’는 정부의 정책과 시장이다.

정보통신부는 ‘따뜻한 디지털 세상’을 위해 정보격차 및 정보화 역기능 해소 등 이용자 중심의 정책을 강화할 방침이다. 그럼 IT기업들이 따뜻한 디지털 세상을 위해 할일은 무엇일까. 결론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시장에서 소외받고 있는 여성과 고령자의 복권(復權)이 그 답이다.

적어도 IT시장에서 여성과 고령자는 그 규모와 중요성에 비해 홀대를 받고 있다. 따뜻한 디지털 세상은 시장에서 소외받는 이들을 기업경영의 중심에 담는 일, 이들을 위해 제품을 만들고 기술을 개발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기업들은 시장을 작은 부분으로 쪼개면서 여성과 고령자 시장은 ‘틈새’로 취급한다. 제품디자인, 마케팅 등 여러 면에서 이들은 어느 정도 배제돼 있다. 필자가 과문한 때문인지 여성이나 고령자 시장을 타깃으로 한 IT제품이나 기술에 주력하는 기업이 있다는 얘기를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의 경우, 거의 모든 소비재 분야에서 구매 주도층은 여성이다. 전체 소비재 구매의 83%, 가구의 94%, 은행계좌 선택의 89%, 가전제품의 51%가 여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구매책임자로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 현재 조직의 구매책임자와 구매대리인의 50% 이상이 여성이다.

여성 시장의 중요성은 비단 미국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타깃으로 개발되고 판매되는 IT제품은 휴대전화 정도가 아닌가. 여성용 PC, 여성용 디지털카메라, 여성용 MP3플레이어는 왜 없을까. 설령 있다 해도 소비자들의 마인드에 왜 제대로 포지셔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 고령층 시장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50세 이상 장년층은 모든 부의 70% 해당하는 7조달러를 통제한다. 이들은 또한 연간 2조달러를 벌어들이며 모든 사적인 소비의 50%를 차지한다. 고령층 시장을 제대로 개발하면 젊은층 시장에서도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좋은 사례로 노인 친화적인 옥소(OXO)의 주방용품은 연령대를 막론하고 전세계적 인기를 누렸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대통령 자문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에 따르면 2002년 현재 요양ㆍ정보ㆍ여가ㆍ금융ㆍ한방산업 등 8대 고령친화산업(65살 이상 대상) 시장규모는 약 6조3,000억원에 이른다. LG경제연구원은 50세 이상 가계의 소비규모는 올해 82조3,000억원에서 2010년 117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역시 이 ‘실버 마켓’을 대상으로 한 IT제품은 매우 드물다. ‘효도폰’이나 ‘당뇨폰’ 정도일까.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컴퓨터, 인터넷 교육은 늘고 있지만 수업시간에 사용되는 컴퓨터의 키보드에 쓰여진 글자들은 깨알만하다. ‘효도 키보드’는 왜 없는 걸까. 현재 기술로도 충분히 가능할 텐데 말이다.

디지털 기술 진보의 속도뿐만 아니라 개발된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고루 나누는 방법을 고민하는 데서, 이를 통한 ‘따뜻한 디지털 세상 만들기’를 생각하는 데서 기업의 경쟁력 강화는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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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