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중개 물량 급감으로 존폐위기에까지 몰렸던 일본의 종합무역상사들이 해외자원개발과 벤처투자 등 사업다각화에 힘입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종합상사들은 한때 일본의 ‘수출 첨병’으로 활약하며, 자국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지만 90년대 제조업체들이 직접 수출시장 공략에 나서고 투자를 집중했던 부동산가격까지 폭락하면서 기나긴 침체기를 맞았다.<월스트리트저널>은 “석유, 석탄 등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한 각국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이토추, 마루베니 등 일본의 5대 종합상사들은 무역뿐만 아니라 투자은행 업무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며 “종합상사들은 최근 원자재 수요 붐을 타고 해외자원개발사업에 적극 뛰어들어 큰 수익을 챙기고 있다”고 전했다.지난 70~80년대만 해도 일본의 종합상사들은 전 산업분야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 당시 종합상사들은 원자재, 기계, 전자제품, 자동차 등의 수출입과 관련된 모든 일을 대행하며 막강한 영향력과 함께 수출역군으로서의 명성을 쌓았다.그러나 일본 기업들이 점차 국제화되면서 수출입 대행업무가 크게 줄어든데다 90년대 초 부동산 거품 붕괴로 보유자산이 급감, 종합상사들은 엄청난 빚에 허덕여야 했다. 이 때문에 최근 10여년간 종합상사들은 일본 산업계에서 한물간 ‘퇴물’ 취급을 받아왔다.위기에 몰린 종합상사들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에서 해법을 찾았다.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폐쇄하고, 골프장 등 핵심이 아닌 사업부서는 정리했다. 미쓰비시상사의 경우 지난 2001년 이후 전체 184개 사업부 중 66개를 없앴다. 몸집을 줄여 시대변화에 재빠르게 적응하자는 생각에서다.하지만 사업영역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분야로 신속히 다각화됐다. 단순한 수출입거래뿐만 아니라 자원개발 및 경영컨설팅, 애니메이션 영화제작, 투자은행 업무 등 고객이 원하는 새로운 서비스를 발굴하는 신속함을 보여줬던 것이다.고지마 요리히코 미쓰비시 최고경영자(CEO)는 “일본 종합상사들의 수익구조는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다”며 “매출의 70%를 해외투자사업에서 기록하는 등 종합상사들은 새로운 르네상스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무엇보다 일본의 종합상사들이 재기에 성공할 수 있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전세계적 ‘원자재 수요 급증’이라고 경제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근 심화하고 있는 원자재난과 에너지가격 급등은 종합상사들에 ‘최고의 사업 호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최근 미쓰비시상사는 호주, 동남아 등의 액화천연가스(LNG)사업에서 대박을 터뜨려 로열더치셸, BP 등에 이어 세계 3위 LNG 생산업체에 등극했다. 이 회사는 호주 BHP빌리톤과는 50대50의 합작사업을 통해 전세계 유연탄 생산의 25%를 담당하고 있다. 유전개발사업은 이미 정상궤도에 올라 유가가 1달러 상승하면 미쓰비시상사의 순익은 1,000만달러가 늘어난다. 일반기업들은 국제유가가 오르면 이익 급감을 우려해야 할 형편이지만 일본 종합상사들의 상황은 정반대인 셈이다.모건스탠리는 “일본 5대 종합상사들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95% 급증한 4,920억엔에 달할 전망”이라며 “원자재가격 상승세가 지속되면 올해도 매출증가율은 32%를 훌쩍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해외자원개발사업에서 톡톡한 ‘재미’를 본 종합상사들은 캘리포니아 LNG 터미널 등 해외 인프라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북미지역 주요 유전이 밀집해 있는 텍사스 등의 LNG 및 원유를 처리, 수익을 거두기 위해서다.미쓰비시의 가토 세이지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석유 메이저 회사들과 경쟁해도 뒤지지 않도록 에너지사업을 한층 강화하겠다”며 “자금 동원력을 활용해 올해는 유럽의 석유회사 한 곳을 인수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월스트리트저널>은 “종합상사들이 그동안 해외자원 개발에 투자를 늘려왔던 만큼 앞으로 수년간 이익 회수를 통해 높은 실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재기의 활로를 찾은 일본 종합상사들의 추진력이 놀랍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