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페라 사상 유례없는 장기공연, 최고의 제작비, 세계 정상급 출연진….’숱한 화제를 뿌린 오페라 <2005 투란도트>는 ‘수준 높은 제작’을 모토로 4개의 민간 오페라단(글로리아오페라단과 베세토오페라단, 서울오페라단, 한강오페라단)이 공동으로 마련한 무대다. 화려한 의상과 무대로 관객을 압도하는 가운데 매 공연 뜨거운 커튼콜이 이어졌다.이 커튼콜 끄트머리에 출연배우와 함께 무대에 올랐던 양수화 글로리아오페라단 단장(57)은 ‘최초로 장기공연된 오페라’에 보인 관객의 뜨거운 반응에 무척 만족한 모습이었다. “입소문을 타고 관객이 꾸준히 들었다”는 게 그녀의 말이다.양단장이 ‘최초’라는 타이틀을 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여름에는 프랑스 무대에 처음 한국오페라를 올렸다. 지난해 6월 합창단과 무용단, 오케스트라 등 100명이 넘는 공연단과 14t의 장비를 이끌고 프랑스 파리로 가 오페라 <춘향전>을 공연했다. 고속철 개통기념 및 한국ㆍ프랑스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열린 이 공연에는 파리시민과 한국교민 등 1,000명이 넘는 관객이 모여들었다. 프랑스어 자막이 제공된 이 공연을 접한 일부 프랑스 관객들은 “양반이라는 게 무엇이냐”, “왜 춘향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정조를 지켜야 하느냐”고 묻는 등 한국의 풍습과 문화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1995년 일본 도쿄에서 한ㆍ일수교 30주년 기념공연을 가졌을 때도 ‘최초’였다. 일본 무대에 처음 공연을 올린 한국오페라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관객은 “한국과 일본은 겨우 1시간 거리에 있는데 이제야 한국오페라를 접해 감개무량하다”는 반응이었다.양단장은 “한국을 소개하는 데 문화만한 게 있겠느냐”며 문화사절로서 자신의 역할에 자부심을 보였다. “한국이 경제 강국으로 떠올랐다고 하지만 서양에서 보는 한국은 여전히 주변국가일 뿐이죠. 그럴수록 우리 문화를 해외에 소개해 외국인의 감성을 자극할 필요가 있습니다.”인터뷰를 위해 기자와 만난 날도 양단장은 여러 외국인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일부러 외국인 친구를 많이 초대했다”는 양단장은 “한국이 이처럼 뛰어난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임을 보여주고 싶다”고 설레는 속내를 밝혔다.물론 한국의 오페라 문화는 아직 역사가 일천하다. 서양의 오페라 역사는 450년이며 이웃나라 일본 오페라만 하더라도 16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한국보다 무려 100년이나 앞서 있는 수준이다.음악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양단장이 처음부터 오페라단 설립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해 자연스럽게 음대에 진학했다. 졸업과 동시에 결혼한 양단장은 남편의 권유로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인생에서 가치 있는 것 중 하나가 ‘학문’이라는 남편의 말에 공감해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미국으로 유학도 다녀왔고요. 그러고 나서 귀국해 독창회 무대에 서기도 했습니다만 많은 공연을 접하면서 ‘아,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양단장은 모든 공연이 좋은 결과물을 내놓는 것은 아니기에 ‘내가 직접 제작을 해보면 더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됐다. 결국 91년에 ‘일을 벌였다’. 기독교 신자인 양단장은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로 ‘글로리아오페라단’을 세웠다.오페라단을 운영해 온 지난 15년간 그녀가 가장 많이 무대에 올린 작품은 <춘향전>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모든 장르의 예술작품에서 인기 있는 소재로 쓰이는 것처럼 러브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춘향전>에 애착이 간다.“해외에 한국문화를 알리는 데 이만한 작품이 없죠.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창작오페라가 인기가 없어 안타깝습니다. 오페라 발상지인 이탈리아 오페라와 거의 같은 수준의 <2005 투란도트> 같은 작품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아직은 ‘유명배우가 출연한다’는 광고문구 하나에 관객수가 달라지는 게 우리나라 오페라 문화의 수준이다. <투란도트>가 주목을 받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지만 양단장은 여전히 창작오페라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녀는 인터뷰 중에도 손에는 창작오페라 대본을 꼭 쥐고 있었다. 그녀의 창작오페라에 대한 애정을 아는 지인들이 좋은 대본만 있으면 재깍 양단장에게 보내오기 때문이다.“사실 대중성이 부족한 작품이라 해도 국가 차원의 보조가 필요합니다. 세계적인 관광상품으로까지 연결된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도 국가지원으로 커온 것입니다.”오페라는 물질적으로 풍족한 서양의 왕족과 귀족이 정신적인 황폐함을 달래기 위해 궁중음악가를 키운 데서 유래됐다. “마음의 풍요를 주는 게 오페라”라는 양단장의 말이 귀에 꽂혔다.이번 <2005 투란도트>의 의상디자인은 원래 디자이너 앙드레김이 맡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기술 여건상 엄청난 물량의 무대의상을 제작해 줄 곳이 마땅치 않아 결국 이탈리아에서 공수해 온 의상으로 대체했다. 그녀는 이처럼 기술적인 문제가 아직 남아 있어 한국오페라 수준을 높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그래도 요즘은 오페라를 보는 대중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어 힘이 난다. “사업을 하는 남편이 ‘또 어떤 작품을 제작할 계획이냐’고 자주 묻습니다. 사업에 매달리다 보니 문화에 관심을 갖기 어려울 텐데 이렇게 조금씩 알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게 바로 내 역할이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같은 무대예술인 뮤지컬이 최근 한국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데 대해 부럽지 않은지 물어봤다.“사실 <오페라의 유령> 같은 작품이 6개월씩이나 1,000석 규모의 객석을 꽉꽉 채워가며 무대를 장식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한번 나서보자’고 용기를 얻었습니다.”물론 뮤지컬과 오페라는 큰 차이점이 있다. 열정적이고 화려한 춤이 있는 뮤지컬이 사실상 우리나라 민족성과 잘 맞는다는 게 양단장의 생각이다. 하지만 궁중에서 유래한 기품 있는 문화인 오페라는 삶 자체를 업그레이드시켜 주는 이벤트가 된다는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오페라 감상을 어려워하지만 요즘은 인터넷에 정보도 많아 미리 내용을 알고 가면 또 다른 재미를 얻을 수 있다”며 감상법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그녀는 이탈리아 오페라 중 푸치니, 특히 <투란도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과시한다.“푸치니가 <투란도트>를 작곡한 게 1900년대 초입니다. 그 당시에 동양에 관심을 가졌다는 게 대단하지 않습니까. 푸치니는 중국을 배경으로 한 <투란도트>뿐만 아니라 일본을 배경으로 한 <나비부인>도 남겼죠. 오페라의 무대가 될 수 있었던 중국이 한편으로는 부럽기까지 합니다.”그녀는 요즘 후학을 키우는 일에 관심이 많다. 특히 지금처럼 여건이 좋아진 때는 누구든 노력만 하면 좋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독창회 무대에 선 경험도 있는 양단장은 “내가 무대에 설 때는 나만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으면 됐다”면서 “지금은 오페라단 전체를 이끄니 책임감이 막중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여성정치연맹 부총재, 이화여대 교육대학원 동창회장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후배를 위한 또 다른 사업계획을 갖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작은 규모에 그치더라도 꼭 실력 있는 후배를 키울 수 있는 문화재단을 만들고 싶다”는 게 그녀의 말이다. 오페라단장으로서는 다작보다 질적으로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우리나라가 사실 성악 강국 아닙니까. 현재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성악가가 4,000여명이나 됩니다. 이들이 굳이 유럽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많은 무대가 만들어져야죠. 물론 아직 갈길은 멀지만요.”양단장은 “아직 오페라시장이 초기인 만큼 한 작품 한 작품이 오페라팬 수를 좌우할 수 있다”면서 “따라서 사명감을 갖고 일할 생각”이라는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약력: 1948년생. 71년 이화여대 음악대학 졸업. 74년 동 대학 교육대학원 졸업. 86년 뉴욕 브루클린 음악원 석사과정 졸업. 뉴욕 맨해튼 음악학교 수료. 87년 뉴욕 카네기 리사이틀홀 독창회. 88년 경희대 음악대학 강사. 91년 글로리아오페라단 창단. 92년 명지대 음악대학 강사. 한국여성정치연맹 재정위원장ㆍ이화여대 음악대학 동창회장ㆍ평택대 부총장 등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