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3일 중국 푸젠성 마웨이항에는 33t 분량의 대만산 파인애플, 망고, 레몬 등을 실은 컨테이너 3개가 입항했다. 대만산으로는 처음으로 대륙을 밟은 이 과일들은 세관을 지체 없이 통과해 바로 중국시장으로 향했다. 이 컨테이너는 대만 야당 지도자 롄잔과 쑹추위가 베이징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의 릴레이 면접을 통과한 후 받은 선물꾸러미 중 하나다.후진타오 주석은 국공 내전으로 공산당과 국민당이 결별한 지 56년 만에 대만 국민당 당수인 롄잔을 공식 초청, 지난 4월2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국회의사당)에서 양당 지도자회담을 가졌고 이어 5월12일에는 대만 연합야당의 또 다른 지도자인 쑹추위 친민당 당수를 만났다. 롄잔은 중국에서 “양안은 하나의 중국이다”고 천명, 대만 여당의 독립 시도를 돕지 않을 것임을 약속했다. 후진타오는 곧이어 베이징에 도착한 쑹추위에게 대만 유학생들을 내국인으로 대우하고 양안 무역을 가속화하기 위해 과일수입을 허용하는 등 9가지 경제사회 협력방안을 내놓았다. 2006년부터 직항노선을 트자는 얘기도 나왔다.중국, 대만은 정치적 간극 때문에 여태껏 직항노선을 만들지 않고 있어 대만과 중국을 오가려면 홍콩 등지에서 환승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 기업 6만여개가 왕래의 불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수십년간 대륙을 제집처럼 드나들면서 지난해 말까지 중국에 396억달러(약 40조원)를 직접투자했다. 이는 대만 기업인들이 국외에 투자한 돈 중 절반이 넘는 액수다. 지난 음력설에 대만과 중국 항공사들은 한시적으로 양안 직항노선을 운영했는데 당시 대만 언론들은 이 같은 직항노선이 영구화되면 대만은 매년 7억3,000만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대만인과 상품이 홍콩에서 환승하느라 낭비하는 돈이 이 정도 된다는 뜻으로, 양국간 인적ㆍ물적교류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경제- 양안은 이미 한 나라사실 양안경제는 이미 한 나라나 마찬가지다. 특히 대만 입장에서 중국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대만 국제무역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만이 중국(홍콩ㆍ마카오 포함)과의 교역에서 얻은 흑자는 전체 무역수지 흑자 규모보다 7배 이상 많은 453억달러였다. 중국이 없었다면 수출로 먹고사는 대만의 무역수지는 61억달러 흑자가 아니라 392억달러 적자가 됐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꾸준히 늘어나던 중국과 대만간의 교역액은 2002년부터는 급증세를 타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32% 증가한 829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중국이 2002년부터 대만 은행의 대륙진출을 허용, 중국에 진출한 대만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더욱 쉬워진 영향이 크다. 지난 3년여 동안 대만 은행 7개가 대륙에 상륙했다.중국은 대만의 제1수출대상지일 뿐 아니라 가공무역을 위한 수출기지로도 활용된다. 중국 상무부가 지난해 가을 발표한 ‘100대 외국 수출기업 명단’에 따르면 중국에서 가장 수출을 많이 한 외국기업 1위부터 3위까지가 모두 대만 회사로, 대만의 홍푸젠정밀공업, 다펑컴퓨터, 밍슈어컴퓨터가 2003년 중국에서 만들어 수출한 금액은 147억달러에 달했다. 그해 중국의 전체 수출(8,254억달러) 중 2% 가까이를 이 3개 대만 회사가 거둔 것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3개 회사는 모두 전자업체다. 대만의 최대 수출역군인 전자업계는 대부분 중국을 생산기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대표적 사업모델은 일본에서 부품을 사다가 중국에서 조립하고 이를 중국 내수시장에 팔거나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지로 수출하는 것이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 지도자의 말 한마디가 대만 기업인들을 울리기도 하고 웃게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대만 2위 LCD업체 치메이그룹이다. 이 회사는 쉬원룽 전 회장이 2000년과 2004년 대만 총통선거 때 독립파인 천수이볜 총통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는 이유로 중국 정부에 의해 ‘독립파’라는 낙인이 찍혀 세무조사 등 각종 불이익을 당했다. 쉬원룽 전 회장이 결국 백기를 들었고 올 3월 공개서한을 통해 “중국은 하나다”고 인정했다.때문에 쉬원룽 전 회장 같은 예외도 있지만 대만 기업인들은 롄잔과 쑹추위의 대륙방문에 대해 한목소리로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롄잔이 중국에 있는 동안 상하이에서 만난 추이링링이라는 대만 여성은 “내일(5월1일) 롄잔 주석이 상하이에서 타이샹(臺商ㆍ대만 경제인) 30명을 불러 만찬을 한다고 해서 우리 사장이 가는데 나는 명단에 끼지 못했다”며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추이링링은 상하이 외곽에 있는 최고급 컨트리클럽 ‘톈마’의 세일즈매니저다. 이 톈마클럽 역시 대만자본의 작품이다.정치-중국 따로 대만 따로경제만 따지면 이미 양안은 한 나라나 다름없지만 정치적으로 들어가면 그렇지 못하다. 대만 내에서는 경제인들의 통일 염원만큼이나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 대만 내에서 양안통일이든 일국양제(一國兩制ㆍ나라는 하나지만 체제는 다르다)든 중국과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고 또 반대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답은 팽팽한 양분이다.대만 천수이볜 총통은 대표적인 독립파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그를 놔두고 대만 야당인 국민당과 친민당 당수를 불러 ‘정상회담’이 아닌 ‘당 대 당 회담’을 연 것은 이 때문이다. 천수이볜은 2000년에 국민당의 50년 통치를 종식시키면서 총통에 선출됐을 때도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지난해에도 같은 당론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당시 야당은 세를 결집시키기 위해 롄잔을 연합후보로 내세워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으나 결과는 50.11%를 득표한 천수이볜의 승리였다. 롄잔 후보와의 표차는 고작 0.22%포인트에 불과했다.천수이볜 총통은 이번 롄잔과 쑹추위의 잇단 대륙 방문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더니 지난 5월14일 열린 국민대표(국회의원)선거에서 천수이볜 총통이 이끄는 집권 민진당이 42.5%를 득표하면서 여전히 건재함을 입증했다. 천수이볜은 “헌법개정에 대한 다수의 지지는 민주주의와 개혁, 그리고 대만의 승리”라며 “2008년에 대만 실정에 맞는 새 헌법이 탄생될 것”이라고 말했다.헌법개정이란 무엇인가. 국민당은 1949년 대만섬으로 쫓겨났을 때 대륙을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고향으로 생각해 국호도 대륙에서 쓰던 ‘중화민국’을 그대로 사용하고 헌법에도 대만을 중국의 1개 성(省)으로 명시했다. 이유는 다르지만 물론 대륙에 남아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공산당도 대만은 중국 영토의 일부라고 한다. 대만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이 ‘중국은 하나’라고 선뜻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러나 천수이볜은 대륙을 되찾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헌법개정을 통해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포기하고 독립국임을 뜻하는 ‘대만’을 사용할 것을 주장해 왔다.대만을 반세기나 집권한 국민당과 대만경제를 떠받치는 경제인들이 독립에 반대하는 현실에서 천수이볜 정권의 존립 기반은 무엇일까. 하나는 대만 원주민들이다. 17세기 청나라가 대만섬을 접수했을 때 이곳에는 이미 4000년 전부터 터를 닦고 살던 폴리네시아인과 말레이시아인의 후손들이 있었다. 중국과 아무런 뿌리를 공유하지 않는 이들은 대만 전체 인구 2,200만명 중 2%에 불과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정치세력이다. 하지만 천수이볜 정권을 지탱하는 보다 더 탄탄한 기반은 대만국민들 사이에 여전히 살아 있는 사회주의와 공산당에 대한 적대감이다. 대만의 류즈창 기자는 “대만은 이제 경제적으로는 중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공산당이 대만을 통치하거나 대만이 사회주의에 물드는 양안 통일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대만의 보편 여론”이라고 덧붙였다.중국이 대만을 전격 흡수통일하는 일은 가시적인 미래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두 나라라도 경제통합은 이미 완성돼 가고 있다. 전자산업을 중심으로 시작된 대만 기업의 중국 진출은 이제 부동산, 금융, 의료, 서비스로 확대되고 있다. 지역으로도 상하이를 축으로 쑤저우, 쿤산 등 화동(華東)지방에서 화베이(華北)로 빠르게 북진 중이다. 경제 면에서는 양측 모두 두 나라를 ‘중화권’(中華圈)이라고 통일해서 부르는 데 대해 이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