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500호 (2005년 07월 04일)

현지생산 러시…‘미래시장은 우리 것’

기사입력 2006.09.04 오후 12:01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1,000km 떨어진 곳인 ‘타간로그’. 인구 30만명의 크지 않은 이 도시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러시아 생산기지다. 지난 2000년 세워진 현대자동차의 ‘타가즈’ 공장이 있는 것. 원래 국영 콤바인 공장이던 것을 1년 반에 걸쳐 뜯어고쳐 자동차공장으로 탈바꿈시켰다.

타가즈 공장은 조립공장이다. 반제품 형태의 자동차를 수입한 뒤 현지에서 완성하는 시스템이다. 연간 5만대의 적지 않은 생산능력을 갖췄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현대차의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물량을 대기 바쁘다. 이에 따라 2006년 7만5,000대, 2007년 10만대로 라인을 증설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2002년 5,575대에서 2003년 1만4,561대로 3배 가까이 판매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5만686대를 팔아 외국산 자동차 판매순위 1위에 올랐다.

이 공장은 원래 베르나(현지명 엑센트) 전용 생산시설이었지만 생산모델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현재 쏘나타와 베르나, 포터가 생산되고 있다. 타가즈 공장은 러시아에서 가장 우수한 자동차 생산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현지 기후 탓에 도장공정이 매우 중요한데 상중하의 3공정을 모두 갖춘 공장은 포드 공장과 이곳뿐이라는 설명이다.

한국기업의 본격적인 러시아 진출이 시작됐다. 러시아 경제가 활기를 되찾으면서 시장전망이 밝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4월 기준 217개의 한국기업이 러시아에 현지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누적 총투자액은 2억5,000만달러 수준이다.

최근 진행되는 한국기업의 러시아 투자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기업들은 대부분 판매법인이나 마케팅법인이다. 러시아 외의 지역에서 생산한 제품을 들여와 판매하는 형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생산시설을 갖추는 기업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제야 비로소 생산기지를 세울 만한 비즈니스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한국기업의 한 러시아 주재원은 “생산시설 구축은 대규모 투자인데 그동안 러시아는 정치ㆍ경제적으로 너무 불안해 리스크가 컸다”며 “하지만 최근 들어 시장의 잠재력이 서서히 가시화되는데다 정치ㆍ경제적 불확실성도 크게 줄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만한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차가 지난해 동유럽 지역본부를 러시아로 이전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8월 건설된 한국야쿠르트의 모스크바 공장도 대표적인 생산시설로 꼽힌다. 이 공장은 연간 1억7,000만개의 용기라면을 생산할 수 있는 대규모 시설이다. 소고기맛을 비롯해 닭고기맛, 돼지고기맛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점도 자랑거리다.

사실 러시아인과 라면은 궁합이 잘 맞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정반대다. 러시아인들의 교외 별장인 ‘다차’에 이 회사의 라면 몇 개 없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인기가 폭발적이다. 지난해 무려 2억개를 판매해 6,400만달러의 매출에 라면시장의 80%를 석권했다. 올해 매출목표는 8,700만달러다.

한국야쿠르트의 한 관계자는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물류비 부담이 가중되는데다 관세도 무시할 수 없어 현지생산을 결정했다”면서 “지금까지 총 2,500만달러를 투자했으며 현재 1억7,000만개를 생산할 수 있는 라인을 4억~4억3,000만개 수준으로 증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투자계획은 LG전자의 공장건설이다. 지난 4월 LG전자는 모스크바에서 70km 가량 떨어진 ‘루자’지역에 대규모 생산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LG전자가 1억달러, 동반진출하는 협력업체들이 5,000만달러 등 총투자금액이 1억5,000만달러에 이르는 이 공장은 TV, 오디오, 냉장고, 세탁기 등 4개 제품을 연간 100만대 생산할 수 있다. 이는 한국 가전업체 최초의 생산시설 투자다.

러시아 시장에서 한국 가전업체들의 활약은 잘 알려져 있다. LG전자, 삼성전자 등 한국기업들이 휴대전화, TV,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 주요 가전제품들의 시장점유율 1위를 휩쓸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LG전자는 카자흐스탄에서 선정한 22개의 ‘올해의 제품’ 가운데 17개를 거머쥐었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에어컨, 냉장고 등 6개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50%를 웃돌 정도로 인기가 높다. 브랜드 인지력도 높아 ‘국민 브랜드’를 수상한 제품도 적지 않다.

판매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한국 가전업체들은 그동안 현지생산을 꺼려왔다. 지멘스, 일렉트로룩스 같은 가전업체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해결되지 않은데다 시장규모도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문제는 모두 과거의 일이 돼 가고 있다. LG전자의 투자결정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와 관련, 안성덕 LG전자 CIS지역 대표는 “러시아 시장 환경이 급격히 투명해지면서 다국적 기업의 진출이 활성화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번 현지공장 건설은 LG의 경쟁력 강화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6년 완공될 이 공장에서 출하되는 제품은 전량 CIS지역에 공급될 예정이다. 안대표는 이어 “LG전자가 러시아에서 단순히 돈만 벌어가는 회사가 아니라 러시아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효과도 있다”며 “물건 잘 만들고 장사 잘하는 회사에서 존경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제과업체인 오리온은 최근 초코파이의 현지생산 계획을 발표했다. 이유는 한국야쿠르트와 유사하다. 치솟는 물류비용을 절감하는 한편 보다 신선한 제품을 공급해 시장지배력을 더욱 높이겠다는 것. 현재 초코파이는 러시아 파이시장의 60%를 점유하는 등 큰 사랑을 받고 있다. 1차 투자규모는 약 200억원 수준이고 단계적으로 총 1,000억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한국기업의 러시아 진출 러시는 사실 처음이 아니다. 90년대 중반에도 비슷한 양상이 진행됐던 것. 그러나 98년 모라토리움 이후 2~3년간 러시아 시장은 관심권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99년에는 순투자액이 마이너스 7,300만달러를 기록했을 정도. 하지만 2000년부터 투자가 회복되기 시작, 매년 15개 정도의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 투자가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비즈니스 환경이 급속히 호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시장의 매력은 각종 지표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지난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6.3%에 달하고 실업률, 물가, 외채는 점차 떨어지고 있으며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보유고는 해를 거듭할수록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다. 더욱이 현 푸틴 정부는 시장경제의 문을 더욱 확대하고 있어 시장의 불확실성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관측돼 투자환경이 더욱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소득수준에 비해 월등히 높은 러시아인들의 소비력도 매력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다.

러시아 시장의 전망이 아무리 밝다 해도 진출한 모든 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시장의 특성에 기반한 전략이 없는 한 성공은 꿈에 불과하다. 한국야쿠르트의 용기라면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철도여행을 즐기는 러시아인들의 특성을 파악, 사각형 용기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김승철 KOTRA CIS지역본부장은 한국 중소기업들이 아직도 러시아 시장에 대해 피상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전제한 후 “중소기업들은 정확한 제품 포지셔닝을 결정해 광고, 애프터서비스, 마케팅 등 진출전략을 치밀하게 세워야 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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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