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500호 (2005년 07월 04일)

현대화ㆍ대형화 올인…유럽 교두보

기사입력 2006.09.04 오후 12:01

“헝가리는 동유럽시장 진출의 전진기지로서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슬로바키아 등 7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그야말로 교통의 요지입니다. 더욱이 유럽연합(EU)이 확대돼 루마니아 등 남동유럽국가들이 EU에 가입하면 지리적으로 핵심에 위치하게 돼 입지는 더욱 좋아질 전망이죠.”

김상철 KOTRA 부다페스트 무역관장은 유럽진출을 꾀하는 한국기업들은 헝가리에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리적 조건 외에도 외국인 투자 유치에 대한 헝가리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 서유럽 수준에 육박하는 경제적 풍요로움, 서유럽국가에 비해 월등히 저렴한 인건비 등 투자 최적지로서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헝가리에 법인이나 지사를 설립하는 등 직접투자를 하고 있는 한국기업은 삼성전자, LG전자, 산업은행 등 25개 내외다. 총투자액은 3억8,000만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생산법인은 흔치 않다. 삼성전자, 삼성SDI 등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주목받는 법인은 단연 삼성전자다. 투자 역사로 보나 규모로 보나 부동의 1위인 것이다. 지난해 헝가리 내의 모든 기업 가운데 수출 8위, 매출 24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헝가리 경제에 기여도도 높다. 헝가리의 모든 주요 경제 행사에는 삼성전자의 법인장이 반드시 초대될 정도라는 후문이 있을 정도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약 75km 떨어진 야스페니사루에 위치한 삼성전자의 헝가리법인(SEH)은 1989년에 세워졌다. 현지기업인 오리온사와 50대50으로 합작 투자해 설립됐다. 하지만 1년 반이 지난 91년 6월 삼성전자는 오리온사의 지분을 전량 인수, 단독법인으로 새출발했다. 동구권이 개방되는 시점을 맞아 유럽 중동부에 삼성전자의 글로벌 전략을 이끌 기지를 구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초 SEH는 유럽진출의 보조기지 역할을 했다. 당시 유럽진출의 총아였던 영국법인을 돕는 것이 임무였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뒤바뀌었다. 98년 영국 CTV공장을 통합한 후 유럽지역의 핵심 기지로 변신한 것이다. SEH 성장의 첫 번째 전환점이었다. 현재 SEH는 89년 대지 1,500평 규모에서 대지 2만7,000평, 건평 8,000평의 규모로 성장한 상태다. 생산규모는 4만대에서 370만대로 92배나 불어나 유럽 내 최대의 TV공장으로 발돋움했다.

SEH에서 생산된 제품은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으로 공급된다. 29인치 이상 제품의 경우 러시아에도 일부 공급된다. SEH가 삼성전자의 유럽지역 심장부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 전환점은 2003년에 일어났다. 본사의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에 따라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라인업을 일신한 것. 현재 32인치 이상의 LCD-TV와 프로젝션TV로 주력제품 라인업이 짜여져 있다.

생산량, 매출액, 종업원수를 비교해 보면 SEH의 변신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종업원과 생산량은 줄어드는 반면, 매출액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2002년 1,290명이던 종업원은 올해 1,200명으로 줄어들었다. 종업원이 가장 많았던 지난해에 비하면 150명이나 감소한 상태. 생산량도 2002년 274만5,000대에서 올해 230만3,000대로 44만2,000대 정도 움츠러들 전망이다. 하지만 매출액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2002년 5억6,000만달러에서 지난해 7억8,500만달러(판매법인 매출 포함)로 불어났다. 올해 목표는 7억7,300만달러지만 8억달러 매출 달성도 가능하다는 것이 현지 주재원들의 기대다. 프리미엄 전략이 제대로 들어맞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부터는 LCD-TV 생산을 위한 라인을 2개에서 8개로 추가 증설해 부가가치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SEH의 제품군별 매출 추이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SEH의 생산량은 236만5,000대로 전년에 비해 25만7,000대 줄었다. ‘배불뚝이’ 브라운관TV 생산을 대폭 줄인 탓이다. 이에 따라 배불뚝이 TV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55%에서 14%로 주저앉았다. 반면 평면TV는 27%에서 73%로 무려 2.7배나 증가했다. 생산이 줄었지만 매출이 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판매법인의 활약도 돋보인다. 현재 헝가리에서 삼성전자는 TV, 모니터, 디지털캠코더, 비디오, 전자레인지 등 6개 부문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고부가가치 제품인 프로젝션TV는 공급이 달릴 만큼 인기가 높다. 매장에 전시된 제품까지 판매할 정도다.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의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것은 당연한 결과. 현재 비보조인지도 65%에 이르고 보조인지도는 무려 95%에 달한다.

SEH는 이미 명실상부한 최고 수준의 생산기지이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올해의 당면과제는 ‘완전한 의미의 현지 완결형 생산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한국에서 부품을 일절 들여오는 일 없이 현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홍준기 SEH법인장은 “현재 SEH의 현지 자재 비율은 97% 수준이지만 연내에 100%로 끌어올릴 계획”이라며 “발주에서 공급까지 기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어 부품이 없어 수주를 놓치는 일을 완벽하게 차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SEH에서 자동차로 불과 10분 거리에는 삼성SDI의 헝가리법인(SDHI)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패널이 주력 제품인 SDHI는 현재 2개의 생산라인에서 하루에 1,400개 이상의 CPT(Color Picture Tube)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인근에 위치한 삼성전자에 30% 가량을 공급하고 나머지는 JVC, 필립스 등 유럽에 진출해 있는 다국적 가전업체들에 납품하고 있다.

삼성SDI의 동유럽 생산기지인 SDHI의 생산량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02년 최초 양산 당시 150만대 수준이던 것이 2003년 생산라인 증설을 기점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 약 400만대를 생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주재원들이 말하는 생산기지로서 헝가리의 매력은 단지 지리적 이점이나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우수한 인적자원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라는 것. 전통적으로 손재주가 뛰어난 민족인데다 책임감이 강하고 학습능력이 뛰어나 생산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또 성격이 유순해 회사의 방침을 거스르는 일이 거의 없어 노사분규는 사실상 제로 상태다. 사전에 회사의 입장을 설명하면 잔업 등 추가 노동에 대해서도 불평이 전혀 없다.

홍준기 SEH법인장은 “오랜 세월 사회주의체제를 겪었지만 헝가리인에게 반기업정서나 외국계 기업에 대한 반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호감이 강하다”며 “외국기업, 그것도 삼성전자에 근무한다는 것 자체가 자랑거리가 될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부다페스트대학에서 가진 취업설명회에는 6명 채용하는 자리에 300명 이상의 학생들이 몰려 곤혹 아닌 곤혹을 치를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홍법인장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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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