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500호 (2005년 07월 04일)

‘오가피연구, 획기적 성과 기대하세요’

기사입력 2006.09.04 오후 12:01

대담 = 양승득 편집장

충남 천안시 수신면 일대. 이곳에는 오가피가 지천에 널려 있다. 경부고속도로 목천IC를 빠져나와 차로 20분 거리면 오가피의 대명사 ‘수신오가피’ 농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여기서 관리하는 오가피밭은 넓이만 16만2,000여평에 이를 만큼 광대하다. 온통 사방이 푸른 오가피밭이다. 차로 농장을 둘러보는 데만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작은 나무는 사람 허리만한 것부터 큰 건 2~3m를 훌쩍 넘긴다. 안내원에 따르면 오가피는 워낙 잘 자라 병충해 걱정이나 제초제를 뿌릴 일이 없다. 100% 유기농이다. 실제로 이곳 농장의 오가피는 빽빽이 심겨져 있고 근처에는 잡풀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땅심이 되살아나 자연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곳은 국내 최대 오가피농장이다. 성광수 수신오가피 회장이 국내 최초로 오가피를 대량 재배하기 시작한 터전이다. 하지만 이건 약과다. 매년 봄ㆍ가을로 재배면적을 늘려나가 지금은 전국 28개 농장에 약 275만평의 오가피밭을 확보했다. 이대로라면 성회장의 ‘1억평 프로젝트’도 먼 일이 아니다. 오가피는 2002년 월드컵 때 선수들이 복용하면서 약효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면역성분이 많아 피로감 해소 등 몸의 정상화를 촉진하는 데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시장은 많이 축소됐다. 중국산을 비롯한 가짜ㆍ유사품 때문이다. 2002년만 해도 3,000억원의 규모였지만, 지금은 150억원대로 줄어들었다. 전성기 때 활동했던 150여개의 업체 중 30여개가 생존해 있다. 수신오가피의 경우 연 40억~50억원의 매출을 기록 중이다.

오가피는 동북아지역에만 분포하는 식물이다. 잎이 다섯 갈래로 나뉜다고 오가피로 명명됐다. 인삼ㆍ산삼도 잎이 다섯 갈래로 오과피과에 속한다. 초봄에 싹이 나 가을이면 낙엽이 진다. 한국 특산종은 8종이다. 다른 나라 오가피에 비해 한국산이 4~6배 효과가 좋다는 논문도 발표됐다(와그너 박사ㆍ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그는 자칭 ‘오가피 연구에 미친 사람’이다. “자나깨나 오가피 생각뿐”이란 게 주변사람들의 평가다. 일주일에 4일은 이곳 농장에서 오가피와 함께 지낸다. 티셔츠 차림에 4륜구동을 타고 여기저기 산밭을 헤매고 다니는 그의 모습을 보기도 어렵지 않다.

오가피밭이 대단합니다.

과찬입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해요. 너무 늦게 시작한 게 아쉬울 뿐입니다. 둘러보셨다면 이 근처일 텐데 전국에는 더 많이 있습니다. 기대해보세요. 지금부터 본게임이 시작될 겁니다.

오가피와의 인연이 있다면요.

본격적인 연구는 96년인가 한덕용 박사님을 만나고 나서부터죠. 물론 그전부터 오가피의 약효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요. 우리가 5남매인데 둘째형이 재상감이라는 얘길 들을 만큼 똑똑했죠. 학교도 모두 수재코스만 밟았고요. 근데 젊어서 출세하니 몸이 망가지더군요. 당뇨ㆍ간경화에 덜컥 걸렸죠. 병원에서도 포기했는데 형님을 살려보고 싶었어요. 당시 미8군에서만 구할 수 있던 알부민을 100대나 구해서 50일간 아침저녁으로 놔드렸지만 효과는 금방 사라졌어요. 나중에는 지리산 산삼까지 구했는데 한약전문가가 보더니 가짜라고 하더군요. 당시 그분이 오가피를 권해 그걸 구해 드렸는데 효과가 예상외로 좋았습니다. 6개월 만에 퇴원하더니 1년 정도 지나자 완전히 회복했어요. 그때가 74년인가 그랬죠.

공직을 비롯해 여러 사업을 거치셨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68~75년에 국세청에서 일했어요. 한 7년 정도 했죠. 당시만 해도 인정과세가 많아 ‘와이로’(뇌물)가 많았는데 그게 싫어 그만뒀어요. 그 뒤 96년 오가피 재배에 뛰어들기 전까지 다양한 사업을 했었죠. 민속촌사업(수신민속생활촌)을 비롯해 건설업, 섬유업도 해 봤어요. 근데 다 실패했습니다. 민속촌만 해도 너무 욕심을 냈고 외부에서의 압력도 많았죠. 그때 깨달은 게 ‘절대 자기 힘에 넘치게 하지 마라. 그러면 그건 내 것이 아니다’는 교훈이에요.

실패스토리가 아주 셌나봅니다.

‘수신민속생활촌’ 얘기를 해드릴게요. 83년 독립기념관이 착공되면서 지금의 농장 근처에 민속촌을 하자고 결정했죠. 그래서 84년부터 오가피를 심기 시작했어요. 민속촌의 주요 아이템으로 건강을 염두에 둔거죠. 특출한 음식 10가지를 갖고 다른 한편에서는 오가피로 여성(폐경)ㆍ남성(발기부전)을 공략하자는 전략이었죠. 89년에 허가가 났고 90년에 공사에 착공했어요. 15만4,700평으로 용인민속촌의 1.5배에 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죠. 근데 이게 괜찮아보였나 봐요. 주변 압력에 의해 결국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유증은 굉장했어요. 부채도 천문학적 수치였고요. 하지만 98년 1월 다시 사업을 재개했고 오늘에 이르게 됐습니다.

어려움을 딛고 자수성가한 셈이군요.

67년에 서울에 상경했는데 그때 달랑 3,000원만 갖고 있었죠. 그것도 빌린 돈이었어요. 나중에 30배인 30만원으로 돌려줬죠. 그간 3번을 재벌 입구까지 간 것 같아요. 모두 문 앞에서 무너졌지만요. 하나같이 외부 요인에 의해 실패해서 더 아쉽습니다. 지금은 그런대로 괜찮아요. 충청도 땅이 뜨면서 이곳 땅값도 엄청 올랐죠. 수십만평을 갖고 있으니 땅값만 봐도 적잖죠. 쌓아둔 오가피 원료도 돈으로 환산하면 굉장합니다. 부채가 없지 않지만 어쨌든 실패를 딛고 기반을 닦은 건 사실이에요. 아무튼 제게는 올해가 중요합니다. 다시 한 번 도약하느냐 여부가 달린 해거든요. 2007년까지 지금의 계획이 실천 안되면 그때는 여생을 편히 살 겁니다.

힘든 적도 많았을 텐데요.

오가피를 갖고 장난치는 사람들을 볼 때 가장 힘들고 또 악이 바칩니다. 독소원료가 검출된 오가피를 만들고, 그것을 국민에게 파는 사람들은 천벌을 받아야 해요. 어떻게 사람들에게 독초를 먹일 수 있습니까. 돈에 혈안이 돼 수십만 사람들에게 못할 짓을 한 거죠. 더 원망스러운 건 관계당국이에요. 신고해도 어떻게 된 게 매번 무혐의처분이에요. 딱 꼬집어 잡아줘도 다시 놔줍디다. 솔직히 이민 갈까 생각도 해봤죠. 저도 독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계속 물고 늘어졌죠. 나중에는 검찰도 두 손을 들더군요. 제가 이겼죠. 지렁이와 용의 싸움으로 비유됐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성광수가 이겼다고들 해요. 제발 오가피를 욕보이지 말았으면 합니다.

최근 관심을 쏟는 게 있다면요.

요즘 제가 어지간하면 인터뷰 요청을 사절합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조만간 때가 올 거예요. ‘황우석 교수보다 더 유명해질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정도예요. 지금 세계특허 4건을 갖고 승부를 걸고 있습니다. 감염ㆍ발기부전ㆍ치매ㆍ암 등에 도움이 되는 특허들이에요. 특히 암 정복에 대한 욕심이 강합니다. 제약으로 하면 시간이 걸리는데 식품으로 하면 빨리 만들 수 있죠. 이미 임상에 들어갔고요. 50% 이상의 효과가 있으면 세계암학회에 보고할 거예요. 세계적인 암 박사들도 못하는 걸 이 성광수는 가능성을 봤죠. 현재 30%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앞서 4가지 중 하나만 히트를 쳐도 순식간에 재벌될 겁니다. 우리 연구소는 이미 상당한 수준만큼 연구를 진척했어요. 놀랄 만한 기술도 있고요. 지금은 발표를 미루고 있지만 임상완료 후를 기대하세요.

연구진이 아주 화려합니다.

수신오가피연구소는 국내 최초의 오가피 전문연구소예요. 약학계의 거두이신 한덕용 박사님(전 중앙대 약학대학장)이 상임고문이죠. 크고 작은 도움을 많이 주고 계세요. 국립보건연구원ㆍ국립환경연구소에서 정년퇴직하신 이흥재 소장님도 탁월하십니다. 우리가 만드는 모든 제품과 원료에 대한 품질분석ㆍ성분연구를 총괄하고 계시죠. 이 연구소를 개설ㆍ운영하는 게 의무사항도 아닌데 뭐 하러 멀쩡한 돈을 내다버리느냐고 놀리는 사람도 많았지만 결국 고객신뢰ㆍ만족에 도움이 됐다고 봅니다. 우리 연구소는 과학기술부가 시행하는 21세기 프런티어 연구새발사업에 참여해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의 하나로 오가피에 대한 연구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수출계획을 알려주세요.

웬걸요, 아직 국내시장만 해도 멀었어요. 몇 십배 시장을 더 키울 수 있죠. 수출은 신중하게 생각할 겁니다. 물론 수출에 대비해 제2공장의 라인설치를 완료하는 등 준비는 착실히 하고 있습니다. 가령 오가피술만 해도 국내 양주시장을 대체할 수 있다고 봐요. 45도로 아주 괜찮게 만들었죠.

약력: 1944년 충남 연기 출생. 75년부터 천안시 수신면에서 농사짓기 시작. 79년 국세청 공무원생활 사직. 온가족이 수신면으로 이사해 본격 농사짓기 시작. 현재 국내 최대 토종오가피농장으로 키움. 오가피 체세포증식 및 조직배양에 대한 발명특허 출원. 2005년 수신오가피 및 수신민속생활촌 대표이사 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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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