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제 500호 (2005년 07월 04일)

더 다가가고 싶은 ‘4형제 버팀목’

기사입력 2006.09.04 오후 12:01

‘지웅아, 친구들 신나게 해주고 와라!’ ‘예,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아들이 친구를 만나러 나갈 때 이런 소리를 자주 한다. 사실 나는 가급적 아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기왕 사는 거 신나고 재미있게 살자.’ 내가 이렇게 부자관계에 기름칠을 하면서 살아가는 건 나의 아버지 때문이다. 한마디로 아버지는 엄했기 때문에 다정다감하게 대화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우리 형제는 지금도 아버지를 무서워하거나 어려워한다. 그리고 다소간의 심리적 거리감을 느낀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농업학교를 마친 후 시험을 쳐서 군청공무원이 됐다. 선비정신을 강조해 온 할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다. 관존민비 시절, 그리고 유교사상이 남아 있던 시절 박봉인 말단공무원이지만 공직에 큰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던 차에 6ㆍ25전쟁이 터지면서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공산군이 점령하자 공무원 신분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고 수용됐다. 하루하루 집행날짜를 기다리던 중 인민위원회 간부로 있던 외할아버지 친구의 아들을 만나 겨우 목숨을 건졌다.

지금도 어릴 적 출근시간이 생각난다. 아버지와 우리 4형제가 나란히 집을 나서면 ‘5부자’ 출동이었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운전하셨고, 아들 4형제는 까만 교복차림으로 뒤를 따랐다. 퇴근 후에 아버지는 곧장 집으로 오셨다. 이런저런 약속이 있었을 텐데 신기하게도 다 뿌리치셨다. 집에 와서는 가사를 돕진 않았다. 화단에 물을 뿌리는 정도였고 늘 조용히 앉아 계셨다. 술은 원래 좋아하지 않았고 취해서 집에 돌아오시는 날은 1년에 몇 번 손꼽을 정도였다. 집에 와서는 자식들에게 늘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씀만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버지에게 집은 가장 안전한 피난처였던 것 같다. 생사기로를 넘어온 후 사람들을 가려서 사귀는 편이었고, 다소 경계심이 컸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려서 아버지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중 하나가 친구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 이유를 잘 이해한다. 전쟁 중 평소 알고 또 믿고 지내던 이들이 서로 밀고하고 죽이고 하는 걸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전쟁이 남긴 비극이다.

아버지의 생활철학은 ‘안전하게 사는 것’인 듯하다. 어떻게든 복잡한 일에는 끼어들지 않았다. “아무하고나 사귀지도 않는다. 불확실한 건 건드리지 않는다. 공짜는 사고의 지름길이다. 이것이 살아남는 길이다. 내가 살아남아야 처자식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식이다. 전후 그 가난했던 시절과 부정부패가 일상화됐던 때 돈봉투 한 번 가져오는 법도 없었다. 처자식 잘 먹이고 입히고 싶은 마음이야 있었겠지만 돈에는 정말 엄격했다.

내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어느 정도 벗어던진 건 군 입대가 계기가 됐다. 촌놈이 공부를 열심히 해 고려대에 입학했을 때도 그저 빙긋이 웃기만 하던 분이 공군장교시험에 합격하고 소위로 임관하자 얼굴빛이 달라졌다. ‘드디어 우리 집안에 국군장교가 나타났구먼. 장하다!’ 마치 집안에 장군이라도 탄생한 듯 기뻐하셨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의 삶 속에 6ㆍ25가 준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만나면 늘 시사문제로 혈압을 올리시곤 했는데 다른 형제는 아버지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나는 늘 아버지 편이었다. 아버지가 원하는 건 토론에서 논리적으로 이기는 게 아니었다. 단지 심리적 불안감을 털어내려는 것이었는데 나는 늘 아버지 말씀을 들어주고 박자까지 맞춰줬기 때문에 나와의 대화 때는 늘 신바람이 났었다.

나도 아버지의 견해가 다 맞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마음속 깊이 남아 있는 심리적 에너지를 어느 정도 이해했기 때문에 절대로 반박의견을 내지 않는다. 효도란 뭔가.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 이것이 가장 간결한 효도 개념이다. 내가 효도하는 길은 마음껏 터놓고 얘기할 친구도 없는 아버지가 열변을 토하게 도와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막내아들만 만나면 말이 많아진다.

내가 아들에게 친구처럼 격의 없이 대하는 건 내 마음속에 어린 시절의 아버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들이 내 나이가 되면 아빠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질까.

글/ 윤은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부총장. 경영학 박사. 한국생산성학회 부회장. 공군대학 명예교수 △저서: <時테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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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