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500호 (2005년 07월 04일)

교육ㆍ의료ㆍ부동산의 발상전환

기사입력 2006.09.04 오후 12:01

소비가 과연 합리적인가를 논의하다 보면 베블런 효과라는 이슈가 등장한다. 이는 경제학자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이라는 저서에서 부유층의 소비가 상당부분 남들에게 과시를 하기 위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언급한 데서 등장한 개념이다.

예를 들어 자신은 평범하게 치장을 하면서 부인은 아주 화려하게 치장하도록 하거나 하인들에게 좋은 옷을 입혀서 시중을 들게 하는 등 당시 부유층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부분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소비가 합리적인가’란 물음에 대한 대답은 그리 간단치 않다. 만일 남들의 반응이나 평가가 자신의 효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고려한다면 이는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자신의 만족이 타인의 평가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면 과시하듯 소비를 하는 것이 비합리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사실 여러가지 형태의 소비 중에서는 남들의 평가나 부러워하는 정도가 중요한 척도가 되는 영역이 상당부분 존재한다. 집, 차, 옷 등이 바로 그런 편에 속한다. 본인이 살고 운전하고 입고 다니니 본인 취향대로만 하면 그뿐이지만 형편이 나아질수록 남들이 좋다고 인정해 주는 지역에 있는 집, 겉으로 보기에 멋있는 외제차, 최신 패션을 따라 디자인된 옷을 찾는 것이 이러한 과시성 소비의 산물이다.

최근 부동산가격 문제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서울 강남지역이 대표적인 예다. 교통혼잡도 심하고 유흥가가 지나치게 발달하는 등 부정적 요소도 많지만 수준 있는 교육과 의료서비스 등이 제공되고 살기가 편하다는 면에서 이 지역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게다가 대통령도 강남지역을 명품의 대열에 오르게 하는 데 일조를 했다. ‘강남사람들과 차 마시고 밥 먹으면서 나온 정책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식의 대통령 발언은 듣기에 따라서는 부정적 요소를 갖고 있지만 이러한 언급이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고 시간이 지나면서 강남에 대한 묘한 동경의식 같은 것이 창출되도록 하는 데 일조를 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고 한 이후 검사들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제고됐던 모습과 크게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최근 웰빙과 명품 바람이 불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소득이 전반적으로 증가하면서 웬만큼 살 만하게 돼 나타난 현상이다. 웰빙과 명품이 다른 말로 무엇인가? 사치와 사치품이 아닌가?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가 늘어나는 재화가 사치품, 명품이다. 이렇게 보면 그 숫자가 2만여명에 달하면서 계속 늘어나고 있는 기러기아빠들, 외국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출국하는 1만여명의 환자들, 그리고 강남지역의 중대형 아파트가 비싸도 사겠다는 많은 사람들은 바로 교육ㆍ의료ㆍ주거에서 명품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는데 공급은 제대로 되지 않는 수급상의 심각한 불일치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해석할 수 있다. 국내 교육과 의료서비스의 공급이 시원찮으니 아예 해외로 나가버리는 것이고, 강남에 살면 편리하기도 하고 좋은 데 산다는 소리를 들으니 이왕이면 강남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보면 강남지역 부동산에 대한 수요는 베블런 효과와 명품 효과가 합쳐져서 나타나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수요를 억누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제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명품에 대한 수요가 있으면 이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공급채널을 마련, 이러한 수요가 충족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말로는 개혁과 혁신을 부르짖으면서 왜 30년씩이나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는 평준화 정책을 고집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낳는 건강보험공단의 독점체제를 그대로 두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강북지역을 획기적으로 개발하는 것도 좋고 강남지역 재개발을 용이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좋은 데 산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명품지역’을 강남말고도 한두 곳만 개발하면 지나친 쏠림현상을 막고 합리적인 부동산가격을 유도해낼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의 수요 억제는 한계가 있다. 교육ㆍ의료ㆍ부동산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윤창현

명지대학교 경영무역학부 교수

chyun@mju.ac.kr

약력 : 1960년생. 79년 대전고 졸업. 84년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86년 경제학과 졸업. 93년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국제금융). 93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95년 명지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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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