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를 중심으로 급변하는 통신시장에 맞춰 사업모델과 기술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도태할 수밖에 없다.’통신업계에 거대한 바람이 불고 있다. 통신 네트워크가 IP(Internet Protocol)를 기반으로 재구축되면서 이에 맞는 사업모델 발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IP망은 기존의 네트워크에 비해 비용절감 효과가 큰데다 동영상, 데이터통신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접목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IP망으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이에 따라 기존의 기간통신사업자는 물론 인터넷포털, 단말기제조업체, 장비업체 등 관련업계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특히 인터넷전화(VoIP)와 인터넷방송(IPTV)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고 있다. ‘황금어장’으로 불릴 정도로 전망이 좋기 때문이다.지난 6월 말 정보통신부는 ‘070 인터넷전화사업자’가 KT, 하나로텔레콤, 데이콤 등 7개의 기간통신사업자를 포함해 모두 120여개사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하나의 사업에 이렇게 많은 사업자가 몰리기는 매우 드문 일이다. 시장전망이 밝은데다 진입장벽도 낮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다.전문가들은 인터넷전화가 기존 유선전화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초고속인터넷 가입자가 1,300만명에 달해 인터넷전화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그야말로 ‘삽시간’에 시장이 확산될 것이라고 관측한다.한국IDC는 지난해 1,085억원이던 국내 인터넷전화시장은 2006년에 3,682억원을 돌파하고 2008년에는 8,083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년마다 2배 이상씩 고속성장을 한다는 것. 반면 일반전화시장은 매년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조9,513억원에서 2006년 6조4,208억원으로 내려앉고 2008년에는 5조6,723억원으로 6조원대가 무너질 전망이다. 한국IDC의 하기석 책임연구원은 “전세계적으로 네트워크가 IP 기반으로 옮아가고 있다”며 “시점상의 문제가 있겠지만 결국 기존 전화는 인터넷전화에 완전히 자리를 내줄 것”이라고 내다봤다.인터넷전화가 기존 통신시장을 재편할 것이란 예상은 전혀 새롭지 않은 전망이다.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전화를 사용해 왔다. 인터넷이 연결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전화를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차세대 인터넷 킬러애플리케이션’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통화품질이 떨어지고 전화를 걸 수 있었을 뿐 받을 수 없는 기술적 한계가 있는데다 서비스가 유료화되면서 이용자가 급감, 실패한 사업모델로 치부되기도 했다.하지만 IT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과거 인터넷전화의 모든 문제와 한계를 단시간에 해결했다. IP에 기반한 네트워크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인터넷의 속도가 전에 없이 빨라져 통화품질은 유선전화에 버금갈 정도가 됐다. 또 정보통신부는 지난해 인터넷전화에 070식별번호를 부여해 이제는 전화를 받을 수도 있게 됐다.서비스의 종류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음성통화는 기본 중의 기본일 뿐이며 화상통화, 데이터통신도 할 수 있다. 인터넷망이 ‘올IP’(All-IP)화하면서 다양한 서비스를 위한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화상통화를 할 수도 있고 받지 못한 음성메시지는 e메일로 자동 전송돼 확인할 수도 있다. 여기에 휴대인터넷, 홈네트워크 등 차세대 IT서비스가 결합하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전망이다.치열한 가격경쟁 ‘불 보듯’가격이 저렴한 것도 관심거리. 일반적으로 인터넷전화는 기존의 유선전화에 비해 가격이 월등히 저렴하다. 인터넷망을 이용하므로 시내통화와 시외전화 사이의 요금 차이도 없다. 최근 기업들이 콜센터를 인터넷전화에 기반한 시스템인 IP컨택센터로 바꿔나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로 교보생명의 경우 2003년 11월 IP컨택센터를 구축한 후 월 1,400만원이 소요되던 네트워크 비용이 600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이에 따라 구축 2년 만에 투자비용을 모두 상쇄하고 흑자구조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구름 한 점 없이 맑게만 보이는 시장에 관련업체들이 출사표를 던지는 것은 당연지사. 이미 120여개의 업체가 진출을 선언했다. KT, 하나로텔레콤, 데이콤 등 기존의 인터넷사업자들은 물론 삼성네트웍스, 애니유저넷 등 별정통신사업자에 케이블TV업체(SO)들도 칼을 빼들었다. 특히 SO들은 인터넷전화사업을 위한 별도법인을 설립하고 인터넷, 방송, 전화를 통합한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를 제공, 고객을 끌어모을 방침이다.가장 적극적인 곳은 하나로텔레콤이다. 기존 유선전화시장에서는 시내전화시장의 94%를 점유하고 있는 KT에 밀려 열세를 면치 못했지만 인터넷전화에서만은 KT를 앞서겠다는 각오다. 이 시장에서만은 KT보다 업력이 길고 노하우도 풍부하다는 주장이다.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26만명의 가입자를 확보, 하나로텔레콤 전체 가정전화 가입자(114만명)의 22.4%가 인터넷전화 가입자다. 시장이 안정화되는 2007년 시장점유율 30% 확보를 목표로 삼고 있다.반면 국내 최대 통신업체인 KT는 다소 소극적인 모습이다. 오는 8월부터 ‘올업프라임’이라는 인터넷 화상전화 시범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지만 다른 서비스는 시장상황을 지켜보면서 진행할 계획이다. 기존 유선전화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 특화시장을 대상으로 부가서비스 형태로 사업을 진행해 새로운 매출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KT의 경우 유선전화 관련 매출이 전체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기존 전화시장을 잠식할 것이 분명한 인터넷전화사업에 섣불리 드라이브를 걸 처지가 아닌 것으로 풀이된다”며 “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면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겠느냐”고 말했다.모바일 인터넷전화시장도 불이 붙고 있다. 말 그대로 이동하면서 인터넷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무선랜 기술과 IP 사설교환기(IP PBX)를 활용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일반소비자보다 먼저 인터넷전화를 활용하고 있던 기업들이 적극적이다.장비업체들도 신이 났다. 새로운 기반의 서비스인 만큼 장비수요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2003년 293억원이던 시장규모가 연평균 45%씩 성장해 2008년에는 1,875억원에 이를 전망이라고 한국IDC는 전망하고 있다.‘골드러시’를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업체들이 뛰어들고 있지만 생존하는 기업은 소수에 그칠 전망이다. 특히 가격 외에 별다른 경쟁력이 없는 별정통신사업자들은 ‘염가공세’를 펼 것이 확실시되지만 기간통신사업자의 망을 임대하는 사업구조상 결국 별정통신사업자들의 상당수가 도태될 것으로 관계자들은 점친다. 하기석 한국IDC 책임연구원은 “인터넷전화는 기간통신사업자에게 망만 임대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사업”이라며 “결국 기간통신사업자의 견제에 밀려 별정통신사업자들은 퇴출되고 기간통신사업자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방송의 새로운 지평, IPTV인터넷방송이라 불리는 IPTV는 쉽게 말해 초고속인터넷망을 통해 TV로 방송을 볼 수 있는 서비스다. 방송을 본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방송과 다른 점은 없지만 기존의 TV가 할 수 없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보고 싶을 때 골라 볼 수 있는 주문형비디오(VOD)는 물론이고 홈네트워크 서비스와 접목될 가능성이 크다. 또 TV를 통한 전자상거래(T-Commerce), e러닝, 맞춤형 TV 포털 등 다양한 개인 서비스도 등장할 전망이다. 전화, DVD, 인터넷, TV, DVR 등 가정 내의 모든 AV시스템이 IPTV로 통합될 가능성도 점쳐진다.IPTV는 방송과 통신 융합시대의 중요한 서비스로 주목받고 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이 89.8%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이 기대되는 사업이다. 2000년 1만명에 불과하던 가입자가 2008년에는 2,000만명을 상회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SBC커뮤니케이션즈, 프랑스의 프랑스텔레콤, 영국의 BT, 야후재팬의 BB케이블 등 전세계 211개의 사업자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등 열기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시장의 전망도 매우 밝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서비스가 시작된다면 2009년에는 IPTV 가입자가 2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초고속인터넷망이 없었다면 IPTV는 상상할 수도 없는 서비스다. 화면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위해서는 인터넷 전송속도가 충분히 빨라야 하기 때문이다. 전송속도가 1Mbps 정도이던 초고속인터넷이 최근에는 100Mbps까지 향상돼 끊김 없는 동영상 전송이 가능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20Mbps면 HD급 동영상을 재생하는 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향후 정보통신부의 광대역통합망(BcN)이 구축되면 전송속도가 이보다 더 빨라질 전망이어서 IPTV를 위한 인프라에는 문제가 없는 상태다.국내시장에서 선수를 친 곳은 역시 KT와 하나로텔레콤 등 통신사업자들이다. 포화상태에 이른 인터넷시장을 돌파할 수 있는 매출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미 갖춰진 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비용부담도 많지 않아 일석이조다. 이영수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통신사업의 경우 제공하는 부가서비스가 많을수록 가입자의 유치와 이탈방치 효과가 높다”며 “사업 초기에는 투자비용 탓에 수익을 내기 어렵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높은 수익성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시장전망이 매우 밝고 사업자들이 적극적으로 진출을 모색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IPTV가 활성화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IPTV를 방송으로 볼 것인지, 통신으로 볼 것인지를 두고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통부는 통신사업자의 부가서비스로 봐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어찌됐든 방송이라는 것이 방송위원회의 주장이다.양 기관의 힘겨루기가 지속되면서 업계의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하나로텔레콤과 다음커뮤니케이션은 본격적인 서비스에 앞서 중간단계인 TV포털서비스로 방향을 선회했다. 하나로텔레콤은 지난 5월30일 디지털TV업체인 이레전자와 제휴, TV포털서비스인 ‘하나포스 TV’ 사업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하나로텔레콤의 인터넷망을 통해 주문형비디오, 음악, 뉴스, 생활정보 등 콘텐츠를 TV를 통해 볼 수 있게 하겠다는 것. 하나로텔레콤은 지상파 및 위성방송, TV로 상거래를 할 수 있는 T-커머스, 홈네트워크 등으로 서비스 범위를 넓혀나갈 방침이다.지난해부터 초고속인터넷에 기반한 홈네트워크 서비스인 ‘홈엔’을 서비스하며 IPTV 진출에 박차를 가하던 KT는 구체적인 사업결정을 미루고 정부의 입장정리를 기다리고 있다. KT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입장이 정리돼야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짤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사업일정, 서비스 내용 등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KT도 조만간 하나로텔레콤처럼 ‘TV포털’서비스를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지만 공식적인 발표는 전혀 없는 상태다.정부의 입장정리가 지연되는 데 업계의 불만이 없을 수 없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통신산업이 망 중심으로 진행돼 선진국에 비해 콘텐츠가 부족하다”며 “통신사업자가 통방 융합서비스를 제공하면 콘텐츠 경쟁력이 제고되는 효과가 있으므로 IPTV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고 규제는 최소화하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제안했다.업계의 볼멘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지만 최근 양 기관이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노력을 가시화하고 있어 희망이 보인다. 지난 6월 양 기관은 IPTV 조기사업화를 위한 실무협의기구를 두기로 합의하고 합의 도출에 속도를 붙이기로 했다. 또 방송위원회는 기존 유선방송부와 위성방송부를 뉴미디어부로 통합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IPTV에 대한 업무를 관장하기로 했다.이에 따라 그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던 IPTV에 대한 논란이 종지부를 찍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과연 조기에 양 기관이 의미 있는 결론을 낼 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대세다. 이영수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단기적으로 유효한 합의에 도달하기 쉽지 않을 것”이지만 “세계적인 추세가 통방융합에 따라 관련 정책기관들도 통합되고 있어 우리나라도 이 같은 과정을 밟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