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선정된 한국 100대 기업은 국내외 경기변화와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 업종별 명암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쇠퇴 업종과 뜨는 업종이 엇갈리는 것은 물론 기업별 경영성과도 고스란히 순위에 반영돼 대한민국 경제의 현주소를 가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성공해 대약진을 이룬 기업이 있는가 하면 국내외 영업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해 순위가 대폭 밀린 기업도 있다. 일부 업종은 상위기업 순위가 극명하게 바뀌면서 업계 주도권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2005년 한국 100대 기업 선정결과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금융 및 보험업종의 약진이다. 한동안 신용카드부문의 부실, 금융업 재편 등으로 실적부진이 역력했지만 구조조정과 긴축경영, 수익중심 경영에 힘입어 다시 세를 확장하고 있는 모습이 뚜렷하다.제조업 중에서 정유사의 도약이 눈부시다. SK주식회사의 경우 전년에 비해 무려 57계단이 상승, 단숨에 6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동안 10위권 진입을 넘보기만 했던 S-Oil은 10위에 올라 주위를 놀라게 했다.이밖에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운수업의 약진과 제조업의 부진도 올해 100대 기업에서 읽을 수 있는 뚜렷한 변화상이다. 운수업의 경우 사스, 이라크전쟁 등으로 여행객이 급감했던 충격에서 벗어나 전년과 확연히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이에 따라 2003년 100대 기업에서는 한진해운 1개사만이 1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렸지만 올해는 5개사로 크게 늘었다. 이뿐 아니라 2개 항공사를 비롯해 현대상선, 대한해운이 실적호전으로 순위가 껑충 뛰었다.한때 약진에 약진을 거듭했던 통신업은 ‘4강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2004년 5대 통신업종으로 꼽힌 하나로통신과 2003년 5대 통신업종에 이름을 올린 데이콤이 사라지고 올해는 SK텔레콤, KT, KTF, LG텔레콤의 구도가 자리를 잡았다.제조업 =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LG전자, 기아자동차가 잡고 있던 제조업 톱5 구도에 일대 변화가 생겼다. 기아차 자리에 SK주식회사가 파고들면서 적잖은 순위변동을 불러왔기 때문이다.SK주식회사는 2004년 100대 기업 63위에서 올해 6위로 순위가 껑충 뛰어올랐다. 2003년 계열사인 SK네트웍스의 분식회계 파문에 상처를 입은데다 소버린의 경영권 공격으로 험난한 시기를 보냈지만 단숨에 위기를 딛고 제 페이스를 찾은 것이다.급상승의 배경은 당기순이익 증가 등 재무제표의 정상화에서 찾을 수 있다. SK주식회사의 2003년 매출액은 13조7,886억원으로 우수했지만 당기순이익은 152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는 매출액 17조4,061억원에 1조6,40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올해도 자원개발 강화, 중국시장 공략 등을 통해 10조원대 영업이익을 달성, 성장세를 이어가겠다는 포부다.하지만 제조업 전체 분위기는 약세 혹은 침체가 감지된다. 100대 기업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파워는 여전하지만 59개사를 유지하던 데서 57개사로 선정 기업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기업들의 실적이 하락하면서 후순위로 처진 기업들도 적잖다. 대우조선해양,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종합기계), 효성,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은 전년에 비해 순위가 10계단 안팎 하락한 기업으로 꼽힌다. 제조업의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셈이다.건설업 = 건설업은 외형적으로 큰 변화가 없다. 2002년부터 100대 기업 순위에 6개사를 포함시키면서 꾸준한 볼륨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특징적인 것은 대림산업이 대우건설, 현대건설, GS건설, 현대산업개발 등을 제치고 업종 1위 기업으로 등극했다는 것이다. 2위인 대우건설과는 1개 순위 차이에 불과하지만 대림산업의 약진이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는 평이다.이창근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대림산업이 업종순위 1위에 오른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지적하고 “그간 분야별 구조조정을 성공으로 이끌어 실적이 크게 호전됐고 이에 따라 재무제표도 건실해졌다”고 평가했다.실제로 대림산업은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가장 모범적인 구조조정을 전개한 기업으로 손꼽힌다. 그 결과 97년 1조7,000억원에 달하던 순차입금을 거의 떨어냈으며 안정적인 매출구조와 탄탄한 재무구조를 확보했다. 특히 주주이익 배려정책이 돋보여 애널리스트 단골 추천종목으로 떠오르기도 했다.한편 대부분의 건설업체가 올해 전체순위에서는 등수가 하락, 건설업 체질변화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업종 1위인 대림산업조차 지난해에 비해 5계단 하락한 30위에 랭크됐으며 현대산업개발은 8계단 하락한 40위를 기록했다. 반면 현대건설은 지난해 42위에서 올해 34위로 점프, 유동성 압박에서 벗어나 꾸준히 도약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도소매업 = 유통 강자들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도소매업종에서도 이변이 생겼다. 지난해 워크아웃 기업으로 조사대상에서 제외됐던 SK네트웍스가 올해 조사에서는 단숨에 업종순위 1위에 등극했기 때문이다. 신세계, 삼성물산 등을 제친데다 신규진입 성적이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이는 SK글로벌 분식회계 등으로 시련기를 거쳐 SK네트웍스로 거듭난 이후 정상화 작업을 추진해 오면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실제로 올 초 한국신용평가가 실시한 기업신용평가에서 SK네트웍스는 C등급에서 BB+를 획득해 1년 만에 무려 8계단을 뛰어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게다가 우량기업들도 달성하기 힘든 ‘6분기 연속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했고 재무제표도 급속도로 건실해지고 있다. 지난해 13조6,137억원의 매출에 경상이익 4,212억원, 순이익 4,606억원을 달성해 매출액순위는 9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경상이익은 전년에 비해 무려 466%가 증가하는 실적을 올렸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자구노력, 고수익 사업구조, 공격적인 마케팅이 어우러진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한편 도소매업 상위기업 가운데 SK네트웍스와 대우인터내셔널을 제외하고는 순위가 하락하는 현상을 보였다. 지난해 12위에 랭크됐던 신세계는 7계단 떨어졌고 삼성물산은 10계단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금융 및 보험업 = 올해 100대 기업에서 가장 약진한 업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금융보험업은 2003년 100대 기업에 21개사가 선정돼 막강 파워를 과시하다 2004년에는 15개로 대폭 줄어들었다. 하지만 올해 다시 17개사로 늘어나 전반적인 실적호전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국민은행, 외환은행, 제일은행은 순위가 급상승한 기업으로 손꼽힐 만큼 돋보인다.국민은행의 경우 지난해 3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가 올해 9위에 올라 막강 파워를 과시했다. 지난해 조사에서 국민은행은 당기순이익이 -7,000억원대인 점이 감안돼 ‘대표은행’ 자리를 빼앗겼지만 올해는 5,553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해 슈퍼뱅크 자존심을 되찾았다. 신용카드부문의 부실과 가계연체율 상승으로 인해 대손충당금 적립규모가 대폭 늘어났던 데서 상황이 긍정적으로 반전된 것이다.이뿐 아니라 외환은행과 제일은행, 우리투자증권도 300계단 이상 순위가 뛰어올라 뚜렷한 호조세를 보여줬다. 또 우리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동부화재, 현대해상 등도 전년에 비해 순위가 올랐다.이 같은 금융보험업종의 약진은 다른 업종과는 대비를 이루는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제조업과 도소매업 등이 퇴보 또는 침체를 겪고 있는 데 반해 시련을 딛고 재도약에 나선 모습이다. 내년에 다시 100대 기업 점유율 20%를 넘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