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은 새 부대에….’돈 굴리는 비법이 달라졌다. 과거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예전처럼 돈을 굴렸다간 본전조차 건지기 힘든 시대가 열린 셈이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안전자산의 경제학이 힘을 발휘했었다. 은행의 ‘이자 따먹기’에만 의지해도 인생 2막에 큰 걸림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게 이제는 달라졌다. 리스크가 따르는 주식ㆍ부동산투자가 불가피해졌다. 김대중 교보증권 자산관리영업지원부 부장은 “최근 재테크 현장은 적잖은 변화를 겪었다”며 “경제적 자유를 획득하자면 적극적으로 돈의 흐름(저축→투자)에 올라타는 게 좋다”고 말했다. 재테크 패러다임 변화는 일시적인 붐이라기보다 유력한 트렌드로 정착된 느낌이다. 시간이 갈수록 무게중심도 이쪽으로 실리는 분위기다.‘게임의 법칙’이 바뀐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한다. 일단 저금리 기조의 정착이다. 현재 시중금리는 지루한 바닥권에 머물고 있다. 사상 최저치에서 약간 벗어나긴 했지만 예전처럼 두 자릿수 금리를 기대하긴 어렵다. 물가상승률까지 감안하면 예금금리는 ‘마이너스’ 수준이다. 문제는 저금리 기조가 일시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경제성장률(GDP) 기울기가 완만해져서다. 성장엔진 부재와 경제 성숙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다. IMF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10%를 웃돌던 잠재성장률이 최근에는 ±5%대까지 추락했다. 상황이 이럴진대 평균수명은 늘고 퇴직연령은 짧아지는 추세다. 김부장은 “돈은 없는데 돈 쓸 시간은 더 길어졌다”고 평가했다. 샐러리맨 월급만으로는 ‘답이 없다’는 얘기다.온 국민이 재테크에 열광하는 건 이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재테크 욕구는 투자자산의 부가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2000년 주식 붐과 최근의 부동산 광풍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빈부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참가 열기도 뜨겁다. ‘세 살 먹은 애까지 재테크한다’는 조소가 일만큼 재테크는 일반화됐다. 경험 있고 총알(자본) 많은 ‘그들만의 리그’였던 재테크가 요즘은 ‘불특정다수의 전국대회’로 확산됐다. 수요는 곧 공급을 낳는 법. 재테크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새로운 시장을 창조했다. 없던 시장이 열렸다는 점에선 ‘블루오션’이 따로 없다. 틈새시장까지 속속 생겨난다. 밑에서의 작은 변화는 은행ㆍ증권ㆍ보험 등 대형 금융기관의 생존전략까지 쥐락펴락한다. 전에 없던 치열한 고객유치전이 펼쳐지는 등 고객 ‘입맛 맞추기’에 비상이 걸렸다.재테크시장의 변화 스토리는 입체적이다. 다양한 인물들이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변화의 흐름을 주도한다. 가령 재테크도 이제는 가르치고 배우는 시대가 개막했다. 재테크전문가가 부쩍 늘어난데다 강좌를 들으려는 수강생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백화점 교양강좌는 물론 지상파 채널에서 ‘재테크 특강’은 인기 프로그램으로 손꼽힌다. 대학 강의에는 ‘부자학’까지 등장했다. 재테크 관련 서적도 급증했다. 고작해야 실험용 출판에 불과했던 재테크서적이 지금은 경제ㆍ경영부문의 메인 테마로 떠올랐다. 베스트셀러 상위권의 단골손님 중 상당수도 재테크서적이다. 돈 흐름과 패러다임의 변화를 반영해 재테크서적의 주제도 ‘아파트→상가→땅→주식’ 등의 순서로 옮아간다. 연말연시면 세테크 책도 인기다. 출판사 관계자들 사이에선 “재테크 책 안 내면 굶어죽기 딱 좋다”는 말까지 떠돈다.풀뿌리 정보공유에서 비롯된 재테크동호회의 등장은 사회 트렌드로까지 인식된다.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는 유력한 세력집단으로까지 성장했다. 일례로 포털사이트 다음에 ‘재테크’란 키워드로 동호회를 찾으면 무려 5,518개의 커뮤니티가 검색된다. ‘짠돌이’(42만7,669명)와 ‘맞벌이부부 10년 10억 모으기’(36만1,457명)가 대표적인 인기 동호회다. 오프라인 동호회도 급증세다. 직장ㆍ동문ㆍ지역 등을 연결고리로 해 시너지 극대화를 목표로 활동 중이다. 공동투자 패턴도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다. 소규모 자금의 한계를 딛고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서다. 아직은 고가물건이 많은 부동산에 한정되지만 직장인들 사이에선 공동으로 주식펀드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종자돈 마련을 위한 신풍속도도 펼쳐진다. 대표적인 게 ‘투잡스족’의 출현이다. 1인2역을 통해 쌈짓돈을 만들기 위해서다.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되면서 주말 아르바이트 부대도 증가세다. 복리효과를 누리자면 일찌감치 목돈을 벌어둬야 한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이는 특히 젊은층에서 도드라진다. 여가시간을 재테크에 배치하는 것도 트렌드다. 주말 부동산 현지답사 증가가 그 결과물이다. 요즘 부동산투어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경기도, 충청도 등 인기지역에서 답사팀을 만나는 건 일상다반사다. 여유시간을 보내며 정보도 얻는 일석이조 모델하우스 방문도 많아졌다. 미혼남녀들의 데이트장소로까지 비유된다. 아예 전업투자자로 출사표를 던진 재테커(財+techer)도 늘어났다. 잘만 하면 투자수익만으로 근로소득을 능가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는 사상 초유의 실업난도 일정부분 기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