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는 늪에 빠졌다. 일본식 장기불황이 남의 얘기가 아니다.’일본과 한국의 상황이 결코 같지 않지만 최근의 경제상황은 이 우울한 진단에 눈길을 돌리게 한다. 내수침체, 양극화, 투자부진, 부동산 거품 등 최근 등장한 경제 신조어들만 봐도 어디 하나 희망적인 것이 없다. 실제로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을 비롯한 국가기관과 민간연구소들이 올해 예상 경제성장률을 하향조정하는 등 비관적인 시그널 일색이다.더욱이 경제주체들간의 의견대립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기업은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부는 기업의 요구가 과도하다고 맞받아친다.진정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과연 어디서 한국경제 재도약의 실마리를 찾고 있을까. 경제전문가들이 내놓은 ‘해법’은 현재 한국경제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지나친 분배주의에서 탈피해 시장경제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문이 깔려 있다. 시장의 원리를 고려한 정책을 마련하고 이를 강하게 실천해야 한다는 얘기다.신성장동력을 찾아라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IT산업 외에 성장을 견인할 동력이 부족하다며 중ㆍ저 경제성장의 가능성이 있다는 발표를 했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신산업을 발굴, 육성하지 않고는 한국경제의 미래를 말할 수 없다는 의미다.성장동력 마련이 위기극복의 첩경이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IT산업만 해도 외환위기 극복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 다음이 없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참여정부는 국민의 정부가 발굴, 육성한 IT산업에 매몰돼 있을 뿐 새로운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성장동력을 찾아내야 할 일차적인 책임은 기업에 있지만 정부도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의미다.기존 산업들의 업그레이드도 절실하다. 자동차, 반도체, 철강, 조선 등 한국의 주력산업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한 번 더 수준을 높여 경쟁국의 추격을 따돌려야 한다. 기술개발이 필요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기술개발에만 매몰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술은 생산성 향상과 결합됐을 때 비로소 제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를 위해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이 이뤄져야 한다. 전통산업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위험요인이 있더라도 고성장산업에 투자를 하고, 한계기업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시장원리에 충실한 자원배분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부동산, 공공기관 등 자원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와 배분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자원배분은 시장에 기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기업 투자를 촉진하라기업의 투자촉진은 현재의 경제문제를 풀어나갈 유력한 ‘무기’로 지목됐다. 투자는 기업의 생산성과 매출의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고용창출과 내수경제의 활력으로 연결되는 등 경제 전반에 걸친 파급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의 투자는 갈수록 활기를 잃고 있다. 외환위기 전에 비해 73%에 불과한 실정이다.기업의 투자위축은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우선 중국의 급부상을 들 수 있다. 언제 중국과 경쟁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국내에 투자를 감행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 정책의 불확실성, 기업에 대한 규제, 유가나 환율 등 대외변수의 불확실성 등도 기업이 투자를 꺼리는 이유로 꼽힌다.투자를 촉진시킬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완화하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 투자가 촉진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대기업의 경우 투자를 위한 여유자금이 충분하므로 세제혜택이나 금융지원을 따로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시장친화적이고 친기업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김용열 홍익대 교수는 “정부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투자를 촉진시킬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며 “과거에 비해 기업의 투명성이 월등히 좋아진 만큼 투명성 향상에 성과가 있는 기업에 한해 규제 등 기존 정책 기조를 풀어주는 등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정책의 일관성을 확보하라정부의 정책이 갈팡질팡하면 경제주체들은 몸을 사리기 마련이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마당에 행동에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의 정책은 갈지(之)자 행보 투성이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부동산 대책이 대표적이다. 건교부, 재경부, 국세청, 청와대 등 관련기관의 대책이 봇물 터지듯이 발표됐지만 장기적이고도 명확한 정책안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정부의 정책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져 나온 것은 정책결정이 개별부처 단위로 이뤄진 탓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따라서 정부가 정책 결정 시스템을 개선하면 얼마든지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임기가 반환점을 돈 상태에서 시스템의 대폭적인 혁신은 어렵겠지만 점검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가능하다. 기존 경제관료들의 역할을 대폭 확대해 학자 위주 정책결정자들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도 시도해볼 만하다. 이상과 현실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내수시장을 진작시켜라내수침체의 고리도 끊어야 한다. 내수부진의 요인은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 우선 가계경제의 부실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신용불량의 위기에 몰린 소비주체들이 소비를 줄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소비부진은 중소기업의 침체로 이어졌다. 수출보다는 내수시장에 의지하는 중소기업의 매출이 줄어든 것. 그 결과 소비의 잠재력은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내수를 진작시킬 뾰족한 방법은 사실상 없다. 어느 한 부문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전반의 원인에 의해 발생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내수 촉진을 위한 전통적인 방법인 금리인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중소기업이 갑자기 호황으로 접어들 리도 없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비가 올 초부터 비록 아주 완만한 추세이긴 해도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한국개발연구원의 김준경 거시ㆍ금융경제연구부장은 “소비심리가 2년 연속 하락세에서 완만한 상승세로 반전됐다”며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따른 건설경기의 정도와 수출, 중국변수 등에 따라 추가 움직임이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양극화를 해소하라최근 한국경제의 특징을 대변하는 말이 양극화다. 수출은 잘되는데 내수는 꽁꽁 얼었고, 대기업은 엄청난 수익을 내지만 중소기업은 침체 일로이며, 상위 소득자의 소득은 더욱 증가한 반면, 하위 소득자의 소득은 내리막길이다. 양극화의 심화는 경기변동성을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성장 기반을 훼손시키는 등 역효과가 엄청나므로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하지만 방법이 마땅치 않다. 현 경제시스템상에서 양극화의 심화는 당연한 결과라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경제구조의 조정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견해까지 어느 것 하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결국 경제의 각 분야가 활력과 정상을 되찾아야 한다는 막연한 결론만이 있을 뿐이다. 획기적인 대안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