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급여형 → 확정기여형 세계적 추세 … 일본은 최근 대대적 수술

흔히 연금에는 3개의 기둥이 있다고 한다.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 순수한 개인연금, 그리고 근로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퇴직연금이 그것이다.OECD의 자료에 의하면 OECD 회원국의 2003년 GDP 대비 퇴직연금자산비율은 평균 61.2%다. 세계적으로 보면 주요 국가의 퇴직연금제도는 확정급여형(DB·Defined Benefit)에서 확정기여형(DC·Defined Contribution)로 움직여가는 커다란 흐름을 찾을 수 있다.국가에 따라서 구체적인 퇴직연금에 대한 정책은 차이가 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표1>과 같다. 우리나라도 올 12월부터 표의 ‘DBㆍ기타제도’에서 일본, 아일랜드, 스웨덴, 스위스가 있는 ‘DBㆍDC선택’으로 옮아가게 된다.먼저 미국의 경우 퇴직연금제도가 탄생한 나라다. 그 시초는 1875년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기업연금플랜을 들 수 있지만 현행의 퇴직연금제도가 기본적인 모습을 갖춘 것은 1940년대이다.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 중으로 미국에서는 전시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임금동결이 시행됐다. 그 반대급부로 많은 기업이 기업연금플랜을 도입하게 됐고 연방정부도 이를 적극 지원하게 된 것이 퇴직연금제도의 정착을 가져오게 됐다.<표1>에 나타나 있듯이 미국의 퇴직연금제도는 국가가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종업원간의 자발적인 제도로 운영되고 있고 국가는 일정한 기준을 만들어서 이를 지원하거나 안정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미국 퇴직연금제도의 커다란 변화 중 하나는 74년의 이른바 ‘에리사법’(ERISA)의 도입이었다. 이 법에 의해서 DB와 DC라는 제도의 분명한 형태가 만들어졌고 국가의 역할도 설정됐다. 퇴직연금제도는 관계자들의 복잡한 이해를 반영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이 법의 도입에는 10년 이상이 걸렸고 그 조문도 방대하다.유명한 401(k)도 이 에리사법의 401조 k항이다. 401(k)은 미국의 대표적인 DC제도로 DC제도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DB와 DC 이외에 자영업자와 기업연금이 없는 기업의 근로자들을 위한 제도로 개인퇴직계좌(IRA)가 있다. 이 개인퇴직계좌는 점점 더 그 범위가 넓어지고 다양해져 대부분의 국민이 가입 가능한 제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성격은 DC와 유사하다.지난 20년 동안 미국 퇴직연금시장의 변화를 살펴보면 점유율 면에서 DB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고 개인퇴직계좌가 2배 이상으로 성장했다. DB와 DC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DC의 가입자수가 84년에 DB의 가입자수를 넘어섰다.또한 자산잔고 기준으로 DC가 DB를 앞서기 시작한 것은 97년이었다. 2004년 OECD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퇴직연금 가입자수는 DC가 70%, DB가 30%를 차지한다.DC가 이렇게 약진하고 있는 것은 우선 기업에 DB에 적립해야 할 금액의 부족한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GM과 같은 대기업도 90년대 초반에 DB 적립 부족액이 100억달러가 넘는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신용평가가 하락하고 주가가 급락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외에도 서비스업이 늘고 전직이 활발해진 고용환경의 변화, DB의 운용비용이 높다는 점 등이 DB가 줄어들고 DC가 늘어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401(k)제도가 가지는 또 하나의 장점은 이 자금이 금융시장으로 투자가 돼 시장의 활성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80년대 401(k)이 자리를 잡은 시점과 미국의 주식시장이 안정적인 성장을 계속해 온 시기가 겹치는 것이 우연은 아니라는 것이다.일본은 60년대부터 퇴직연금제도를 운용해 왔다. 도입시기부터 약 40년간 퇴직연금은 DB를 의미했다. 하지만 2000년을 전후해 일본의 퇴직연금제도는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소자ㆍ고령화’(少子ㆍ高齡化: 저출산 고령화를 일컫는 일본식 용어)라는 말에서 잘 나타나듯이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의 변화가 공적연금이건 퇴직연금이건 일본의 연금구조를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만들었다.일본의 연금구조의 특징 중 하나는 현재의 세대가 노령세대를 부양하는 세대간의 부양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경제활동인구의 수가 충분하고 경제가 성장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경제활동인구가 줄거나 노령인구가 늘어나고 경제가 저성장을 하게 되면 바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 같은 이유로 일본의 공적연금인 국민연금도 2000년대에 들어서 이미 두 차례나 개정을 하게 됐다.일본, 미래세대 부담 줄이는 데 초점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경제가 고성장을 지속할 때는 세대간 부양 형식의 퇴직연금제도의 운영이 가능하지만 기업이 어려워질 때는 이것이 큰 부담이 된다.과거의 DB 중심의 퇴직연금제도에서는 ‘현재의 종업원들이 퇴직한 사람들의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일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많은 기업들이 퇴직연금을 지탱하지 못하게 돼 90년대 말에는 연금의 가입자수가 감소하는 현상이 발생했다.그 예를 들어보면 닛쇼이와이와 같은 회사에서는 2000년 10월에 연금 적립금 부족액이 550억엔에 이르렀다가 5개월 후에는 580억엔으로 더욱 늘어났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먼저 공적연금제도를 개정했다. 이어 공적연금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던 DB제도를 보다 더 순수한 기업연금(퇴직연금) 형태로 바꿨다. 아울러 ‘일본판 401(k)’이라고 불리는 DC제도를 도입하게 됐다.일본에서 DC는 특히나 생소한 제도다. 제도가 처음 도입된다는 것에서만 아니라 일본의 개인들은 주식투자와 같은 위험이 따르는 투자를 싫어하기로 유명하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미국과 같이 학교에서 열심히 투자와 관련된 내용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이런 일본의 상황에서 DC제도의 도입에는 많은 사전적인, 그리고 사후적인 노력이 따른다. 먼저 제도의 도입 전에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간 신규가입자에 대한 교육과 기업에 대한 컨설팅을 실시한다. 그 이유는 제도에 대해 종업원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특히 투자에 대한 충분한 사전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또한 새로운 제도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노사가 충분히 이해를 하고 동시에 오랜 시간 의견의 조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히타치제작소는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700여차례에 이르는 종업원교육을 실시했고 모 기업은 도입의 준비기간만 1년이 걸렸다.이렇게 힘든 길을 걷고 있지만 일본의 새로운 퇴직연금제도는 점차 자리를 잡고 있다. 일본의 후생연금기금연합회의 자료에 의하면 2005년 6월 말 현재 DC의 일본 명칭인 확정갹출연금은 기업형 기준으로 총 1,493건에 가입자수는 5월 말 기준 149만1,000명이 됐다.일본의 연금제도 개정은 ‘더 이상 미래의 세대에 부담을 안길 수가 없다는 것’이 중심이 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든 기업 차원에서든 젊은이가 노인을 부양한다는 고전적인 가치관에서 내 미래는 내가 준비해야 한다는 현실적으로 쓰라리지만 어쩔 수 없는 사회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기조가 깔려 있다. 이를 위해 일본은 숨가쁜 연금개혁을 실시하고 있다. 2000년 공적연금을 개정한 데 이어 2001년 일본판 401(k)을 실시했다. 2002년에는 DB제도를 개정한 확정급부연금법을 시행했고 2004년에는 공적연금을 개정했다.일본보다 더 빠른 출산율의 감소와 고령화사회로의 이행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명한 선택을 위해서 일본은 좋은 타산지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