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업계 ‘원더우먼’지난 10월1일 중국 베이징의 중심 장안로에는 산뜻한 인테리어의 음식점 하나가 문을 열었다. 따뜻한 두부 위에 갖가지 토핑을 올린 신개념 두부요리 브랜드 ‘두부다’가 중국에 상륙, 세계를 향한 첫 포문을 연 것이다. 두부를 주식처럼 먹는 중국인들에게 한국 토종 브랜드 ‘두부다’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갔다. 직장인들이 쉬는 휴일이었음에도 매장은 하루 종일 북적였다.하지만 지난 봄부터 베이징을 들락거리며 오픈을 준비해 온 유지영 나무르 이사(33)는 “대성공”이라는 주변의 축하인사에 감격할 틈이 없었다. 중국 고객들이 어떤 메뉴를 좋아하는지, 어떤 서비스가 부족한지 체크하느라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조차 직원들과 후속 경영전략을 논의했다. 일주일 동안 하루 2시간 눈을 붙이는 강행군에도 피곤함을 잊을 만큼 일에 매몰돼 있었다.“좋은 반응을 확인하고 돌아와 너무 기쁩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인 만큼 고삐를 더욱 잡아당겨야죠. 베이징 중심부 직장인들이 모두 좋아하는 곳으로 만드는 게 1차 목표입니다. 매출 추이를 지켜보면서 메뉴와 서비스를 조정하고….”일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이는 그를 주변 사람들은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톡톡 튀는 외식경영 컨설턴트’라고 부른다. 외식업 브랜드 메이커, 컨셉 디벨로퍼, 푸드 크리에이터 등 각기 다른 명칭으로 부르는 이도 많다. 함께 일을 해본 사람은 ‘일벌레’, ‘독종’, ‘아이디어 창고’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난 8년 동안 100여개 브랜드를 컨설팅 및 런칭하면서 자연스레 쌓인 이름들이다.분명한 것은, 그가 외식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두루 관통하는 흔치 않은 스페셜리스트라는 것이다. 푸드스타일리스트, 레스토랑 컨설턴트 등 외식업 중에서도 직종이 세분화되는 게 요즘 추세이지만, 어느 한 분야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즉각 실행에 옮겨 기획부터 타당성 분석, 상권분석 등을 거쳐 개점에 이르기까지 직접 챙긴다. 메뉴개발이나 시험조리, 브랜드 네이밍도 그의 몫이다. 경영도 예외가 아니다. 외식업에 관한 한 ‘전천후 원더우먼’인 셈이다.어머니가 절대미각과 음식 사랑 물려줘유이사의 포트폴리오는 화려하면서도 그만의 개성이 가득하다. ‘내 전처의 비밀 조리법’(My Ex-Wife’s Secret Recipe), ‘마녀들의 테이블’(Witch’s Table) 등 예사롭지 않은 이름과 메뉴, 맛으로 유명한 레스토랑들이 그의 작품이다. 대형 빌딩의 푸드코트, 내로라하는 상업시설의 컨셉 컨설팅 실적도 탄탄하다.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의 스타일리시한 푸드코트나 최근 오픈한 안국동 신영 서머셋팰리스의 상업시설 아이디어도 유이사의 머리에서 나왔다. 지난 2003년 임명관 사장과 함께 설립한 외식경영 컨설팅사 나무르 역시 ‘언젠가 토종음식으로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우리말 ‘나물’에서 이름을 따왔다.언제나 한 발 앞서 외식업 유행을 주도하는 ‘트렌드 세터’로 자타가 공인하는 그이지만, 뜻밖에도 뿌리는 ‘토종’에 닿아 있다. 유이사는 “외할머니,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음식에 대한 감각이 시대가 변하면서 외식경영 컨설팅으로 빛을 발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토속적인 입맛과 감성이 외식업에서 탁월한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다.전북 순창에서 전통 장류 기능인으로 유명세를 떨친 어머니 고수자 여사는 유이사에게 ‘절대미각’과 음식에 대한 사랑을 물려주었다. 음식문화의 위대함을 일깨운 이도 어머니였다. 그는 “어린시절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해주신 특별한 음식들로 혀가 호사를 누린 덕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말한다.그의 어머니는 작은 음식 하나도 그냥 만들어내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예컨대 흔치 않은 재료인 가죽나물로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부침개를 부쳐낸다든지, 봄날에 만개한 갖가지 꽃들로 눈부신 화전을 만들어내는 식이다.“밥상은 언제나 정갈했고 음식 하나하나는 작품이었어요. 어릴 때는 몰랐지만, 어머니의 솜씨를 보면서 저 역시 대물림을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곧 대물림이라는 생각에 자세를 가다듬곤 하지요.”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며 무용가와 뮤지컬배우의 꿈을 키우던 그가 음식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어쩌면 숙명이었다. 대학졸업 후 어머니가 운영하던 장류 제조업체가 기울면서 경영을 도운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아무것도 모르던 때였지만 두 팔을 걷어붙이고 뛴 덕에 짧은 시간에 경영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본격적인 외식경영 컨설팅의 길로 들어선 것은 두 번째 사업을 하면서부터다. 서울 평창동에서 베이글전문점을 운영하던 지인이 위탁경영을 맡아줄 것을 청했다. IMF 위기가 시작된 그때만 해도 베이글은 지금처럼 흔한 빵이 아니었다. 경기까지 나빠져 매출이 바닥을 헤매자 평소 알고 지내던 유이사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그는 우선 지역 특성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남녀노소 고객을 친구처럼 대하며 정을 쌓은 덕분에 쓰러져가던 ‘엠파이어 베이글’은 1년여 만에 평창동의 명소가 됐다. 죽은 점포 살리기 프로젝트가 대성공한 것은 물론 유이사에게는 새로운 도전의 발판이 됐다.세 번째 기회는 광화문에서 펼쳐졌다. ‘엠파이어 베이글’의 단골고객으로 유이사의 능력을 유심히 본 2명의 투자자가 공동사업을 제안한 게 계기였다. 샌드위치전문점 ‘위치스테이블’은 그렇게 탄생, 1년여 만에 광화문 직장인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높은 프리미엄을 받고 매각, 투자자에게 큰 이익을 돌려주기도 했다.여세를 몰아 레스토랑, 외식 프랜차이즈, 상가 컨설팅 등을 맡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에서부터 개점까지 총괄 컨설팅을 하거나 위탁경영을 맡는 등 다각도로 경험을 쌓았다. 나무르를 설립한 이후에도 현장 중심의 컨설팅을 계속했다. 이제 유이사의 컨설팅 서비스는 업계에서 ‘믿을 수 있는 상품’으로 정평이 났다. 뿐만 아니라 그가 선보인 외식아이템은 십중팔구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널리 히트했다.토종브랜드로 세계 평정하고파“외식업은 시행착오가 많은 분야입니다. 원하는 맛이 나올 때까지 수백번 새로 조리를 해야 하고, 고객이 원하는 바를 알 때까지 몇 번이고 서비스를 수정해야 하지요. 흔히 외식업을 쉽게 보는데, 큰 오산이에요.”유이사는 특히 요즘 주력하고 있는 ‘두부다’의 런칭을 준비하면서 외식업의 어려움을 새삼 느꼈다고 한다. 요즘도 매일 점포를 순회하며 경영을 돕는 가운데 하루 한끼 이상을 두부요리로 먹고 있다. 끊임없이 품질을 점검하고 더 나은 맛과 서비스를 찾아내기 위해서다.‘두부다’는 그가 야심차게 밀어붙이고 있는 세계화 전략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웰빙 트렌드와 아시안 푸드가 각광받는 점에 착안해 2년의 준비 끝에 두부에 특별한 경쟁력을 입혀 내놓았다. 지난해 7월 서울 종로에 첫 점포를 연 이래 국내 7개 매장과 중국에 1개 매장을 오픈했다.“다이어트에 민감한 여성층과 건강을 생각하는 중년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인기몰이 중입니다. 유기농 콩으로 갓 만든 두부에 버섯, 단호박, 김치볶음, 간장소스 등을 얹어 먹는 방식이 색다른데다 앙증맞은 컵 포장 서비스가 조화를 이뤄 신선하다는 평이에요. 두부를 필두로 우리 음식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작업을 시작한 셈이지요.”그는 자신의 뿌리가 전통음식에 있듯, 승부 또한 토종음식에서 보겠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음식은 언어보다 강한 힘을 가진 문화여서 아직 세계로 전파할 가능성이 충분히 열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두부다가 자리를 잡으면 또 다른 토종 브랜드를 내놓을 생각입니다. 한국문화를 기반으로 한 외식 브랜드에서 시작, 궁극적으로 문화사업까지 펴고 싶어요. 무엇보다 내가 만든 음식, 레스토랑에 첫눈에 반하는 이가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약력: 1973년생. 95년 경희대 무용학과 졸업. 경희대 경영대학원 재학 중. 엠파이어 베이글, 위치스테이블 등 105건의 외식경영 컨설팅 수행. 2003년 나무르 공동 설립. R&D 담당 이사(현). 2004년 7월 ‘두부다’ 런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