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변동, 가족관계·교육·사회 인프라 등에 메가톤급 영향

“이 보고서는 미래와의 대화를 위한 것입니다.”지난 2000년 조지 티넷(George Tenet) CIA 국장이 15년 후의 미래를 예측한 <글로벌 트렌드 2015(GT-2015)>를 펴내며 한 말이다. 그는 “‘미래와 대화’하는 이유는 세계 제일의 강대국 미국이 앞으로도 세계를 이끌기 위해서”라는 속내까지 털어놓았다. 미국뿐 아니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은 2002년 미래를 담당하는 3개 기관을 총리실 산하 미래전략청으로 통합했다. 미래를 정부조직으로까지 끌어당기며 대영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신흥강국으로 떠오른 핀란드는 아예 ‘미래읽기’를 법률로 의무화하고 있다. 새로 집권하는 정권은 무조건 15년 후의 미래사회에 대한 비전과 발전전략을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이를 평가하고 감시하도록 법으로 정한 것이다.선진국 클럽인 OECD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존스턴 사무총장 직속으로 ‘미래 프로그램’ 기구를 두고 선진국이 공유할 미래 아젠다(Future Agenda) 발굴에 골몰하고 있다.UN의 미래사회포럼을 이끌고 있는 제롬 글렌 회장은 최근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선진국의 공통점은 현재에 못지않게 미래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몇몇 나라들은 마치 미래와 경쟁하듯 앞서가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는 한창 미래읽기 경쟁 중인 셈이다.미래는 이미 와 있는 기래(旣來)그렇다면 왜 미래인가?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미래’(未來)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걸 우리가 어떻게 알고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인가? 공상과학소설을 쓰자는 것인가. 당연히 그런 추가질문이 따라붙을 만하다.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자.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불연속성의 시대>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썼다. “중요한 것은 이미 일어난 미래(Future That Has Already Happened)를 밝혀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주는 미래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미 여기에 와 있다.”드러커의 말을 따르자면 ‘미래’(未來)는 이미 와있는 ‘기래’(旣來)가 된다. 아직 완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으며 조만간 거대한 실체를 드러내게 될 일을 미래로 정의한다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실제로 미국을 비롯, 선진국들이 초점을 두는 미래는 추상적인 게 아니라 개인과 사회가 공감하고 예감할 수 있는 미래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인구변동, 즉 사람의 문제다.인구변동이 모든 것을 바꾼다미국 CIA의 ‘글로벌 트렌드’를 보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만든 이 보고서는 미국은 물론 세계의 미래를 좌우할 ‘동인’(Driver)으로 7가지를 손꼽았는데 ‘인구변동’(Demographics)을 그중 최우선순위로 올려놓고 있다.보고서 내용을 조금만 인용해보자.“전세계 인구는 2000년 61억명에서 2015년에는 72억명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95%는 개도국의 인구팽창 때문이며 미국을 비롯, 선진국 대부분은 저출산 고령화로 전례 없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특히 생산인력의 감소와 더불어 의료, 연금비용의 급증이 진행되면서 대단히 심각하고도 복잡한 충격을 가져올 것이다.”“인구의 변화만큼 우리에게 중대한 영향을 주는 것은 없다”는 피터 드러커의 말처럼 인구변동은 그 자체뿐 아니라 일자리에서 교육, 가족관계, 사회적 인프라 등 우리 삶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리라는 것이다.OECD를 비롯, 선진국들의 미래기구도 인구변동을 ‘넘버 원’ 이슈로 삼고 있는데 지금 당장 대처하지 않는다면 21세기는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우울한 세기’(Gloomy Century)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인구지진 임박한 한국그러면 우리는 어떤가.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은 가장 혹독하고도 빨리 ‘인구 재앙’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SBS가 매킨지와 함께 지난 2004년 9월 제1차 미래한국리포트로 다룬 <고령화 충격>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의 노인이 되는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 이는 20년 후 한국에 일어날 미래다. 하지만 현 추세를 감안할 때 그 시기는 앞당겨질 만큼 고령화는 이미 여기에 와 있는 현재진행형의 기래다. 고령화 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가는 데 프랑스가 154년이 걸리는 반면, 한국은 불과 25년 안팎이 걸린다. 이 모든 변화를 한 세대 내에서 겪어야 할 만큼 단연 세계 최고속이다.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20년 후에는 1명이 벌어 1명을 부양하는 인구피라미드의 대역전이 발생하고 100년 후면 한국의 인구가 3분의 1로 줄어든다. 국민연금 재정은 정부의 추정보다도 훨씬 빨리 붕괴되고 의료체계도 견뎌내지 못한다. 개개인은 소득의 50% 가까이 ‘공제’될 각오를 해야 하고 가정까지 해체될 위험이 있다. 더구나 한국은 이 모든 충격을 1만달러 수준의 경제에서 얻어맞게 된다. 생산인력의 격감과 재정부담 급증은 한국의 존재 자체를 시험하게 될 것이다.”미래를 촬영할 방법이 없어 고심 끝에 ‘미래에서 온 편지’라는 형식까지 빌려가며 생방송으로 중계한 ‘고령화 충격 리포트’는 발표 당시에는 많은 반향을 가져왔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인구지진’(Age-Quake)이란 표현까지 써가면서 “국민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밝혔고,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는 “그래서 한국경제에 남은 시간은 10여년 남짓하다는 것이다”며 경종을 울렸다.하지만 그때뿐. 출산율은 지난해보다 더욱 떨어져 세계 최저 기록을 경신하고 있으며 시한폭탄인 국민연금 문제는 개선의 기미가 없다. 고령화 사회는 당면한 우리 모두의 문제가 아니라 남의 문제, 그것도 먼 훗날의 문제로 여기는 인식도 여전한 듯하다.정부와 정치권은 이 문제를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최우선 정책대상으로 삼기는커녕 마치 과거와 싸우는 듯한 소모적 의제로 허송하는 모습이다.“현재가 과거와 싸운다면 미래는 없다”는 케네디의 말을 실증이라도 하려는 것인가.미래 충격, 지금 체감해야 산다저출산ㆍ고령화 문제는 선심성 정책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본질적 해법은 일자리에 있다.그렇다면 우리 일자리의 미래는 또 어떤가? 지난 1월 베인&컴퍼니와 함께 만든 제2차 미래한국리포트에 따르면 한국의 실업률이 정부 공식발표보다 실제로는 3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며, 이대로 가면 2010년이면 일자리가 늘어나기는커녕 100만개가 ‘순감’할 것이라고 한다.일자리 창출이 우리의 사활을 거는 절체절명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일자리는 결국 인적 수준의 제고, 즉 교육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한국은 부실하고 부담스러운 교육으로 한국인을 떠나가게 하는 교육 엑소더스 국가가 되고 있다. OECD와 함께한 3차 미래한국리포트는 올라갈수록 추락하는 한국의 교육경쟁력을 국제적 미스터리로 확인하는 작업이 되고 말았다. 이대로 간다면 말이다.저출산ㆍ고령화 문제가 완전히 표면화된 후에는 손쓸 수조차 없게 된다. 후회해 봐야 늦었다. 지금 모든 이들이 함께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도 일자리와 교육을 포함한 종합대책으로 막아야 한다.한국을 살 만한 나라로 만들려면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면 안된다. 바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우리는 과연 그럴 수 있을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미래를 우리에게 와 있는 기래로 체감해야 한다. 그래서 미래를 얘기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