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다. 한해를 정리하고 내년을 준비할 때다. 시장참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올 한해 투자를 돌아보고 내년 전략을 세워야 한다. 올해 증시의 특징은 새로운 도약이다. 그 도약의 첫걸음을 뗐는지, 아니면 정점에 올랐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시장환경이 좋을 때가 없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자금이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는 게 가장 눈에 띈다. 해외증시도 모두 활황장세다. 경기는 이제 바닥을 딛고 올라서는 추세고 기업이익도 회복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환율이 떨어지고 유가가 올라가지만 이것은 이미 충분히 예견된 문제다. 내년 증시전략은 일단 ‘Go’를 부르는 게 맞다.풍부해진 유동성은 시장을 외국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기관투자가의 영향력이 갈수록 세지고 있어서다. 최근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외국인과 개인이 관망 또는 매도세를 보이고 있지만 기관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나홀로’ 매수에 나서 5% 이상 지분을 취득한 종목이 급증하는 추세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9월1일 1106선에서 12월9일 1317로 뛰었다. 지수 상승의 견인차는 바로 기관이다. 기관은 이 기간에 유가증권시장에서 4조34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월간 기준으로도 △9월 1조4,717억원 △10월 5,327억원 △11월 1조5,450억원 △12월(9일 현재) 4,540억원 등 매수세가 이어지고 있다. 주식형펀드에 매달 2조5,000억원 가량의 자금이 유입되면서 매수여력이 커진 결과다.반면 외국인은 이 기간에 1,344억원 순매수에 그쳤고 개인은 1조4,976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오현석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외국인은 지난 11월 이후 대만에서 6조7,000억원 가량, 인도와 태국에서 3,000억~4000억원 가량을 순매수한 데 반해 한국에선 사실상 관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당분간 기관 주도 장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기관의 힘은 5% 이상 지분취득 종목에서도 확인된다. 금융감독원에 공시된 대량지분매매 내역을 분석한 결과,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11월 96개 종목(중복 포함)의 지분을 늘린 한편 지분을 축소한 종목은 39개에 불과했다. 또 5% 이상 지분을 신규 취득한 종목도 54개에 달했다.특히 그동안 외국계 펀드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대형주에 대해서도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큰손’으로 등장하는 추세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현대해상(5.96%)ㆍ삼성정밀화학(6.11%), KB자산운용이 동아제약(5.26%)ㆍ동부건설(5.41%) 등을 5% 이상 매입한 게 대표적이다.코스닥시장은 더 요란스럽다. 상승랠리가 내년에도 이어져 1000포인트를 넘을 것이란 낙관론이 나오고 있다. 기업실적이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수급구조가 탄탄하고 중소형주에 대한 재평가가 지속될 것이란 근거에서다. 신동민 대우증권 연구원은 “2006년에는 완만한 경기회복 기조하에 기업들의 실적개선이 뒷받침되면서 코스닥지수가 최고 1000포인트 수준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내수회복이 경기상승을 주도하면서 코스닥상장업체들의 실적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대우증권은 특히 IT분야의 경우 2006년 예상실적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이 12배로 올해의 15.8배에 비해 현저히 낮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그만큼 IT업체들의 내년 실적이 좋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 대우증권은 내년 코스닥시장의 6대 테마로 △실적호전과 턴어라운드 △SI(시스템통합)와 RFID(전자태그) △조선기자재와 기계부품 △와이브로와 WCDMA 장비 △엔터테인먼트와 콘텐츠 △지분매각 및 인수합병(M&A) 등을 꼽고 웹젠, 포스데이타, 화인텍, 이노와이어, 에스엠, 하나로텔레콤 등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물론 그동안 주가가 급등한 데 따른 경계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재평가의 여지가 더 많다는 게 중론이다. 제약주가 급등하면서 PER(주가수익비율)가 20배를 넘어섰지만 추가상승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이제훈 굿모닝신한증권 수석연구원은 “제약주의 주가수익비율(PER)이 20배 이상 되자 고평가 논란이 제기되고 있지만 전문의약품 주도로 시장이 계속 성장하고 있고 건강관리공단의 재정이 건실하기 때문에 제약주의 높은 PER 수준은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연구원은 “일본의 경우 지난 87년을 고점으로 제약주의 PER가 하락했지만, 이는 일본 건강관리공단의 누적적자 심화로 약가 인하압력이 커지면서 제약사의 제품력이 약해진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반면 한국의 제약시장은 약가 인하압력이 낮고 제약사의 주당순이익(EPS) 성장률이 매년 20% 안팎에 이를 정도로 성장세가 탄탄하다”고 주장했다.은행주 역시 마찬가지다. 구조조정 효과로 올해 사상 최대 순이익이 확실시되는데다 내수경기 회복, 한국은행의 콜금리 인상, 인수ㆍ합병(M&A) 재료 등 호재가 겹치며 매수세가 몰리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주가가 올라 저가 매력이 희석됐다는 시각도 있지만 여전히 상승 여력이 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은행주의 강세는 구조조정 효과와 경기회복이 맞물린 덕분이다. 우선 은행들은 올해 사상 최대 순이익이 확실시되고 있다. 동양종금증권은 국민 등 8개 주요 은행의 올해 순이익이 8조9,854억원으로 지난해(5조1,837억원)보다 734.3%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국민은행은 올해 2조3,000억원대, 우리금융과 신한지주는 1조6,000억~1조7,000억원대의 순이익을 낼 것이란 분석이다.내수경기도 청신호가 켜진 상태다. 삼성증권은 내수경기 성장률이 올해 3.1%에서 2006년 4.8%, 2007년 5.2%로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재성 삼성증권 은행팀장은 “은행은 전통적으로 내수경기 회복의 최대 수혜주”라며 “내년에도 주가 재평가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콜금리 인상도 호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시장금리가 0.5% 오르면 은행의 가계대출 수입은 1조3,300억원 증가한다. 김중현 굿모닝신한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콜금리 인상은 이제 시작 단계”라며 “은행주 전망이 밝다”고 내다봤다.M&A도 주가에 긍정적이다. 외환은행 인수전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하지 못하면 오히려 M&A 대상이 될 수 있다”(조병문 우리투자증권 은행팀장)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물론 주가가 단기 급등한 게 부담이다. 올 들어 은행업종지수는 80.2% 상승, 코스피지수 상승률(48.8%)을 크게 웃돌고 있다.우려되는 것은 시장이 너무 빨리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버블이 낄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장외시장이다. 유가증권시장이나 코스닥시장처럼 정규시장이 아닌 곳에서 거래되는 장외거래종목의 경우 공모주를 중심으로 불붙은 투자 열기가 일반기업으로 확산되면서 100% 이상 폭등하는 종목들이 속출하고 있다. 프리보드 시장(종전 제3시장)도 한일합섬 등 대형기업이 가세하면서 지난 9월에 비해 하루 거래대금이 2배 이상 증가했다.장외거래 전문업체인 피스탁에 따르면 바이로메드, 바이오니아, 크리스탈지노믹스 등 코스닥상장을 앞둔 바이오업체들은 최근 3개월 동안 주가가 50~100%나 올랐다. 올 들어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업체들이 대부분 상장 직후 공모가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어 장외시장에서 적지 않은 프리미엄을 받고 있는 것이다.이에 따라 상장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일부 업체들도 상장기업 못지않은 고평가를 받고 있다. 게임포털업체인 엠게임은 코스닥시장의 인터넷 붐을 타고 주가가 지난 9월1일 5,430원에서 12월15일 현재 1만6,750원까지 3배 이상 폭등했다. 미래에셋증권도 최근 3개월 동안 주가가 2배 이상 오르면서 상장 증권사들보다 훨씬 높은 6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장외 홈쇼핑 3총사인 현대, 우리, 농수산홈쇼핑도 주가가 15~43%나 올라 상장업체인 CJ홈쇼핑이나 GS홈쇼핑 못지않게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9월 장외공모를 한 미래에셋생명은 공모가격이 6,000원이었지만 현재 장외시장에서 1만4,375원에 거래되고 있다.장외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올해 IPO(기업공개)기업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관련 주식을 선취매하려는 투자자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또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주가가 크게 오르자 이와 유사한 사업모델을 갖고 있는 장외 우량기업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김창욱 사장은 “올 들어 회원수가 2배나 증가하는 등 투자자들의 장외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우량 장외주식들은 대부분 공급물량이 달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