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혁신은 21세기 기업의 핵심역량이다”고 강조했다.많은 기업들은 ‘혁신’이 꼭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한다. 하지만 막상 어떻게 하는 게 혁신인지 난감해하는 경우가 적잖다. 더욱이 보수적 분위기가 팽배했던 은행권은 ‘혁신’과 거리가 멀었다. 지금까지 갖고 있던 틀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신한금융그룹은 달랐다. 신한이 강풍을 일으키며 금융권의 새 강자가 된 배경 가운데 하나는 바로 ‘혁신’이다.신한은행은 1982년 민간자본으로 설립됐다. 은행 문을 열기 직전 신한을 바라보는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다. 당시 신한은행의 자본금은 250억원. 은행법상 전국 규모의 은행이 갖춰야 할 최저 자본금이었다. 당시 5개 시중은행의 평균 자본금은 904억원이었다. 신한이 당분간 고전할 것이라는 예상은 오히려 자연스럽기까지 했다. 힘겨운 경쟁에 뛰어든 후발 은행이었지만 결국 신한은 ‘혁신’이라는 화두와 함께 폭풍을 몰고 오기 시작했다.1985년 2대 행장을 맡았던 이용만 행장은 취임사에서 “국내외적으로 급변하는 금융환경 속에서 지난날의 성과에 만족하기보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변화하는 상황에 기동성 있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80년대부터 ‘변화와 혁신’을 생존의 조건으로 삼은 것이다.88년 3대 행장으로 취임했던 김재윤 행장 역시 “우리가 처한 금융·경제상황은 임직원 모두에게 새로운 각오와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이처럼 ‘혁신’을 강조하는 문화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현 신상훈 행장 역시 ‘50% 혁신론’을 펼쳤다. 신행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다윈의 진화론에 의하면 강인한 종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고 했다”며 “5%의 변화보다 50%의 혁신이 결국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다”고 말했다.이렇듯 신한금융그룹의 최고경영자들은 한결같이 변화와 혁신을 중시했다. 혁신을 위해서 다른 은행보다 앞서서 외부에 컨설팅을 의뢰하기도 했다. 채수일 보스턴컨설팅그룹 서울사무소 대표는 “신한은행과 인연을 맺은 것은 94년”이라며 “당시 컨설팅을 의뢰해 진단받는다는 것은 금융업계에서 드문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게다가 IMF 외환위기 전인 94년은 금융환경에 큰 문제가 없던 때였다. 채대표는 당시 신한은행이 컨설팅을 의뢰했을 때 ‘의외’라는 느낌마저 받았다. 채대표는 “신한은행은 경영진의 한 발 앞선 선택과 직원들의 열정이 어우러져 새로운 제도를 다른 곳보다 빨리 조직 내에 정착시켜 왔다”며 “그것이 지금도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오늘날 ‘강한’ 신한을 만든 데는 ‘혁신’ 외에도 다른 6가지 요인이 있다. 신한의 경영원칙은 ‘신한웨이’(The Shinhan Bank Way)라고도 불린다. ‘신한웨이’라는 말은 신한금융그룹 내부에서 만들어낸 주관적인 용어가 아니다. 미국과 한국의 대기업을 대상으로 리더십과 협상, 조직 등의 강의를 해 온 정동일 교수가 붙인 말이다. 정교수는 샌디에이고 주립대 경영대에서 종신교수직을 받은 경영학자다. 정교수는 △혁신 외에도 △고객만족 △강한 기업문화 △공정한 인사 △변용의 리더십 △투명경영 △사회적 책임경영을 7가지 ‘신한웨이’로 봤다.신한은 설립 초창기부터 ‘고객을 위한 일에 불가능은 없다’고 봤다. 고객만족을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삼은 것이다. 금융권에 ‘고객서비스’라는 개념이 자리잡기 전부터 신한은 ‘친절문화’를 선보였다. 은행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신한은 80년대부터 직원교육에 철저했다. 점포에 고객 1명이 걸어 들어와도 전직원이 벌떡 일어나 ‘어서 오십시오’를 우렁차게 외치기 일쑤였다.함박웃음을 곁들인 인사문화를 정착시킨 데는 일등공신이 있었다. 바로 ‘갤포스’(Gal-force)라는 신한은행만의 독특한 조직이다. 그리스어인 갤포스는 여성을 의미하는 갤(Gal)과 힘을 의미하는 포스(force)의 합성어다. 지성과 인격을 고루 갖춘 여성리더를 뜻하는 말이다. 신한은행은 4명의 여직원을 제1기 갤포스로 선발, 갤포스를 주축으로 직원들을 교육시켰다. 고객이 객장 안에 들어와 나갈 때까지 직원들이 응대해야 할 7대 인사용어를 훈련시켰다. 이런 전통이 최근까지도 이어져 신한은행의 직원 서비스 교육은 높이 평가받곤 한다. 고객응대와 사무처리 방법, 전화응대 방법, 영업상담 방법까지 주도면밀하게 교육시킨다. 기립 응대로 상징되는 친절문화를 출발점으로 고객의 니즈를 철저히 파악하게 한다. 고객이 진정 원하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직접 몸으로 체험하도록 고객의 입장이 돼 보는 ‘롤플레잉’(Role playing) 대회를 열 정도다.‘신한웨이’ 가운데 하나인 ‘강한 기업문화’ 역시 곳곳에서 발견된다. 순수민간자본으로 설립된 신한은행은 정부의 보호막 없이 자생력을 확보해야 했다. ‘뭔가 다른 은행’을 만들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임직원은 가슴속 깊이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해내야 하고, 하면 된다’는 의지로 활활 불타오르던 초창기 멤버들은 강한 문화를 그대로 전수했다. 80년대부터 임직원들은 정신없이 일하다가 밤 12시를 넘기곤 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기업문화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신한은행에 입행한 한 직원은 “매일밤 12시에 퇴근하고 있다”며 “남들이 1~2년 동안 배우는 업무를 6개월 만에 익혔다”고 자부했다.‘공정한 인사’ 역시 신한이라는 성공한 금융그룹의 씨앗이 됐다. 라응찬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신한은행은 ‘출신과 관계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대접하는 능력 위주의 철저한 공정 인사’를 최고의 가치로 여겨왔다”고 설명했다. 신한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독불장군 스타일의 천재보다 도전정신 강한 조직형 인재가 많다. 평범함에서 비범함을 뽑아내는 인재육성 프로그램을 가동해 금융전문가를 키워왔다.‘신한웨이’ 가운데 ‘변용의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은 ‘변혁의 리더십’이라고도 불린다. GE의 잭 웰치 전 CEO로 대변되는 리더십이다. 변용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리더는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또 조직이 현재 처한 위기상황을 명료하게 부각시키며, 변화의 필요성을 직원과 공감한다. 그 무엇보다 자신이 먼저 희생하며 조직원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한다. 신한은 그동안 ‘실천 지향적’, ‘현장 지향적’ 리더상을 추구해 왔다. 생각하고 뛰지 말고 ‘뛰면서 생각하라’고 강조해 왔다. 그 덕에 수많은 ‘발로 뛰는 은행원’을 쉽게 찾을 수 있다.‘투명경영’과 ‘사회적 책임경영’도 오늘날의 신한을 만들었다. 2002년에는 조직 내부직원이 임직원의 부정, 비리를 보고할 수 있는 절차를 확립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은행이 되기 위해 신한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거래내역서, 예금통장을 개발했다. 또 신한은행봉사단을 만들어 직원의 87%가 참여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더 높이 날 것인가, 떨어질 것인가.’ 신한 고속성장 엔진의 비밀, ‘신한웨이’를 어떤 방식으로 지켜나가며 업그레이드시킬 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