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하고 비슷하죠.’ 금융권 관계자들이나 출입기자들에게 신한금융그룹의 기업문화를 물어보면 열 명 중 아홉의 답은 이렇다. 삼성은 두말이 필요 없는 한국 최고의 초우량그룹. 글로벌 스타기업인 GE, 소니, 노키아 등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삼성의 문화는 인재제일주의다. ‘우리가 최고’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여기다가 톱니바퀴가 움직이는 듯한 시스템경영도 삼성이 자랑하는 기업문화다. 신한도 이와 비슷한 면이 많다. 신한은 경쟁사들이 두려워할 만큼 초고속으로 성장했다. 1982년 창립 이후 단 한 차례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그것도 국내 은행 중 최고의 이익률을 올려왔다. 미래는 더 밝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국민, 우리은행 등과 ‘리딩뱅크’ 자리를 놓고 벌이는 ‘별들의 전쟁’에서 신한의 승리를 점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신한의 가공할 파워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기업의 성공은 여러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최고경영자의 리더십도 중요하고 치밀한 경영전략도 필요하다. 하지만 기업문화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사람은 자신만의 색깔이 있다. 기업도 고유의 감성과 특징을 갖는다. 지향점이 일치하고 하겠다는 의지가 넘치면서 강한 실행능력을 갖춘 조직은 성공한다. 이런 것들을 갖추는 데는 그 기업만의 독특한 노하우가 숨어 있는 법이다. 그럼 신한만의 독특한 기업문화는 뭘까.신한은 강하다. 다소 저돌적이다. 권투선수로 치면 파이팅이 뛰어난 인파이터다. 이는 신한이 바라는 인재상이다. 신한은 ‘파이팅 스피릿’과 ‘벌떼문화’라는 용어를 자연스레 쓰고 있다. ‘파이팅 스피릿’은 이기고야 말겠다는 강한 승부근성이다. 새로운 것이라면 서슴없이 시도해보고, 땅 끝까지라도 찾아가 고객을 유치하고, 주어진 목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성취해내는 문화다. 일례로 채권회수 과정에서도 ‘독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업무에 열정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한때 부도를 냈던 한 중소기업인은 “부도소식이 들리자 신한은행 직원들이 가장 먼저 달려왔다”고 회고했다. 문화는 시대의 산물이다. 신한은 후발주자다. 설립 당시 강자들이 수두룩했다. 50년 이상 영업기반을 구축한 은행들과 경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신설은행인 신한으로서는 생존에 대한 두려움마저 은행 내에 팽배했을 정도다. 위기는 기회다. 두려움은 강한 정신력으로 이어졌다. ‘어떻게든 해내야 하고, 하면 된다’는 ‘파이팅 스피릿’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신한은행 특유의 거센 도전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창립 초기 신한맨들은 서울시내를 발로 뛰는 이색마케팅을 펼친 적이 있다. 소비자들은 신설은행인 신한을 잘 알지 못했다. 따라서 창구에 앉아서 고객을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그 시절 여직원들을 중심으로 ‘갤포스’라는 고객서비스 동아리가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일요일이면 회사건물 앞마당에 모여 명동 중심가를 향해 뛰는 이벤트를 열었다. 명동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지만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신한 파이팅’을 외치며 몇 시간씩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신한의 적극적인 영업은 업계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특히 가두캠페인은 신한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90년 초의 신한맨들은 인도에 사람이 없으면 차도에서 캠페인을 벌였다. 지나가는 출근길의 자동차를 향해 단체로 인사를 하는가 하면 정차한 버스 안에까지 올라가 승객에게 인사를 하고 팸플릿을 나눠줬다. 강한 승부근성이야말로 신한의 급성장을 견인한 첫 번째 성공요인이다.“신한은행의 기업문화는 한마디로 응집력이 강한 벌떼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한은행 신상훈 행장이 자신 있게 털어놓은 고백이다. 벌떼는 몰려다닌다. 우르르 공격하고, 달아난다. 파이팅 정신은 행원들을 벌떼처럼 똘똘 뭉치게 했다. ‘파이팅 스피릿’은 직원들의 동지의식을 갖게 했고, ‘뭉쳐야 산다’는 신한 특유의 조직력을 구축하는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설립 당시 신한은 각기 다른 은행 출신으로 맨파워를 짤 수밖에 없었다. 모래알 같은 외인부대를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경영진은 학연, 지연, 출신은행 등의 사조직을 철저히 금지시켰다. 대신에 조직구성원들의 상하간, 동료간 모임은 장려함으로써 신한인으로서 함께 느끼고 생활하며 하나가 되도록 독려했다. 팀워크를 배양하는 훈련도 강도 높게 진행됐다. ‘내가 바로 새로 만든 이 은행의 주인’이라는 정신을 갖게 하는 훈련이었다. 독특한 연수제도는 팀워크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 임원과 부서장 연수에서는 조직이론을 교육했다. 로마, 베네치아 흥망사 등을 통해 리더십을 배우도록 했다. 모든 훈련은 토론을 통해 조직의 일치된 의견을 도출하는 방식이었다. 구성원간 담합이나 타협은 철저히 배제됐다. 밤을 새우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유도했다.커뮤니케이션은 조직문화의 핵심요소 중 하나다. 조직은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으면 ‘동맥경화’ 같은 기업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신한의 최고경영진이 커뮤니케이션에 유독 신경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행장이 은행 인트라넷에 ‘시공초월’이라는 직원과의 사이버 대화방을 개설한 게 2004년 8월19일. 첫 대화상대는 서울 상도동지점의 행원 10여명. 신행장이 사이트에 입장하자 아이디가 ‘방카의 여왕’인 여행원이 메시지를 날렸다. ‘행장님 방가~, 방가~’ 그는 매주 다른 부서의 직원들과 40분씩 대화를 나눈다. ‘시공초월’에서 나온 아이디어 덕분에 은행을 홍보하는 노래가 새롭게 바뀌고 신한여자농구단이 창단됐다.신한 홍보실은 신한만의 독특한 기업문화가 정착된 요인을 10가지로 정리했다. △모두가 현 직무의 리더라는 주인정신 △경영진의 투명경영과 책임경영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지닌 리더십 △차별화에 대한 의지 △해서 좋을 것 같으면 빨리 실행에 옮기는 실행력 △‘우리는 이렇게 한다’는 공통의 언어 △출신·학연·지연이 배제된 팀워크 △정예라서 소수가 아니라 소수라서 정예인 소수정예주의 △이심전심의 감성공동체 △철저하게 파벌을 배제하고 실력을 중시하는 투명한 인사 등이 그것이다. 매년 연말이면 열리는 업적평가대회, 그리고 지점개설 때 인근 지점의 직원들까지 나서 머리띠, 어깨띠를 하고 구호를 외치며 뛰어다니는 행사는 신한의 협동문화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최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8개 시중은행의 생산성을 분석한 결과, 거의 전 분야에서 신한은행이 1위를 기록했다. 직원 1인당 예수금(99억5,000만원), 1인당 총자산(183억원)이 각각 2위인 하나(94억5,400만원), 한국씨티(178억원)를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 진출한 지점들도 8, 9층에 점포를 두면서도 최고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한의 ‘소수정예주의’는 창립 이후부터 지켜왔던 인사원칙이다. 평범한 샐러리맨 10명을 키우기보다 조직충성도와 영업정신이 살아 있는 한 명을 육성하는 데 주력한다는 것. ‘주인의식을 가진, 필요한 사람만 쓴다’는 원칙이야말로 1인당 생산성 최우수은행을 만들었다는 평가다.신한의 인사스타일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물론 ‘동료애’와 ‘리더십’을 중시하는 것이다. 신한 관계자는 “동료직원의 역량강화에 기여한 직원에게 가산점을 주는 관행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최근 가점 비중을 더 높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직원들의 대한 대우와 복지후생이 은행권 최고 수준이라는 것도 한몫 했다. 신한에는 ‘직원이 행복하면 은행도 행복하다’는 슬로건이 있다. 모든 출발점을 직원만족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한민국 최고의 일터’로 여기는 직원이 대다수다. 그만큼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뛰어나다.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의 원활한 통합은 신한의 핵심과제다. 이제 통합은행 출범으로 신한은 ‘리딩뱅크’로의 도약기회를 잡았다. 이는 신한의 독특한 기업문화가 조흥의 기업문화와 조화롭게 결합돼야 가능한 일이다. 신한의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