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가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시가총액은 유가증권시장만 700조원을 넘어섰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시가총액 비중도 100%에 육박했다. 외국인은 공격적으로 매수의 고삐를 다잡고 있다. 하지만 지난번 전고점 돌파 때와 같은 흥분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수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높다. 원/달러 환율은 자꾸 떨어지고, 유가는 지칠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어서다. 미국이 금리인상을 중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위안이지만, 기업실적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환율과 유가불안은 지수의 추가적인 상승에 대한 불신을 높이고 있다.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국면은 ‘비교열위론’에 의한 상승장이다. 비교열위란 국내증시의 지지부진한 오름세나 국내기업이 국제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번 상승장의 가장 큰 배경은 지난 2월 이후 국내증시만 유독 오르지 못했다는 데 있다. 중국, 인도, 일본 등이 큰 폭으로 오른 데 반해 국내증시는 찔끔찔끔 뒤로 밀려 1,300선을 위협받았다. 외국인투자가 입장에서 보면 한국증시만 못 오를 이유가 없고, 그래서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됐지만, 여전히 저평가라는 딱지를 달고 있다. 따라서 한국증시의 상승 가능성은 항상 내재돼 있다고 할 수 있다.이 같은 관점은 유동성장세가 나타날 때 더욱 힘을 받는다. 최근 미국이 금리인상을 중단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동성장세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결국 추가적인 상승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미국이 금리인상을 중단할 경우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유동성 공급은 증가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추론이다. 특히 이머징마켓에 대한 투자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원자재가격이 급등하고 있는데도 주가가 오르는 것은 바로 원자재를 생산하는 이머징마켓의 매력이 좋아지고 있어서다. 이머징마켓에 대한 유동성 공급이 늘어날 경우 국내증시는 또 한 차례 업그레이드의 계기를 마련하게 될 전망이다.하지만 부담스러운 면도 있다. 유가가 가파르게 오른다면 투자심리는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미 글로벌 증시는 유가급등에 따라 조정권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정창수 동양종금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2주간 일본증시는 조정양상을 보였는데 오를 때는 찔끔 오르고 내릴 때는 1% 이상 떨어지는 현상이 지속됐다”며 “유가강세가 지속될 경우 국내증시도 아시아권 증시조정과 맥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세계증시가 유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유가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 가중으로 글로벌 유동성 축소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미 장기채 금리가 5%를 웃돌고 있는 상황에서 유가가 70달러 이상에서 고착될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 및 글로벌 유동성 악화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다만 유가가 조만간 60달러선으로 후퇴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는데다 현재까지는 글로벌 유동성 위축현상이 표면화되지 않고 있어 유가 악재가 일시적 요인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유가가 계속 오르는 와중에 사상 최고 행진을 벌인 데서 보듯 유가는 이제 핵심변수가 못된다”며 “한국경제가 석유의존도가 높은 중화학 중심에서 IT(정보기술) 위주로 체질개선에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시장은 이 같은 부담을 슬기롭게 이겨나가고 있는 듯하다. 대형주가 아닌 중소형주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형주는 외부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중소형주는 상대적으로 이 같은 부담이 적다. 3월 말 이후 가파른 반등을 보이던 국민은행은 4월 들어 조정을 받기 시작했다. 신한지주와 우리금융도 상승세가 주춤해졌다. 그러자 매수세가 지방은행과 저축은행으로 몰리고 있다. 외국인들이 지방은행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개인들도 매수에 가담했다.건설·조선업종에서도 중소형주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주들이 연일 오름세를 이어가자 조선 기자재주들이 시동을 걸었다. 건설업종에서는 GS건설, 현대산업개발 등 대형주의 강세를 진흥기업, 풍림산업, 두산산업개발 등이 이어받은 모습이다. 의류업종에서는 신원을 비롯해 톰보이, 좋은사람들 등 시가총액 1,000억원 미만 종목들의 강세가 두드러진다.코스닥시장에서는 최근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코스닥 상승세를 주도했던 NHN이 34만원까지 올라선 후 조정을 보이는 동안 다음, 네오위즈, KTH 등 후발 인터넷주들이 뒤를 이어받았다.외국인들도 실적호전 중소형주 찾기에 가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업종대표주의 흐름이 견고한 가운데 이를 따라 아직 고점을 경신하지 못한 실적호전 2~3등주들이 따라붙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주요 관심업종으로는 바닥을 지나고 있는 IT(정보기술)와 호황을 거듭하고 있는 조선주를 비롯해 철강, 증권, 금융주 등을 꼽았다.또 증시에 강력한 테마가 살아있는 것도 관심거리다. 대형 M&A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데다 증권사들의 2차 구조조정이 가시화되고 있다. 상반기 중 매각을 마무리하거나 매각작업이 개시되는 대형상장사는 대우건설, LG카드, 현대건설, 대우정밀, 나산, 대림수산 등 6개에 이른다. 또 대한통운도 상반기 중 채권단의 출자전환을 거쳐 하반기 본격적인 매각작업이 진행될 전망이다. 매각지연 영향 등으로 한때 1만원선까지 하락했던 대우건설은 최근 인수 후보업체들의 실사작업이 재개되면서 1만7,000원을 넘나들고 있다.현대건설도 워크아웃 조기졸업과 M&A 기대감으로 최근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창근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가 5월 주택 새 브랜드 런칭을 통해 주택, 토목, 해외건설 등에서 명실상부한 1위 업체의 위상을 재정립할 것”으로 평가했다. 또 6월 중 매각주간사가 선정될 것이라며 목표가로 6만9,500원을 제시했다. 특히 대우와 현대건설은 최근 진행 중인 건설주 랠리에 M&A호재가 결합돼 주가 상승폭이 크다는 분석이다.원화환율 하락 수혜주에 M&A호재가 겹친 대림수산도 강세다. 대림수산은 CJ, 오뚜기, 동원F&B 등 인수후보들이 재무구조가 건실하고 지명도도 높은 기업들이라는 점이 주가상승의 요인이 되고 있다. LG카드는 국내파인 하나금융, 신한지주, 농협과 SC제일은행, HSBC 등 외국계 금융기관들이 인수의향서를 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같은 영향으로 4월 중순에는 6일 연속 외국인 매수세가 유입되고 있다. 산업은행은 6월께 LG카드 주인을 결정할 예정이다.상반기 중 본격적인 M&A 작업에 들어가는 나산과 5월 중 채권단 지분이 출자전환되는 대한통운은 아직 주가변동이 크지 않은 편이다. 나산은 1만3,000원대를, 대한통운은 7만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 회사 모두 탄탄한 영업기반을 갖고 있어 M&A가 본격화되면 주가상승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나산은 브랜드 가치는 물론 자산가치도 상당해 M&A가 본격화되면 눈여겨볼 만한 주식”이라고 평가했다. 대한통운은 동아건설 보증채권을 보유 중인 채권단이 5월 출자전환하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인수전이 불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중소형 증권사들의 합종연횡이 가시권에 들고 있다.이밖에 2분기 실적호전이 예상되는 종목 등도 관심거리다. 환율과 유가의 동향에 비교적 둔감한 은행과 내수주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최근 통신주가 급등한 것은 이 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증권전문가들은 2분기에는 M&A 등의 테마에 속하거나 외부변수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종목을 중심으로 시장이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