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C&K와 장원이 렉스로 새 출발하게 됐습니다.’지난 3월 법무법인 렉스(대표변호사 박태종·김동윤)가 합병과 사무실 이전을 알리기 위해 돌린 안내장 내용이다. 한솥밥을 먹게 된 법무법인 장한C&K와 장원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들의 쟁쟁한 약력은 새로 거듭난 로펌의 녹록지 않은 경쟁력을 말해준다. 로펌간 합병으로는 2개 로펌이 대등한 자격으로 합쳐 1월1일 공식출범한 법무법인 우현·지산(대표변호사 박기웅·김성용), 법무법인 김신유를 흡수합병한 화우(대표변호사 변재승·윤호일·변동걸·양삼승·강보현)에 이어 렉스가 올 들어 벌써 세번째. 이렇게 새 단장한 렉스에는 총 15명의 변호사가 둥지를 틀고 있다. 소위 ‘중견로펌’ 반열에 명함을 내밀 정도의 자격은 갖춘 셈이다.장한C&K는 그동안 변호사 7명의 단출한 살림살이에도 불구, 김재록씨 로비의혹사건 등 세간의 떠들썩한 대형사건에는 어김없이 한발씩 걸쳐놓고 있어 변호사업계로부터 부러움의 시선을 한몸에 받아왔다. 그러나 소형 로펌이라는 한계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김동윤 대표변호사는 “토털 서비스가 요구되는 시대에 10명 이내의 인원으로 고객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그간의 고충을 털어놓았다.장한C&K의 변신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지난해 6월 장한 법률사무소와 C&K 법률사무소가 한살림을 차리면서 법무법인으로 신분이 격상했고, 이번에 또다시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물론 이런 로펌간 짝짓기가 더 이상 주목을 끌 만한 빅뉴스는 아니다. 해마다 1,000여명의 변호사가 쏟아지는 요즘 같은 때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물꼬는 5년 전(2001년 1월)에 터졌다. 법무법인 세종이 열린합동 법률사무소를 흡수합병해 재탄생하면서 법무법인간 합병의 첫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 이후 광장(광장+한미·2001년 7월), 화우(화백+우방·2003년 2월), 우일아이비씨(우일+아이비씨·2004년 7월), 바른(바른+김·장·리·2005년 3월) 등이 뒤를 이으면서 덩치키우기의 일환으로 ‘합병’이 점차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아이비씨는 주로 기업자문 업무를 취급했는데 형사사건이 늘면서 검사나 판사 출신이 필요하게 됐고, 송무 일만 해오던 우일은 기업자문 쪽을 보완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우일아이비씨 최영익 대표변호사가 전하는 당시의 합병배경이다. 이는 또한 종래 합병의 전형적인 공식이기도 했다.그런데 지난해부터 인수합병(M&A)의 양상이 확 달라졌다. ‘법률시장 개방’이라는 외부변수가 가세하면서 생긴 변화다. 경쟁상대가 소속 변호사만도 수천명에 달하는 초대형 로펌인 만큼 국내 로펌끼리의 합종연횡도 ‘도토리 키재기식’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형 로펌들의 최근 달라진 이합집산 행보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국내변호사가 144명인 업계 서열 2위 법무법인 광장(변리사 15명)이 지난해 6월 제일국제특허사무소(변리사 40명)와 합쳤으며, 변리사가 한 명도 없던 서열 6위 율촌(국내변호사 86명)도 지난해 10월 변리사 10명의 명문특허사무소와 손잡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최근 급성장 중인 법무법인 서정이 지난해 12월 제휴 파트너로 택한 곳도 특허법인이다. “특허법인 국내 1호인 원전에는 일본통들이 수두룩합니다. 한국진출을 꾀하는 일본기업들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설정하면서 원전이 가장 적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특허 업무가 수익 면에서도 큰 몫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시장개방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전익수 파트너 변호사)사실 변호사가 100명이 넘는 대형 로펌의 경우 시장개방에 대비하기 위해 연연해할 필요는 없다. 지난해 4월 100% 문을 연 일본의 경우만 봐도 나가시마나 모리하마다 등 변호사수가 150~200명선인 서열 1~5위 로펌은 영미계 로펌의 거센 공격에 끄떡도 않고 있다. 국내 대형 로펌들도 규모나 서비스 면에서 이미 국제적인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외국로펌들과도 제휴 등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어 1개 외국로펌과의 합병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이라는 사실을 외국로펌들이 더 잘 알고 있다.문제는 국내 대형 로펌의 아킬레스건인 특허·지식재산권 분야다. 외국에선 변리사라는 자격증이 따로 없다. 변호사가 변리사를 겸한다. 따라서 웬만한 규모의 로펌을 찾아가면 법률자문은 물론 관련된 특허 업무나 세무 업무까지 한꺼번에 해결이 가능하다. 이른바 원스톱 서비스가 일상화돼 있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변호사 자격증만 따면 변리사 자격이 자동으로 주어진다. 하지만 실제 특허 관련 일을 책임지고 수임할 수 있다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때문에 변리사를 별도로 채용해야 하는데 부동의 업계 1위 김&장(변리사 90명)을 제외하곤 변리사수가 모두 고만고만한 실정이었다. 지금도 한쪽에서는 영역다툼을 벌이느라 핏대를 올리고 있는 변호사와 변리사들이 합병이라는 신사협정을 맺을 수밖에 없었던 말 못할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시장이 개방되면 국제간거래 등 섭외사건은 외국로펌에 뺏길 수밖에 없는데 보수 면에서 가장 짭짤한 특허나 지식재산권 분야까지 내줄 수 없는 일 아닙니까.”(율촌 김윤태 전무)대형 로펌과 달리 개인 법률사무소나 변호사 10명 안팎의 소형 로펌은 일반적으로 법률시장 개방이라는 태풍의 영향권 밖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국제간거래 등 외국로펌들이 관심을 갖는 섭외사건은 전통적으로 대형 로펌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소형 로펌=시장개방의 무풍지대’로 통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는 로펌이 있다. 법무법인 우현·지산이 바로 그들이다. 변호사 10명씩인 법무법인 우현과 지산이 내건 합병명분이 다름 아닌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해외 플랜트 등 대형 인프라 자문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대거 포진한 우현은 지산과의 합병으로 건설과 지식재산권 전문변호사를 대폭 확충하면서 중견로펌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잡게 됐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최종 타깃은 법률시장 개방에 맞춰져 있다. 우현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형 로펌은 법률시장 개방에 방어적일 수밖에 없지만 소형 로펌은 정반대 입장이다”고 강조했다. 즉 국내에 진출하는 외국로펌과 제휴를 맺는 등 다양한 돈벌이 기회를 포착할 수 있지 않으냐는 지적이다. 그러려면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춰야 하고 합병은 그 수단이라는 것이다.식을 줄 모르는 ‘전관모시기 열풍’을 시장개방 준비와 연결짓는 재미있는 분석도 있다. 우선 고위직 판·검사 출신의 경우 국내 최고의 법률전문가라는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에 현직과의 끈끈한 인맥은 소송 의뢰인 입장에선 더 없이 믿음직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국내에 진출할 외국로펌에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외국로펌의 경우 국내로펌과 합병하거나 국내변호사를 고용하지 않는 이상 국내법 자문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정부는 시장개방 초기단계에는 외국변호사들이 ‘외국변호사’ 명칭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방침이어서 외국로펌의 국내법 접근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 착안해 전관 등 거물들을 영입해 국내법에 특화한다면 외침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얘기다.김병일·한국경제 사회부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