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룸시스템으로 세계 정상 ‘우뚝’

봄 햇살이 퍼지는 예가원의 샤론방. 신성이엔지 직원들이 방을 쓸고 닦는다. 청소를 마친 뒤 돼지고기볶음과 두부찌개 등으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이곳 형제자매들의 식사를 돕는다. 경기도 분당구 야탑동에 있는 예가원. 50여명의 정신지체장애자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신성이엔지의 임직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이곳을 찾는다. 목욕을 시켜주기도 하고 꽃길을 함께 거닐기도 한다.경부고속도로 판교인터체인지 부근에 있는 신성이엔지는 클린룸과 공장자동화설비 등을 만드는 기업. 소비재를 생산하는 업체가 아니어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다. 굳이 이들에게 자사를 알릴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사회봉사에 적극적이다.예가원뿐 아니라 서울 종로의 아름다운재단, 용인의 한울공동체, 성남의 소망재활원, 의왕의 명륜보육원도 찾아가 봉사한다. 이 같은 사회봉사는 이완근 신성이엔지 회장(65)의 뜻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전세계 반도체 및 LCD업체들 가운데 이 회사를 모르는 곳은 없다. 신성이엔지는 클린룸시스템분야에서 국내 최대이자 세계 정상급 업체이기 때문이다.이 회사가 만드는 설비는 크게 클린룸시스템과 공장자동화시스템 두 종류다. 클린룸시스템은 외부공기를 깨끗하게 걸러서 공장 내부로 보내주는 팬필터유닛(FFU)과 공조기기인 에어핸들링유닛, 습도조절기인 드라이코일, 옷의 먼지를 제거하는 에어샤워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반도체공장이나 LCD공장, 제약공장은 초청정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작은 먼지 하나가 제품을 불량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성이엔지는 이 같은 청정상태를 유지하는 핵심설비를 제작, 설치하고 있다.공장자동화시스템은 반도체, LCD 공장자동화시스템과 창고자동화시스템으로 나뉜다. 공장자동화시스템은 일종의 로봇이다. 웨이퍼를 공정간에 이동시키는 장비와 웨이퍼를 공정 안에 넣었다 뺐다 하는 장비로 구성돼 있다.창고자동화시스템은 LCD나 PDP의 적재 보관에 쓰이는 장비. 창고에 도착한 제품의 자동분류에서부터 천장에 달린 레일을 통해 운반하는 기기, 적재로봇, 리프트 등으로 구성돼 있다. 마치 자동주차설비시스템에서 자동차를 빈 공간에 자동으로 주차시키듯이 LCD나 PDP를 창고의 빈 공간에 신속·정확하게 적재하고 빼내는 시스템이다.신성이엔지의 매출은 지난해 2,230억원(당기순이익 108억원)에 달했고, 올 목표는 2,500억원으로 잡고 있다. 매출은 클린룸에서 60%, 공장자동화 분야에서 40%를 올린다. 수출비중은 전체 매출의 약 10%선으로 주요 수출지역은 미국, 중국, 대만, 동남아 등지다. 수출비중을 올해 15%, 그리고 수년 내 40%선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특히 그동안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 대만, 동남아시장을 집중 공략할 계획이다. LCD나 PDP 등 평판디스플레이 분야는 국내기업들이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이들 업체를 상대로 생산과 영업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정상급 업체가 됐다.신성이엔지의 고객은 삼성전자·LG전자·LG필립스LCD·하이닉스·삼성코닝·삼성SDI 등 국내업체와 미국의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대만의 AU·CMO 등이다. 국내외 주요 반도체 및 LCD, PDP, 유기발광다이오드업체들이 포함돼 있다.신성이엔지는 자회사로 신성엔지니어링, AITEC, 루디스, 쑤저우신성, 신성서비스 등을 두고 있다. 이중 신성엔지니어링은 공조기기 및 냉동기기를 만드는 업체이고 AITEC는 일본 나고야에 있는 법인으로 진공로봇 등을 생산한다. 루디스는 유기발광다이오드재료 등을 제조하며 중국 쑤저우에 있는 쑤저우신성은 클린룸, 공장자동화시스템을 만들어 중국 내 업체에 공급한다. 이밖에 신성서비스는 클린룸 및 공조기기 등의 애프터서비스를 맡고 있다. 신성이엔지와 이들 자회사를 모두 합친 매출은 지난해 약 3,000억원에 달했다.신성이엔지가 생산하는 설비는 전기, 전자, 제어, 기계, 공조 기능이 결합된 전형적인 메커트로닉스 제품이다. 이들을 생산하기 위해 47명의 연구개발 직원을 두고 있다. 전체 직원 364명의 12.9%에 해당한다.성균관대 교육학과를 나온 이회장은 경원세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과장을 끝으로 그만둔 그는 잠시 자영업을 하다가 77년 신성이엔지를 세워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서울 종로2가 관철동에서 냉동기, 공조기기를 수리하거나 조립·생산하는 일을 시작했으며 점차 항온항습기 등으로 넓혀나갔다.그러다 80년대 초 획기적인 발전을 할 수 있는 전기를 맞이한다. 삼성전자로부터 클린룸설비를 개발해 달라는 제의를 받은 것. 조건은 공장건설 스케줄을 감안해 1년 만에 납품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반도체사업에 참여키로 결심을 굳히고 장비업체를 물색하던 중이었다.하지만 메모리반도체사업 자체가 국내에서 처음 시행돼 장비업체가 있을 리 없었다. 신성이엔지는 공조기기업체로 국내에서 정상급을 달리던 기업이었다. 이회장은 항온항습기, 냉동공조기기사업을 해 온 경험을 토대로 클린룸도 충분히 개발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 제의를 수락했다.하지만 일은 간단치 않았다. 초청정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반도체산업에선 입방피트당 먼지를 10개 이하로 유지해야 했다. 먼지가 수천만개 날아다니는데 이를 10개 이하로 잡는 것은 첨단기술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그는 선진업체를 분석한 뒤 기술제휴를 맺어 이를 해결하려 했으나 누구도 응해주지 않았다.실의에 빠진 그에게 번개처럼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는 우선 연구소를 설립, 박사·석사급을 비롯한 우수인력을 모았다. 연구원들을 수십차례 해외로 보내 관련자료를 수집했다. 주변기술에 관해선 기술제휴를 쉽게 맺을 수 있었다. 문제는 팬필터유닛과 실링터널모듈(CTM)과 같은 핵심기술을 확보하는 일이었는데 이게 벽에 부딪혔던 것이다.그때 그에게 떠오른 아이디어는 ‘트로이목마’였다. 일본업체에 잠입해 공장을 살펴보는 일이었다. 연구원들은 이미 핵심기술과 주변기술을 이론적으로 파악한 상태여서 생산공정을 한 번만 둘러봐도 제품생산과 관련된 중요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국산화 작업은 시작됐다.이회장은 당시 공장이 있던 반월공장에 야전침대를 들여다놓고 퇴근도 하지 않은 채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결국 1년 만에 제품을 생산해 납품하기 시작했다.삼성전자에 납품한 뒤 80년대 말에는 현대전자와 LG반도체에도 잇따라 공급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반도체업체에 납품한 실적은 외국업체에 보증수표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대만, 홍콩, 미국의 반도체와 컴퓨터장비업체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UL마크와 ISO인증도 받아 공신력을 더욱 높였다. 설비 국산화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이회장은 지난해 기업인 최고의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이회장은 “클린룸 분야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만큼 이제 반도체, LCD공장 자동화 분야의 연구와 영업에 집중해 미국과 일본업체들이 맥을 못추게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약력: 1941년 경기도 시흥 출생. 59년 성남고 졸업. 65년 성균관대 교육학과 졸업. 70년 경원세기 입사. 77년 신성이엔지 창업. 80년 냉동공조기술협회장. 98년 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현). 2001년 신성이엔지 회장(현). 원석학원 재단이사장. 2004년 냉동공조공업협회장(현). △수상: 91년 철탑산업훈장. 98년 우수수출상품대상. 2005년 금탑산업훈장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