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547호 (2006년 05월 29일)

맞벌이도 살림 빠듯…‘뭘 먹고 사나’

기사입력 2006.09.04 오후 12:01

“그건 뭐 하러 묻습니까. 창피해서 얘기하지 않으렵니다.”

한 택시기사에게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곧바로 핀잔이 이어졌다. 경기가 나아진다고 하는데 그래도 좀 나아지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니 “우리하고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갈수록 어렵다는 설명이다.

“생각해 보십시오. 요즘 어지간하면 자가용으로 다니잖아요. 게다가 대리운전이 일반화되면서 손님이 더 줄었어요. 죽지 못해 이 짓 하고 있습니다.”

경력이 30년에 이른다는 또 다른 택시기사에게 돈벌이가 어떠냐고 물었다. 대답은 마찬가지로 ‘어렵다’였다. 하지만 자신은 사정이 좀 나을 거라고 덧붙였다. 임대료가 월 100만원 정도 나오는 상가가 달린 집을 갖고 있는데다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로 부수입도 조금 있다는 설명이다.

“원래 개인택시를 했는데 몇 년 전에 팔고 현재의 집을 샀습니다. 임대료가 꼬박꼬박 나오는데다 잘하면 부동산 차익도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개인택시 해봐야 몸만 힘들지 어디 돈이 돼야 말이죠.”

하지만 이 기사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경기가 안 좋아서인지 임대료가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두세 달 밀리는 것은 예사고 아예 보증금을 다 까먹을 정도인 점포도 있어 살림이 빠듯하다는 설명이다.

택시기사들이 최대 경쟁자로 지목하는 대리운전자들이라고 벌이가 좋은 것은 아니다. 서울시 마포구에서 컴퓨터를 판매하고 있는 A씨는 최근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오후 8시에 가게 문을 닫고 1~2시간 눈을 붙인 후 영업을 개시한다. 연락이 오면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선다. 부인이 경차를 몰고 남편을 따라간 후 차에서 내린 남편을 태우고 손님 많은 곳으로 이동한다. 경차 유지비용이 부담스럽긴 해도 이동시간이 짧기 때문에 남보다 일을 많이 따낼 수 있다.

“저나 아내나 맘껏 잠을 자본 지가 언제인지 몰라요. 컴퓨터 판매가 워낙 부진해서 시작하긴 했는데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한쪽을 아예 접을 상황도 아니고 답답합니다.”

A씨가 대리운전에 나선 직접적인 이유는 자녀들 학원비 마련이었다. 욕심껏 가르치지는 못해도 남들만큼은 해줘야겠다는 마음에서 이것저것 시키다 보니 두 아이 학원비가 월 100만원에 육박했다. 컴퓨터 판매로는 도저히 뒤를 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학원비 때문에 아내가 할인점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하지만 이내 그만뒀습니다. 관절이 좋지 않아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었거든요. 대리운전자 중에 저 같은 사람 많습니다. 좋게 말하면 투잡족인데 고육지책에 불과한 셈이죠.”

경기도 안산시에서 일명 ‘스카이’라고 불리는 고소작업차를 운영하는 B씨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해했다. 전에 비해 물량이 많아져 즐겁긴 한데 수입은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일감이 조금씩 많아져서 이제 살 만하겠다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이제야 경기가 되살아나는구나 싶었죠. 그런데 수금이 안되는 겁니다. 돈을 받으러 가면 어김없이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듣습니다. 사정이 여의치 않다나요. 이런 걸 보면 경기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게 사실인지 의심이 됩니다.”

대출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도 적지 않다. 최근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가계의 주택담보대출은 11.2%로 전년에 비해 3.2%포인트 증가했다. 짊어져야 할 금융비용이 증가한 것이다.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C씨는 대출이자 부담에 영업부진이 겹쳐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숙박업이 잘된다는 말에 현혹돼 덜컥 모텔을 구입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돈이 모자라 판매가의 절반 정도를 대출받았는데 그게 결국 발목을 잡네요. 손님이 워낙 없어 은행이자 내기도 버겁습니다.”

C씨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숙박업자 대부분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모텔이 워낙 많아 과당경쟁 상태인데다 손님이 새로 생긴 모텔에만 몰려 잘되는 곳은 극소수고 안되는 곳은 갈수록 더 안되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모텔을 내놓은 지가 벌써 1년이 넘었지만 팔릴 기미가 없어요. 하긴 누가 파리 날리는 모텔을 사겠어요. 저 같아도 안 사죠. 게다가 부동산경기가 너무 위축됐잖습니까. 사면초가가 이런 건가 싶어요.”

불황의 그늘이 자영업자에게만 드리워진 것은 아니다. 직장인들의 살림살이도 넉넉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통계청은 지난 1분기 도시근로자들의 소득이 344만4,000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4.6% 증가하는 등 살림이 나아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피부로 느끼는 경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세금, 연금 등의 인상분을 제하면 실제로 손에 떨어지는 돈은 예전과 다름없다. 게다가 조기퇴직 분위기가 고착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회사원 D씨는 최근 떡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재료비를 포함해 수업료가 한달 수십만원에 달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학원의 수강생 대부분이 자신과 사정이 비슷해 서로 위안과 용기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매달 잔고가 줄어드는 마이너스통장을 보면 심란하기만 하다.

“떡케이크와 전통유과 창업이 유망하다는 소리를 듣고 시작했어요. 평소에 떡을 좋아해서 적성에도 맞겠다고 판단했죠. 그런데 갈수록 자신이 없어져요. 실제로 기술을 배워 창업한 사람들을 보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수입은 기대 이하더라고요. 아파트 몇 번 사고팔아 돈 번 사람들을 보면 무슨 복인가 싶고 부럽기만 하죠.”

수도권의 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E씨는 몇 달째 임금의 70%만 받고 있다며 울상을 지었다. 화학약품을 제조하는 이 기업에서 근무한 지 올해로 4년째라는 E씨는 “회사를 옮기려고 몇 번이나 생각했는데 다른 회사도 사정이 비슷해 마땅히 옮길 곳이 없다”며 “스트레스 탓에 술을 많이 마셔서인지 살이 자꾸 쪄서 큰일”이라고 씁쓸히 웃었다.

이직하기도 쉽지 않지만 더욱 어려운 것은 취업이다. 특히 청년들의 실업문제는 좀처럼 개선될 조짐이 없어 우려된다. 어지간한 기업의 공채경쟁률은 쉽사리 100대1을 넘을 정도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F씨는 얼마 전 입사시험을 봤다. 본인 생각에 눈높이를 낮춰 지원했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학점이나 영어성적, 학교 인지도 모두 나쁘지 않았지만 경쟁자가 워낙 많았다.

“졸업하고 나서 10번 이상 면접을 본 것 같아요. 갈수록 대우가 안 좋은 곳으로 하향지원하는데도 취업이 쉽지 않네요. 부모님 보기 죄송해서 낮에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이러다 아르바이트가 직업이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합니다.”

해외영업맨을 꿈꾸는 G씨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중국어를 전공한데다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중국인들을 상대로 관광가이드 아르바이트도 여러 번 해서 중국어만은 자신 있다는 G씨. 그러나 취업의 벽은 높기만 했다.

“잠들기 전에 ‘난 잘될 거야’라고 몇 번이고 되뇝니다. 자신감을 잃지 않으려고요. 청년실업이 저만의 문제는 아니니까 자기 학대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꿈은 이뤄진다잖아요.” 이어 G씨는 “아직 중국인 관광가이드를 계속하고 있다”며 “중국어 잘하는 영업맨 필요한 곳 있으면 소개 좀 해달라”며 멋쩍게 웃었다.

hjb@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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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