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의 외환은행 인수에 이르는 길이 멀고도 험하다. 론스타와 이미 인수계약을 맺었음에도 인수 자체를 뒤집을 만한 요소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지뢰밭을 지나듯 조심스러운 상황이다.외환은행 인수의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 인수대금 납입은 결론이 나올 때까지 미뤄졌다. 사실상 계약의 완성단계인 대금납입이 한없이 미뤄진 상태이므로 국민은행의 외환은행 지분인수는 아슬아슬한 얼음판 위에 서 있다.금융감독위원회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낙관하고 있지만 100% 안심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무엇보다 론스타의 ‘먹튀’(이익만 챙기고 도망가는 것)를 도와줬다는 사회적 여론과 국민은행과의 합병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외환은행 노조의 반발도 국민은행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론스타가 국민은행과의 지분인수 계약이 끝나자마자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 “한국 내 반외국자본 분위기가 투자를 어렵게 한다”며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바람에 국민은행은 더욱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국민은행은 하나은행과 DBS(싱가포르개발은행)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외환은행 인수라는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주당 1만5,200원이라는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사들이면서 론스타의 막대한 이익실현에 도움을 주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웠다. 특히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일단 인수절차를 중단해야 한다는 정치권과 외환은행 노조의 주장에도 불구, 인수계약을 강행하면서 더욱 집중적인 포화를 맞았다.여론의 압박을 감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국민은행은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가 종료되고 그 결과가 나온 이후에 대금을 납입한다는 다소 이색적인 조항을 계약서에 삽입함으로써 비난을 피해갈 수 있는 출구를 마련했다. 김기홍 수석부행장은 “검찰 수사결과 지난 2003년 외환은행 매각과정에서 론스타가 불법적인 행위를 했거나 본계약에 영향을 미칠 만한 발표가 있게 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감사원과 검찰 수사를 무사히 넘어간다 해도 공정위의 기업결합심사라는 또 다른 걸림돌이 국민은행을 가로막고 있다.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이 합쳐질 경우 총수신의 점유율로는 독과점에 걸리지 않지만 외환부문은 시장의 과반수를 차지하게 돼 독과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공정위의 강대영 부위원장은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의 기업결합심사는 상품시장별로 나눠 따로 심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국민은행이 바라는 식으로 쉽게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더구나 입찰제안서 제출단계에서 금감위가 “국민은행이 외환을 인수하더라도 독과점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밝혀 공정위의 심기를 건드린 바 있어 공정위가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추측이다. 공정위는 기업결합심사에 주어진 최대 120일을 모두 활용할 것으로 알려져 10월께나 돼야 결론이 나올 예정이다. 공정위가 만에 하나 독과점이라는 결론을 내릴 경우 국민은행은 일부 사업부문이나 지점을 매각하라는 명령을 받을 수도 있다.금감위와 금감원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도 국민은행의 험난한 행보 중 하나다. 국민은행은 지난 2004년 9월 국민카드 통합과정에서 부정회계를 이유로 20억원의 과징금을 금감위로부터 부과받은 바 있다. 현행 은행법은 금융기관의 대주주 적격 요건과 관련, 금융관련법령을 위반해 처벌받은 사실이 없을 것을 명기하고 있다. 예외조항으로 ‘위반 등의 정도가 경미하다고 금융위가 인정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내용이 있어 당시 처벌이 경미했는지를 놓고 다시 갑론을박이 이어질 예정이다.일각에서는 국민은행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며 국민은행이 영업을 계속해온 터라 대주주로서의 자격에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2004년 국민카드 부정회계는 당시 은행장이던 김정태 행장이 물러나고 윤종규 부행장도 함께 옷을 벗을 정도로 큰 사건이었는데 이것이 ‘경미한 위반’으로 치부될 수 있을지를 놓고 금융당국도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외환은행 노조를 중심으로 한 직원들의 반발은 국민은행이 오랜 시간을 두고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다. 지난 4월 국민은행이 인수우선협상대상자로서 실시한 실사가 충분치 않다며 3주간의 실사 연장을 요청한 것도 외환은행 직원들의 실사 비협조 때문이었다.국민은행과 외환은행 노조의 불안감을 감안한 듯 양측 행장이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발표했으나 만족스러운 효과를 얻지 못했다. 국민은행 직원들도 합병에 대해 비딱한 시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인수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시했던 직원이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는 등 내홍을 겪은 직원들은 행장이 말한 ‘고용안정’에 대해 회의적인 편이다.그동안 주택, 국민, 장은 등 여러 은행이 합병되면서 겪은 숱한 구조조정의 후유증인 셈이다. 외환은행 노조측은 “2003년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매각한 것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이번 국민은행의 계약은 원천무효”라며 “따라서 두 은행장의 고용안정 합의 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외환은행의 ‘계약 원천무효’ 입장 때문에 국민은행은 아직까지도 ‘은행 통합추진준비위원회’를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 준비위는 합병과 관련된 각종 사안들을 협의하는 일을 맡으며 인수작업이 종료되면 통합추진위로 전환되는 한시적 조직이다. 당초 국민은행측은 5월 마지막주께 국민·외환 경영진 동수로 구성하고 실무국을 운영하는 방안으로 추진했으나 외환은행 측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아 아직도 요원한 상황이다.이에 따라 통합은행명 등 양측의 주요 이슈를 사전에 조율하려던 계획도 늦춰지고 있다. 양측은 합의서에 통합은행에 외환은행명이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한다는 내용을 넣었으나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설 것으로 보인다. 1년간 외환은행을 자회사로 운영한다는 방안에 대해서도 외환은행은 이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며 다시 논의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이런 걸림돌을 모두 감수하면서도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가’라는 질문에 국민은행은 ‘그렇다’는 답변을 내놓고 있다. 국내 최대 은행으로 자처하고 있지만 ‘덩치만 크고 능력은 없는 구멍가게 수준’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왔던 국민은행은 해외의 탄탄한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는 외환은행을 인수함으로써 글로벌 은행으로 비약하겠다는 전략이다. 국내 가계영업에만 집중했던 국민은행이 기업·해외 네트워크를 보유한 외환은행과 합쳐질 경우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부분 동의하지만 외환은행에서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는 ‘하향평준화’의 우려도 적지 않다.외환은행 노조가 국민은행과의 합병을 반대하는 것은 인력 구조조정 때문이긴 하지만 해외에서 한국의 은행이라고 하면 첫손에 꼽히는 ‘KEB’라는 브랜드가 사라지고 외국환 및 기업금융 전문성이 사라질 것을 우려하는 점도 작용한다. 특히 과거 장기신용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보였던 편가르기 성향이 다시 나타난다면 외환은행의 우수한 인력들이 대거 유출되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 업계에서도 가장 많이 지적하는 것이 조직 인화단결이 얼마나 가능하냐는 점이다. 외환 출신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면 결국 인력유출 및 업무의 비효율이 나타나고 합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시너지는 사라질 것이다.한민정·파이낸셜뉴스 금융부 기자